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소유란?
2. 판매의 종말
3. 삶으로의 접속
4. 문화와 자본주의
5. 문화 마케팅
6. 소유는? 재산은? - 새로운 인간
7. 접속. 접속권
8. 문화
9. 새롭게 열어야 할 시대
2. 판매의 종말
3. 삶으로의 접속
4. 문화와 자본주의
5. 문화 마케팅
6. 소유는? 재산은? - 새로운 인간
7. 접속. 접속권
8. 문화
9. 새롭게 열어야 할 시대
본문내용
서 접속은 무조건 불순한 영향력으로 간주한다.
<시민사회조직의 운동>
근본주의운동의 이런 정서는 대다수 시민사회 조직이 추구하는 이념과 충돌한다.시민사회조직은 지역문화의 회복을 주장하면서도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세계에서 다른 문화가 존재할 수 있는 권리 또한 존중해야 한다고 믿는다.
자기만의 문화 정체성을 앞세우면서도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세상을 위해 싸우는 것 그것이 시민사회조직 운동의 특성이다.
"나는 사방이 담으로 둘러싸여 있고, 창문을 굳게 닫아놓은 집에서 살고 싶지 않다. 온 세계에서 불어오는 문화를 자유롭게 느낄 수 있는 그런 집에서 살고싶다. 그러나 밖에서 불어온 문화에 덩달아 휩쓸려 가지는 않겠다."<마하트마 간다>
다른 문화에 접속할 수 있는 길을 터 주면서도 자기 문화의 색깔과 개성을 고수한다는 점에서 시민사회조직이 되었건 근본주의 세력이 되었건 앞으로 지역문화를 정치적으로 결집하여 동원하는 데 성공하는 집단이 큰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이다.
다. 놀이의 변증법
<노동정신에서 놀이정신으로>
노동은 자연을 부리고 자원을 캐고 물건을 만드는 활동이다. 재산은 자연이 분해되고 가공되고 상품화되었을 때 마지막으로 취하는 모습으로 재산은 자연을 재처리하여 내 것과 네것으로 분할하는 방법이다. 산업시대에는 노동정신을 장악한 집단이 재산분배방식을 결정했고 계급의 구분도 이런 맥락에서 이뤄졌다.
산업자본주의가 문화자본주의로 넘어가는 지금, 노동정신은 놀이정신에게 서서히 밀려나고 있다.
<호모 루덴스>
놀이는 '문화를 창조하는 것'이다. 사람의 상상력을 해방시켜 공유할 수 있는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놀이는 인간행동의 가장 근본적 범주에 해당된다. 놀이가 없으면 문명도 존립할 수 없다. 새로운 자본주의 시대에는 놀이가 세계경제의 전면에 등장한다. 문화체험의 상품화는 놀이의 모든 차원을 식민화하여 순전히 사고 팔 수 있는 형식으로 바꾸려는 노력에 다름 아니다.
접속은 누구를 놀이에 참여시키고 누구를 배제시킬 것인지 결정하는 방식의 문제로 귀결된다.
<놀이의 전제와 규칙>
놀이를 지배하는 전제와 규칙은 '일'을 지배해온 전제와 규칙과는 크게 다르다. 놀이는 신나고 즐겁다. 그리고 놀이는 자발적이다. 자기가 선택해서 자유롭게 끼여드는 활동이 놀이다. 물론 일도 자기가 선택할 수는 있다. 하지만 교육을 많이 받아서 그렇게 이 일 저 일 골라가면서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은 전세계 노동인구의 20%에 불과하다. 나머지 사람들에게 일은 '생존의 문제'이다.
진정한 놀이는 살과 살이 맞닿은 친숙한 분위기에서 일어나며 이 때 사람들의 참여도도 놓아진다. 일과는 달리 놀이는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한 도구가 아니며 그 자체가 목적이다. 논다는 행위 자체에서 보상을 얻는다. 놀이가 추구하는 것은 생산이 아니라 즐거움이다.
<놀이중심에서 일 중심으로, 다시 일 비중이 줄어드는 세상>
근대로 넘어오면서 일과 놀이의 비중이 뒤바뀌었다. 일은 인간활동의 주역이 되었고 놀이는 일과 잠 사이에 잠깐잠깐 끼여드는 조역으로 밀려났다. 문화영역과 상업영역의 관계가 바뀌면서 이런 현상이 나타났다.
그러나 다시 일의 비중이 줄어드는 세상이 돌아왔다. 생산공정의 자동화와 인간노동력을 대체하는 로봇의 등장으로 인간은 시장의 올가미로부터 서서히 풀려나고 있다. 이제 노동이 인간의 일상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현격히 감소할 것이다.
<시장에서의 놀이?>
산업경제에서 일이 중요했던 것처럼 문화경제에서는 놀이가 점점 중요해진다. 시장의 힘이 놀이를 점령하면 놀이의 문화적 의미는 평가절하되기 십상이고 놀이 활동에서 탄생하고 자양분을 얻는 문화영역도 존립근거를 잃는다.
