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경제발전, 개항이전의 조선의 모습
본 자료는 4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해당 자료는 4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4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조선 후기의 경제발전, 개항이전의 조선의 모습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ⅰ. 상공업
1. 조선 전기 상업 개관
1). 조선 전기 상업의 사회적 위치
2). 조선 전기 상업의 주요 조직
① 국내상업
② 대외무역
2. 조선 후기 상업 발달의 배경
1). 수취 체계 개편 - 대동법 시행의 효과
2). 중상적 사상의 대두
3. 조선 후기 상업의 발달
1). 공인 자본의 성장
2). 보부상단의 성장
3). 전국적 시장망의 형성
4). 사상의 성장과 통공 발매 정책
5). 대외 무역의 활성화
4. 조선 후기 상업 발달이 조선 사회에 미친 영향
5. 조선 후기 상업 자본의 성격과 그 한계
ⅱ. 농업
1. 개항 전 한국의 사회문제와 농업현황
2. 개항 후의 농업상황
1). 개항과 농업문제의 심화
2). 농민운동과 그 영향
3). 농업개혁이론과 정부대책
3. 개항기의 농산물수출과 방곡령

Ⅲ 결론

본문내용

질서속에서 조선 전기의 상업은 정부의 강력한 통제하에 있었고 이 때문에 활발한 상업 활동을 기대할 수 없었다. 더욱이 전국적 시장망의 부재나 낮은 상품 생산력은 상품 유통을 통한 상인 자본의 확대재생산 자체를 가로 막고 있었다. 그러나 두 차례 전란 이후, 피지배 계층의 동요를 진정시키기 위해 이루어진 수취 체계의 개편은 이와 같은 조선 전기 상업 구조에 일대 변화를 야기하였다.
특히 대동법의 시행의 효과로 나타난 공인 자본, 사상 자본과 같은 상업 자본의 출현과 성장, 상품 유통을 통한 화폐 경제의 진전, 향시를 통한 전국적 시장망의 형성 등은 상업 발달을 위한 상업 자본의 확대 재생산을 가능케 하였으며, 이는 전통적 농촌 사회내의 분업화와 수공업 발전으로 이어졌다. 상업을 통해 피지배 계층이 경제적으로 성장하면서 조선 후기 사회에서는 새로운 움직임이 나타났다. 즉 농업, 수공업, 상업 등의 분야에서 자본주의의 맹아로 볼 수 있는 현상들이 나타났으며, 전통적 신분제에 대한 비판과 실학 사상에 뿌리를 둔 근대적 중상 사상들이 대두되었다.
결국 이와 같은 변화는 계층의 분화를 가져와 조선 사회의 전통적 신분제를 붕괴시키는 주요한 원인이 되었다. 그러나 조선 후기 상업 자본은 한편으로는 봉건권력과의 결탁을 유지의 기반으로 삼았기 때문에 대부분은 특권적 정상(政商)이었다. 또한 이들은 상업 독점으로 축적한 자본을 산업자본으로 전환하기보다 토지에 투자하여 봉건적 토지소유관계를 유지하려는 경향이 강하였다. 이 때문에 조선 후기 상업 자본은 근대적 상업과 상업 자본으로 발전할 수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평가할 수 있다.
이상 개항 이후 농업상황과 개혁정책을 살펴본 것과 같이 개항이후에는 적어도 갑오농민전쟁이전까지에 조선은 세계자본주의 근대화국가로부터 받은 경제적인 충격보다 사회적, 심리적 충격이 더 심하였다. 개항을 계기로 더욱 발전한 상품화폐 경제와 미곡 상품화의 진전은 양반층과 미곡상인들의 본원적인 화폐욕을 자극하였고, 경영자로서의 자각을 부여함으로써 지주 경영을 더욱 강화하게 하였다. 그리고 穀價(곡가)의 폭등은 토지가 지배층에게 한층 더 집중되어 소작농민들을 도탄의 지경에 빠뜨렸다. 조선의 정부나 지방관리는 항일적 경제대책인 방곡령의 실시를 통해서 식량난의 문제를 緩解하려고 노력하였지만 결국 일본의 강압으로 실패하였다. 뿐만 아니라 일본의 강요 때문에 방곡령 사건에서 나온 배상 지불은 농민의 부담을 한층 더 가중 시켰다.
