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박재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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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시인에 관하여
1) 시인의 생애
2) 서정적인 시인 박재삼

2. 울음이 타는 가을 강 해석
1) 시의 이해의 초점
2) 작품의 감상
3) 시의 해설

3. 박재삼의 또 다른 시 세계

4. 순응적 인간상

5. 우리의 견해

본문내용

이었을 것이라 생각해본다.
그런데 이 시에서 화자가 옹기의 반짝거림을 어떻게 보고 있는 가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화자는 그것을 ‘글썽임’과 ‘반짝거림’으로 중첩해 드러내고 있다. ‘글썽임’은 서러움이지만 ‘반짝거림’과 결부될 때 그 서러움은 정화되고 미화된다. 어머니의 삶이 그저 짓누르는 아픔에만 빠진 것이 아니고, 거기에는 자식들에 대한 사랑의 아름다움이 함께 하고 있다. 이렇게 한결 순화된 그림으로써 서정적 힘을 더 크게 하는 것이 이 작품의 핵심이 되고 있다.
( 송승환, <한국 현대시분석과 이해>, page254~255)
4. 순응적 인간상
순응적 인간상에서는 순리나 이치에 따라 삶을 살거나 현실에 만족하며 사는 사람이 주로 문제된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윤리적 규범에 따라 혹은 자신이 처한 사회 제도에 맞게 사고하고 생각하는 삶을 순응적 삶이라고 한다. 현실의 이익에 추수하여 사는 이기적 삶도 순응적 인간상에 포함되기는 하지만 이런 이기적 인간상은 부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순리나 이치를 따르는 인간상은 고전문학에서 많이 찾아 볼 수 있다. 순응적 인간상에는 세속적 욕망을 버리고 자연의 이치에 따라 순수하게 삶을 사는 인간상도 포함된다.
박재삼의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을 보면 전면적으로 짙은 한의 정조가 깔려있다. 제삿날 큰집으로 향하는 무거운 발걸음. 저녁 노을의 이상적 이미지, 그 노을에 젖은 강물의 울적함 제삿날에 모이는 불빛, 노을의 서러운 정조가 무겁게 고인 강물이 나란히 흘러가는 것 등으로 표현된 한의 정서는 삶의 무게에 짓눌려 있는 화자의 고통을 느끼게 한다. 짙은 고뇌와 함께 흘러가는 것이 삶의 여정으로 표현된 이 시에서 화자는 서러운 삶을 인정하고 노년기의 인생을 관조적으로 바라보며 여유로운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리고 슬픔을 한의 정서로 승화시킨다.
5. 우리의 견해
시인은 현실에서 부딪히는 문제, 즉 사랑과 죽음 같은 문제로 상당히 안정되지 못한 내면을 가지고 있다. 친구의 사랑이야기는 시인을 서럽게 만들고, 큰집의 제삿날은 시인으로 하여금 죽음과 가까워옴을 인식하게 한다.
그의 주변사물에 대한 인식은 ‘설움’으로 표현되며 이는 곧 ‘한’이다. 그것의 깊이는 그의 내면이 ‘울음이 타는 강’으로 표현된 데서 잘 드러난다.
‘울음이 탄다.’ 는 구절은 그의 비애가 얼마나 극한 적인가를 잘 알려준다. 여기에서 우리는 울음을 ‘운다.’가 아니라 ‘탄다.’라고 표현된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시적 자아가 울음을 울지 않고 내면으로 한을 태우고 있다는 것, 곧 그의 내면에 한이 쌓여있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다음 연에서 그는 슬픔을 반전시킨다. 그것은 삶과 죽음에 대한 관조적인 태도와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유쾌하고 즐거운 산골 물소리처럼 첫사랑의 기쁜 추억 뒤에는 어떤 ‘울음’이나 ‘한’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한 경험 끝에는 산골 물이 언제나 너른 바다에 이르듯 고통을 내면화하는 인간의 자기 통제력이 생성된다. ‘소리 죽은 가을 강’은 비애나 슬픔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언제나 인간의 내면 깊숙이 흐르고 있는 모습을 말한 것이다. 한이나 비애, 슬픔은 간단히 소멸하거나 제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인간은 본질적으로 한을 지니고 살아가야 하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인생은 비애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내면으로 삭이며 삶 자체를 인내하는 것이다.
이 시의 ‘소리 죽은 가을 강’이라는 구절에서 한국인의 대표되는 정서로 손꼽히는 '한'의 표현이 나타난다. 보통 한국인은 ‘한’의 민족이라거나 한국의 예술은 ‘한’의 예술이라는 말을 사용하곤 한다. 이것은 다분히 한국인의 체념적 또는 운명론적 사고관을 지칭하거나, 그러한 미의식을 언급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평가는 특히 일제 강점시의 일본인들에 의해 많이 행해졌다. 그들은 ‘한’을 조선적인 것으로 규정하여 그들의 식민 정책을 정당화시키면서 한국인들에게 내면화하고자 했다.
‘한’은 한민족의 집단적 민족 정체성과 일체감을 형성시키기 위해서는 필요할지 모르나, ‘한’에 대한 일방적 평가는 한 민족의 도전과 모험 정신을 제거하는 역기능을 하기도 했다. 특히 ‘한’을 안으로 삭인다는 것 자체는 그 나름의 의미를 지닐지 모르나, 한편으로는 그것을 운명으로 알고 받아들이자는 현실 순응주의의 면모를 띤다는 데 문제가 있다. ‘한’을 속으로 삭이는 방식은 현대에서는 덜 생산적일 수 있다는 말이다. 한이 생기더라도 그것이 축적되지 않도록 발전적인 방향에서 해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한’이라고 하면 남성보다는 여성을 먼저 떠올리게 되는데, 이는 전통적으로 여성에게 있어 ‘한을 안으로 삭인다.’는 것이 또 다른 억압의 기제 가운데 하나였다는 것을 알려준다. 전통적인 유교 사회에서 여성의 권리와 지위는 아주 낮고 보잘것없었다. 가부장제 사회에서의 여성은 자기 발전 혹은 자아실현의 기회를 획득 할 수 없었다. 오히려 여성에게는 자기희생을 통해 한 사회나 가정의 질서를 유지해 나가도록 하는 규범이 주어졌다. 그것을 미덕으로 칭송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여성의 사회 진출을 통제하면서 가부장적 유교 사회를 지탱해 나가는 바탕이 되었다. 그런 통제된 사회에서 여성의 한은 내밀하게 축적되었고, 자신을 희생하는 대신 자녀나 남편에게서 대리 만족을 얻었던 것이다.
자기희생이라는 것은 표면적인 의미에서는 고귀함을 지니지만, 그것이 한 사회에서 이데올로기로 혹은 교조적으로 작용될 때 한 개인의 권리를 무참하게 짓밟는 기제가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한’이란 이처럼 다각도의 방향에서 생각해 볼 문제다.
이처럼 박재삼의 시 '울음이 타는 가을 강'에서는 한을 안으로 삭이는, 현실에 순응하는 순응적 인간상에 태도를 지니고 있다. 이는 또한 내향적 인간상으로도 표현된다. 내면적 인간상에서는 고독한 개인, 소외, 인간 세상에 대한 혐오등이 주요한 문제로 형상화되며 이를 형상화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문제, 종교적 문제, 실존적 문제 등이 함께 거론되고 그 결과에 따라 비판적 인간상이 드러나기도 하며 순응적 인간상이 드러나기도 한다. 따라서 이 시는 순응적 인간상에 속한 시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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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4.08.11
  • 저작시기20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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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263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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