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 유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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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베드로전서
1. 저자와 수신자, 저작시기와 장소
2. 메시지의 일반적 분석
3. 고난의 서술: 제국적 박해 아니면 소외?
4. 베드로전서 32장 19절: 4장 6절과 그리스도의 지옥강화
5. 바울전승과의 관계

Ⅱ. 유다서
1. 저자
2. 메시지의 일반적 분석
3. 유다서의 비정경 문헌
4. 문학 장르
5. 저자, 수신자, 저술시기와 장소
6. 유다서의 정경성

본문내용

함시키려하는 의도로 해석되어진다.
20-23:
믿음에 대한 반복적인 요청: 실행되어야 할 다른 종류의 심판들-편지의 구절과 목적들이 진정한 절정을 이루고 있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20절에서는 3절에서 드러난 싸움에 대하여 어떻게 대항하여야 하는지에 대하여 나타나 있다.
(3) 결론적 영광송(24-25)
이 부분에는 수신자들에 대한 어떠한 개인적 메시지도 없다. 이는 아마도 예전으로부터 인용되어 수신자들의 상황에 적용시킨 것으로 보인다. 이 유대 유일신론적 찬양의 기독교적 변형은 주 그리스도를 통한 것이다.
3. 유다서의 비정경 문헌
이는 많은 논쟁들을 불러일으킨 사항이다. 많은 신학자들은 이를 ‘영감’과 관련하여 해석하는데 핵심적인 논쟁은 바로 이것이다. 영감에 의하여 저작을 하였다면 그 영감의 결과물들이 인용되어 있는 정경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는 연구 결과가 확정되어야 구분이 분명한 학문적 체계정립이 가능 하다는 것이다. <에녹 1서>라던가 <모세의 승천>에서 인용된 구절들이라던가, 11 절에서의 가인과 발람의 예들처럼 본서에서는 다양하게 이스라엘 전승들이 드러나 있다. 결과적으로 저자는 이러한 다양한 인용들을 자유롭게 조합시켰다는 것이다.
4. 문학 장르
근래에 유다서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법들이 도입되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그리스-로마의 표준을 따르는 수사적 구조이다. 예를 들어 Charles, Literary 20-29) ‘수사의 형식들 중에’ (pp.578-79)에 나타난 바대로
유다의 권고와 경고들에는 신중한 웅변학적, 법정적 수사들이 나타나 있다. 또 한 가지 대두되는 문제는 본서가 다이스만의 서신(epistle)과 편지(letter) 양식들 중 어떠한 것에 해당하는가이다. 야고보서에서의 평범한 문안인사와는 다르게 유다서 2절은 ‘긍휼과 평강과 사랑’으로 시작한다. 또한 아무런 결론적 인사가 존재하지 않는 야고보서와 달리 유다서는 영광송으로 끝나는데, 이는 롬 16:25-27와 비견할 만하다. 전통적 언어가 어느 정도나 사용되어지는지에 따라 문학적 장르는 결정되어질 수 있는 것인데, 특히 16절에서 드러나는 대적들에 대한 묘사는 <모세 전승>에서 유래될 수 있었다는 점 등이다.
집필 시기가 불분명한 본서의 목적은 문학적 장르에 따라 갈라질 수 있는데, 이가 실제상황(3-4절에서 막연히 추정됨)을 겨냥한 것이라면 ‘편지’로서의 의의를 지니겠고, 막연한 일반 상황을 예견한 것이라면 묵시문학적 서신으로서의 의의를 지니게 되는 것일 것이다. 결론적으로 본서는 무신론적이거나 다신론적인 자유주의적 관념을 꾸짖기 위하여 다양한 전승들을 구성요소로 삼아 편지형식으로 재구성한 서신이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5. 저자, 수신자, 저술시기와 장소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들 문제에 대하여 아무런 정보도 없다. 아마 다른 어떤 신약 저작들보다도 자료가 적을 것이다.
(1) 저자
예수의 형제 유다, 혹은 유다라는 이름의 다른 사도가 저작하였거나 위명저작일 것이라고 추정된다. 하지만 위명저작임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사료는 특별히 존재하지 않는다.
(2) 저작 장소
저작성으로 보자면 근원지로 팔레스타인이 선호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야고보가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였다는 것과 유다의 후손들이 팔레스타인에 주요인사로 잔존하였다는 것 때문이다. 또한 구약이나 이스라엘 전승들에 대한 지식을 통하여 저자는 아람어를 알고 있는 인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의문의 핵심은 바로 저자의 훌륭한 헬라어 실력에 놓여져있다. 헬라 문명이 기반이 된 지역에서 저술되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학자들은 이 정도의 헬라어는 히브리어나 아람어를 모국어로 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충분히 학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유다 정도의 권위를 지닌 자라면 필사가와 합작을 하였을 가능성 또한 배재하지 않고 있다.
(3) 저작 시기
실현가능성이 있는 시간적 폭은 주후 50-120년 사이다. 그 이후의 저술이 불가능한 이유는 베드로후서의 저작연대보다(베드로후서가 유다서의 위작이라는 견해가 분명하다면) 늦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본서가 2세기 영지주의자들을 겨냥한 것이라는 견해는 어느 정도 설득력이 없으며, 내용상으로 3절과 20절 등에서 ‘초기 카톨릭주의’가 표방되었다고 하는 주장들도 실효성이 없다. 또한 유다가 예수의 형제들 중 막내이었을 확률이 짙은 이상,(제일 마지막에 언급) 그가 주후 90-100년까지 생존해 있을 확률이 농후한 이상, 그의 저작성 또한 간과될 수는 없다.
(4) 수신자
문헌적, 역사적으로 증명되기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수신자에 대한 추정은 불가능하며 경건치 못한 자들을 통하여 막연한 추정이 가능할 뿐이다. 즉 저자가 어느 정도 자신의 권위를 통하여 다른 이들을 경건치 못하다고 판단할 수 있을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역일 것이라는 정도다. 저자를 예수의 형제로 상정한다면 그가 존경받는 팔레스타인 지역일 것이라는 정도이다. “주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하는 영지주의적 집단을 겨냥하는 것일 거라는 추측도 있지만 사변적이니 주장이다.
6. 유다서의 정경성
유다서는 이미 2세기 초에 베드로후서의 저자에 의해 복사될 정도로 중요한 위치를 지니게 되었다. 200년경에 서방에서(무라토리안 단편, 터툴리안) 유다서는 성경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하지만 에녹 1서와 같은 위경의 사용은 유다서의 활용에 문제를 일으켰고, 400년 정경형성 작업에서야 아다나시우스와 제롬의 기여와 더불어 동서방에 걸쳐 교회에서 수용되었다. 1522년 루터는 자신의 신약성서에서 야고보서, 히브리서, 계시록과 더불어 유다서를 저급한 책으로 취급하여 신약의 마지막 부분에 포함시켰다.
Ⅲ. 참고문헌
주참고문헌
레이몬드 E. 브라운, 신약개론, 기독교문서선교회(CLC),2003, 김근수,이은수 옮김
부참고문헌
F. W. Beare, 베드로전서 연구, 대한기독교출판사, 1986, 한의신 옮김
George Eldon Ladd, 신약신학(수정증보판) A Theology of the New Testament, 1993, 엄성옥, 한철흠 옮김
굿뉴스스터디바이블, 대한성서공회,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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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4.09.08
  • 저작시기20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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