이런 상황은 농민의 반항과 배외 정서를 더욱 심화시켰다. 따라서 이 시기의 농민전쟁은 임술민란 이전의 농민운동과는 달리 反封建(반봉건)·反帝國主義(반제국주의)적 성격을 가지고 있었을 뿐만이 아니라, 투쟁목표, 요구사항, 투쟁계획도 이전보다 더 선명하였다. 이리하여 이 시기의 농민전쟁 특히 갑오농민전쟁은 변혁운동을 준비하고 전개할 수 있는 기초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당시 위정자나 지식인들은 봉건왕조를 계속 유지하면서, 많은 사회문제를 타개하고 서구 열강을 대처할 수 있는 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근대화 개혁을 시도하려 하였다.
정부지배층의 개혁정책과 농민층이나 進步(진보)양반층이 요구한 개혁방안은 모두 이 시기의 사회모순, 농업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인데 이런 점에서 兩者(양자)는 同一(동일)한 것이다. 그러나 그 내용과 성격은 전혀 다르다. 전자는 地主制(지주제)·地主(지주)적 상품생산을 바탕으로 농촌경제를 안정시키고 세금제도만을 개혁함으로써 근대화시키려는 것이었고, 후자는 地主制(지주제)를 해체시키는 가운데 農民經濟(농민경제)·農民的(농민적) 상품생산의 안정을 확보하고 토지제도까지 개혁하는 근대화를 추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후자는 甲午年(갑오년) 개화파 정권 하에서 억제하게 되었다.
전반적으로 개항기의 조선의 농업 기술은 예전보다 발전했지만, 정변이나 전쟁이 연속적으로 일어남으로서 정세가 동요되고 아울러 외부세력의 강압 때문에 농업기반은 점점 약해질 수밖에 없다. 비록 당시 위정자가 몰락한 봉건왕조를 유지하려는 입장에서 농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지만 이 농업문제가 발생하는 원인을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에 농업문제는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 결국 쇄국정책을 쓰던 조선은 생산력 수준이 떨어져 있는 상태에서 개항을 맞아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에 편입하였으나 경제 실력이 열강과 경쟁할 수 없기 때문에 점차 식민지로 전락하는 것을 면하지 못하였다.
참고문헌 및 사이트:
권병탁, 한국경제사, 박영사, 1984.
조재곤, 한국근대사회와보부상, 혜안출판사, 2001.
황명수외, 한국의 시장상업사, 신세계 출판부, 1992.
유원동, 조선후기상업사 연구현황, 조선후기사회경제사연구입문, 민족문화사, 199.1
김용섭, 조선후기농업사 연구, 일조각, 1979.
김영모, 디지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방미디어, 2001.
박준채, 경제사입문, 법문사, 1981.
李憲昶, 『韓國經濟通史』, 法文社, 1999.
이호철, 『농업경제사연구』, 대구:경북대학교출판부, 1998.
金容燮, 『韓國近現代農業史硏究 --韓末·日帝下의 地主制와 農業問題--』, 증보판, 지식산업사, 2001.
金容燮, 『韓國近代農業史硏究〔Ⅲ〕--轉換期의 農民運動--』, 지식산업사, 2001.
金容燮, 『韓國近代農業史硏究 --農業改革論·農業政策--〔上〕』, 일조각, 2001.
金容燮, 『韓國近代農業史硏究 --農業改革論·農業政策--〔下〕』, 일조각, 2001.
金容燮, 『朝鮮後期農業史硏究 --農業運動·農學思潮--〔Ⅱ〕』, 일조각, 1977.
安秉直·中村 哲, 『近代朝鮮工業化의 硏究 --1930∼1945年--』, 일조각, 1993.
李丙燾, 『韓國史大觀』, 동방도서, 1983.
김덕진, 『연표로 보는 한국역사』, 도서출판선인, 2002.
http://kr.encycl.yahoo.com/final.html
http://chungdong.or.kr/highroom/history/dictionary
http://www.dong-gu.ms.kr/kek/학습자료실
http://chosunside.co.kr/technote/read.cgi
http://www.tutork.com/yh22-2.htm

키워드

  • 가격2,000
  • 페이지수13페이지
  • 등록일2004.11.08
  • 저작시기2004.1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72327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