순수한 놀이는 인간이 누리는 자유의 가장 놓은 수준의 표현형식이다. 자유는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문화영역의 순수한 놀이는 인간적 결속의 숭고한 표현이다. 놀이에 참가한 모든 사람은 잠시 동안 경계심을 접어두고 자기를 내던지면서 남들과 하나가 되는 순간의 희열을 경험한다. 진정한 놀이는 혼자 할 수 없다.
자유와 놀이는 토대가 같다. 사람은 문화영역에서 순수한 놀이를 경험하는 동안 마음을 열고 남과 어울리는 법을 배운다. 우리는 서로에게 빠져들 때만 진정한 인간이 된다. 인간은 순수한 놀이에 완전히 참여해 보아야 비로소 진정한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
진정한 자유는 소유가 아니라 공유에서 나온다. 공유하고 공감하고 포용할 수 없으면 사람은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없다.
자본주의체제 스스로도, 앞으로 가장 유망한 사업영역으로 꼽고 있다.(테마파크, 종합오락센터, 스포츠 영화, 가상세계 등) 상업영역에서 오락형식의 놀이를 돈내고 즐기는 것 자체가 나쁜 일은 아니지만 문황영역에서 성숙한 놀이는 씨가 마르고 그 빈자리를 온통 유료놀이가 차지할 때 문명은 심각한 와해 위기에 직면할 것이다.
라. 21세기 우리가 만들어갈 사회
<새로운 문명의 위기>
컴맹을 극복케 하여 사이버스페이스에 제약없이 누비고 다닐 수 있게 하는 것도, 입장료를 낼 수 있는 충분한 수입과 생활수준을 보장한다고 해서, 21세기 전자네트워크의 혜택이 누구에게나 돌아가게 만든다고 해서 새로운 문명의 위기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
새로운 글로벌 네크워크 경제에 대한 접속을 보장하는 것 못지 않게 중요한 일은, 건강하고 다양한 지역문화에 접근할 수 있는 안정된 길을 보장하는 것이다.
적절한 제약을 가하지 않을 경우, 시장의 힘은 문화영역을 집어삼켜 상품화된 파편들로 변질시킬 것이다. 수천년을 살아온 인간 체험의 풍부한 문화적 다양성을 상실한다는 것은 번영하는 데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문화와 상업이 적절한 균형을 이룬 생태계를 복원시키는 일은, 다가오는 시대에 우리가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업이다.
접속의 시대는 '우리가 타인과 맺는 가장 기본적인 인간관계를 과연 어떤 방향으로 재설정하고 싶어하는가?'라는 근본적 물음으로 우리를 내 몰 것이다. 단순히 누가 접속권을 얻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유형의 체험과 세계가 과연 접속할 만한 가치가 있고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가를 따지는 물음이다. 21세기에 우리가 만들어갈 사회의 성격은 이 답변에 좌우될 것이다.
<시민사회조직의 운동>
근본주의운동의 이런 정서는 대다수 시민사회 조직이 추구하는 이념과 충돌한다.시민사회조직은 지역문화의 회복을 주장하면서도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세계에서 다른 문화가 존재할 수 있는 권리 또한 존중해야 한다고 믿는다.
자기만의 문화 정체성을 앞세우면서도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세상을 위해 싸우는 것 그것이 시민사회조직 운동의 특성이다.
"나는 사방이 담으로 둘러싸여 있고, 창문을 굳게 닫아놓은 집에서 살고 싶지 않다. 온 세계에서 불어오는 문화를 자유롭게 느낄 수 있는 그런 집에서 살고싶다. 그러나 밖에서 불어온 문화에 덩달아 휩쓸려 가지는 않겠다."<마하트마 간다>
다른 문화에 접속할 수 있는 길을 터 주면서도 자기 문화의 색깔과 개성을 고수한다는 점에서 시민사회조직이 되었건 근본주의 세력이 되었건 앞으로 지역문화를 정치적으로 결집하여 동원하는 데 성공하는 집단이 큰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이다.
다. 놀이의 변증법
<노동정신에서 놀이정신으로>
노동은 자연을 부리고 자원을 캐고 물건을 만드는 활동이다. 재산은 자연이 분해되고 가공되고 상품화되었을 때 마지막으로 취하는 모습으로 재산은 자연을 재처리하여 내 것과 네것으로 분할하는 방법이다. 산업시대에는 노동정신을 장악한 집단이 재산분배방식을 결정했고 계급의 구분도 이런 맥락에서 이뤄졌다.
산업자본주의가 문화자본주의로 넘어가는 지금, 노동정신은 놀이정신에게 서서히 밀려나고 있다.
<호모 루덴스>
놀이는 '문화를 창조하는 것'이다. 사람의 상상력을 해방시켜 공유할 수 있는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놀이는 인간행동의 가장 근본적 범주에 해당된다. 놀이가 없으면 문명도 존립할 수 없다. 새로운 자본주의 시대에는 놀이가 세계경제의 전면에 등장한다. 문화체험의 상품화는 놀이의 모든 차원을 식민화하여 순전히 사고 팔 수 있는 형식으로 바꾸려는 노력에 다름 아니다.
