문화재 약탈과 반환에 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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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서 론
ㅡ 문화재 침탈

본 론
ㅡ 문화재란?
ㅡ 돈황과 막고굴
ㅡ 막고굴 문화재의 의의
ㅡ 돈황의 착취
ㅡ 한국 문화재 반출 사례
ㅡ 약탈 문화재 반출사례(외규장각고문서)

결 론
ㅡ 나의 생각

본문내용

어람용이며 그 가운데 64책은 국내에 복본(複本)이 없는 유일본이다. (반환대상은 297권임)
일국의 문화재는 그 나라 역사의 생생한 증거물이며, 민족의 문화적 역량을 가늠하는 척도인 것이다. 문화재는 국가와 민족의 정체성(identity)을 확인하는 근본으로서 원 소유국의 귀중한 자산으로 존중되어야 하고, 국가가 적절히 보호하여 우리의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중요한 역사적 유산이다. 문화재를 통해 우리의 현재는 과거와 연결되고 미래로 나아가는 디딤돌이 된다. 즉, 새로운 문화 창조의 바탕이 되는 것으로서 문화재의 정신적 가치는 무한한 것임은 주지의 사실인 것이다.
특히 문화재는 고유한 것으로서 한번 훼손되면 다시는 원상회복 될 수 없는 귀중한 재화이다. 따라서 경제학적으로 말하자면 대체재가 없는 '유일 재화'로서 그것의 가격은 거의 무한대에 이르는 것이다.
2) 어떻게 프랑스가 빼앗아 갔나?
당시 대원군은 쇄국정책의 일환으로 천주교를 탄압하였고 그 과정에서 국법을 어긴 프랑스 천주교 선교사 9명을 처형하였다. 프랑스는 즉시 극동함대를 파견하여 조선을 공격하였으며 그것이 1866년의 병인양요이다. 당시 프랑스 해군이 조선(강화도)을 침범하여 인명을 살상하고, 왕실보유의 은괴를 약탈하였으며, 당시 왕립도서관이던 외규장각을 불태워 4,700여권의 도서를 없앴으며, 나머지 300여권의 외규장각도서를 약탈해갔다. 이러한 약탈과 방화는 당시 프랑스 침입군의 수장이던 로즈 제독이 프랑스 해군성 장관에 보낸 문서에 의해 명백하게 확인되는 사실이다.
3) 외규장각 도서는 나중에 어떻게 발견되었나?
프랑스에서 서지학자로 활동하던 박병선 박사가 1978년에 외규장각 도서들이 프랑스의 베르샤이유 국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최초로 발견하였다.
박병선 박사는 1955년 프랑스에 유학을 가서 소르본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였다. 그는 1973년에 직지심경(현재, 프랑스 점유)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인쇄물이라는 것도 처음 고증하여 세계학회에 발표한 바 있는 저명한 학자이다.
박병선 박사는 프랑스 국립도서관, 해군청 등 고도서가 있을 만한 곳을 조사하던 중, 베르사이유 국립도서관 창고에 한문책들이 많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가서 확인한 결과, 1978년 10월에 그 책들이 조선왕조의 고서임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는 도서관에서 일하면서 비번인 날 틈틈이 창고에 가서 조사하고 목록을 작성하였으며 결국 그 책들이 병인양요 때 프랑스가 약탈해간 외규장각 도서임을 확인했다. 그는 프랑스 도서관 측으로부터는 자신들의 비밀을 외부에 알린 배신자라는 비난을 받다가 결국 1980년에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퇴직 당하였다.
그 뒤로 그는 무려 12년 간의 연구 끝에 1993년에 불어로 된 요약본을 발행하였으며 그 요약본의 발간으로 외규장각 도서의 존재가 공식적으로 외부에 알려졌다.
결 론 - 우리 모두가 나서야 할 때
문화재 같은 오래 묵은 물건에 혼이 담겨있다는 말을 믿는다. 수 백년 아니 수 천년, 손에서 손으로 건네 지면서 민족혼이 담길 수밖에 없다. 얼마 전, 문화재 도굴범과 매매범이 검찰에 잡혔는데, 이 범인 가족이 대부분 비정상이었다고 한다. 담당 검사 말에 의하면, 잡힌 사람중 한 매매전문가는 아들이 교통사고를 당해 전신마비 상태고, 한 도굴 전문가 부인은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으며, 한 절도전문가는 동생이 젊은 나이에 비명횡사하는 등 벌받았다고 생각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또 수사를 해보면 문화재 도굴 절도범 중에는 뚜렷한 이유 없이 손가락이 잘려 없는 경우가 많고 얼빠진 사람처럼 정신이 혼미하다고 한다. 남의 묘를 뒤져 복장유물을 꺼내다보니 귀신이 붙은 것 아닌가 여겨질 정도로. 그럴 수도 있다. 혼이 박힌 물건들을 땅속에서 꺼내 모욕을 주었으니 온전할 리 없다. 도둑질 중에서도 국가 자산이나 문화재를 도굴해 팔아먹는 것은 역사를 팔아먹는 천하 나쁜 짓이니까.
 하물며, 국내에서 왔다갔다하는 문화재도 이렇게 살아 움직이는데 다른 나라에 유출돼 제 자리 못 찾고 있는 떠돌이 문화재의 넋은 어떨 것인가. 타국에서 영문도 모른 채 벌써 수 백년을 떠도는 넋들은 고국에 돌아오고 싶어 한이 맺혔을 것이다. 현재 해외에 유출된 우리 문화재는 약 6만5천점. 러시아에 2천5백점, 독일 5천2백점, 영국 7천1백점, 미국 1만4천여점, 그리고 일본에 가장 많은 2만9천6백여점이 있다. 임진왜란과 러일 전쟁, 일제강점기를 통해 일본은 가장 많은 우리 문화재를 약탈해갔다. 그러나 우리는 한번도 정정당당하게 약탈 문화재를 돌려달라고 요구하지 못했다. 정부간 협상 테이블에서 간헐적으로 언급하기는 했지만 구체적 반환을 거론하지는 못했다.
 다행히 유네스코가 문화재 반환에 적극 관심을 보여 국가 간 협상 공간이 마련될 것 같지만 문화재란 인류공동 재산이기 때문에 원소유주를 따지기보다는 과학적인 보존이 가능한 곳에 보관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어서 사실상 중재를 기대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문명국을 자처하는 국가들이 무력이라는 가장 야만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약소국으로부터 강탈했던 문화재는 원주인에게 되돌려주는 것이 마땅한 일 아닌가. 우리나라같이 6만점이 넘는 중요 문화재를 잃어버린 국가의 역사단절과 민족혼에 대한 그리움을 안다면 정말 문화적인 신사도가 발휘되어야 한다.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우리가 새겨야 할 것은 먼저 가신 호국영령 뿐 아니다. 우리가 힘이 없어 뺏긴, 그래서 구천을 떠돌며 홀대를 받고 있는 우리 문화재에 대한 경외심과 반환 의지도 다져야 하는 달이다. 역사학계는 역사학계대로, 정부는 정부대로, 그리고 우리 문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들대로, 우리 넋 찾아오기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문화재가 역사의 자식이라면, 그 수 만명의 자식을 잃고 애끓는 역사를 보듬고 가는 우리는 죄인이다. 우리 조상들이 돌칼로 밤을 지새며 공들여 만든 그 소중한 것들을 내버려두고 한국 문화의 뿌리 운운 할 순 없다. 범국민적 반환운동이 절실한 때다.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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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4.06.26
  • 저작시기2004.06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57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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