접속은 누구를 놀이에 참여시키고 누구를 배제시킬 것인지 결정하는 방식의 문제로 귀결된다.
<놀이의 전제와 규칙>
놀이를 지배하는 전제와 규칙은 '일'을 지배해온 전제와 규칙과는 크게 다르다. 놀이는 신나고 즐겁다. 그리고 놀이는 자발적이다. 자기가 선택해서 자유롭게 끼여드는 활동이 놀이다. 물론 일도 자기가 선택할 수는 있다. 하지만 교육을 많이 받아서 그렇게 이 일 저 일 골라가면서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은 전세계 노동인구의 20%에 불과하다. 나머지 사람들에게 일은 '생존의 문제'이다.
진정한 놀이는 살과 살이 맞닿은 친숙한 분위기에서 일어나며 이 때 사람들의 참여도도 놓아진다. 일과는 달리 놀이는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한 도구가 아니며 그 자체가 목적이다. 논다는 행위 자체에서 보상을 얻는다. 놀이가 추구하는 것은 생산이 아니라 즐거움이다.
<놀이중심에서 일 중심으로, 다시 일 비중이 줄어드는 세상>
근대로 넘어오면서 일과 놀이의 비중이 뒤바뀌었다. 일은 인간활동의 주역이 되었고 놀이는 일과 잠 사이에 잠깐잠깐 끼여드는 조역으로 밀려났다. 문화영역과 상업영역의 관계가 바뀌면서 이런 현상이 나타났다.
그러나 다시 일의 비중이 줄어드는 세상이 돌아왔다. 생산공정의 자동화와 인간노동력을 대체하는 로봇의 등장으로 인간은 시장의 올가미로부터 서서히 풀려나고 있다. 이제 노동이 인간의 일상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현격히 감소할 것이다.
<시장에서의 놀이?>
산업경제에서 일이 중요했던 것처럼 문화경제에서는 놀이가 점점 중요해진다. 시장의 힘이 놀이를 점령하면 놀이의 문화적 의미는 평가절하되기 십상이고 놀이 활동에서 탄생하고 자양분을 얻는 문화영역도 존립근거를 잃는다.
순수한 놀이는 인간이 누리는 자유의 가장 놓은 수준의 표현형식이다. 자유는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문화영역의 순수한 놀이는 인간적 결속의 숭고한 표현이다. 놀이에 참가한 모든 사람은 잠시 동안 경계심을 접어두고 자기를 내던지면서 남들과 하나가 되는 순간의 희열을 경험한다. 진정한 놀이는 혼자 할 수 없다.
자유와 놀이는 토대가 같다. 사람은 문화영역에서 순수한 놀이를 경험하는 동안 마음을 열고 남과 어울리는 법을 배운다. 우리는 서로에게 빠져들 때만 진정한 인간이 된다. 인간은 순수한 놀이에 완전히 참여해 보아야 비로소 진정한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
진정한 자유는 소유가 아니라 공유에서 나온다. 공유하고 공감하고 포용할 수 없으면 사람은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없다.
자본주의체제 스스로도, 앞으로 가장 유망한 사업영역으로 꼽고 있다.(테마파크, 종합오락센터, 스포츠 영화, 가상세계 등) 상업영역에서 오락형식의 놀이를 돈내고 즐기는 것 자체가 나쁜 일은 아니지만 문황영역에서 성숙한 놀이는 씨가 마르고 그 빈자리를 온통 유료놀이가 차지할 때 문명은 심각한 와해 위기에 직면할 것이다.
라. 21세기 우리가 만들어갈 사회
<새로운 문명의 위기>
컴맹을 극복케 하여 사이버스페이스에 제약없이 누비고 다닐 수 있게 하는 것도, 입장료를 낼 수 있는 충분한 수입과 생활수준을 보장한다고 해서, 21세기 전자네트워크의 혜택이 누구에게나 돌아가게 만든다고 해서 새로운 문명의 위기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
새로운 글로벌 네크워크 경제에 대한 접속을 보장하는 것 못지 않게 중요한 일은, 건강하고 다양한 지역문화에 접근할 수 있는 안정된 길을 보장하는 것이다.
적절한 제약을 가하지 않을 경우, 시장의 힘은 문화영역을 집어삼켜 상품화된 파편들로 변질시킬 것이다. 수천년을 살아온 인간 체험의 풍부한 문화적 다양성을 상실한다는 것은 번영하는 데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문화와 상업이 적절한 균형을 이룬 생태계를 복원시키는 일은, 다가오는 시대에 우리가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업이다.
접속의 시대는 '우리가 타인과 맺는 가장 기본적인 인간관계를 과연 어떤 방향으로 재설정하고 싶어하는가?'라는 근본적 물음으로 우리를 내 몰 것이다. 단순히 누가 접속권을 얻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유형의 체험과 세계가 과연 접속할 만한 가치가 있고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가를 따지는 물음이다. 21세기에 우리가 만들어갈 사회의 성격은 이 답변에 좌우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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