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향리의 신분적 지위
⑴ 조선 초 향리의 지위 형성
⑵ 법제적 지위
⑶ 사회 경제적 지위
향리의 職任 構成과 鄕役의 특성
⑴ 향리의 職任
⑵ 鄕吏의 構成
⑶ 鄕役의 특성
향리의 역할
⑴ 祭儀의 主宰
⑵ 탈춤의 後援
⑴ 조선 초 향리의 지위 형성
⑵ 법제적 지위
⑶ 사회 경제적 지위
향리의 職任 構成과 鄕役의 특성
⑴ 향리의 職任
⑵ 鄕吏의 構成
⑶ 鄕役의 특성
향리의 역할
⑴ 祭儀의 主宰
⑵ 탈춤의 後援
본문내용
서술한 기록을 보면 風雲堂이라는 읍내의 祭堂에서 행한 祭儀와 함께 官衙에서 演行한 난희 중에서 탈판이 벌어지고 있었고 이 탈춤을 논 연희자들이 吏輩로 기록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여타의 다른 기록에서도 동래야류나 봉산탈춤 등의 연희자가 향리라는 사실이 매우 구체적으로 보이고 있다.
이와 같이 조선 시대 탈춤은 향리들이 주도적인 역할과 이해 위에서 정착·연행될 수 있었고 탈춤의 내용은 이미 여러 논문에서 밝혀졌듯이 민담이나 무속 등을 통하여 민중에게 친숙한 것이었다. 이러한 탈춤을 향리들이 연행함으로써 여기에 참여한 민중들로 하여금 이 집단과의 연대감을 새롭게 확인시켜 주는 장이 된 것이다.
또한 양반 사회 풍자와 비판을 사회의 구조적 모순은 도외시한 채 양반 사회에 대한 적대감을 향리에게만 불만을 표했던 민들에게 향리는 탈춤을 후원해줌으로써 민중들로 하여금 그들의 적대감도 결국은 커다란 사회 질서 속에 포함되는 것이며 이 질서 속에서 살아가자면 적대감도 어쩔 수 없이 생겨나게 마련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자리가 되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한편 탈춤의 연행과 함께 邑의 祭儀를 戶長이 변함없이 주재한 것 역시 향리 집단과 민중과의 불안정한 위계질서를 바로 잡는데 기여했다고 믿어진다. 祭儀를 향리집단이 主宰함으로써 이들이 民을 대표한다는 상징적 의미와 역할은 이 절차를 통하여 반복되고 강화될 수 있었다. 나아가 이 절차는 향리 집단이 민중과 깊은 유대 관계를 갖고는 있지만 양자 사이의 신분적 위계질서는 전도될 수 없음을 재확인시켜 민중들이 새로운 질서로 행해 나가는 것을 막으려는 방향으로 운용되었다.
이와 같이 조선 시대 탈춤은 향리들이 주도적인 역할과 이해 위에서 정착·연행될 수 있었고 탈춤의 내용은 이미 여러 논문에서 밝혀졌듯이 민담이나 무속 등을 통하여 민중에게 친숙한 것이었다. 이러한 탈춤을 향리들이 연행함으로써 여기에 참여한 민중들로 하여금 이 집단과의 연대감을 새롭게 확인시켜 주는 장이 된 것이다.
또한 양반 사회 풍자와 비판을 사회의 구조적 모순은 도외시한 채 양반 사회에 대한 적대감을 향리에게만 불만을 표했던 민들에게 향리는 탈춤을 후원해줌으로써 민중들로 하여금 그들의 적대감도 결국은 커다란 사회 질서 속에 포함되는 것이며 이 질서 속에서 살아가자면 적대감도 어쩔 수 없이 생겨나게 마련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자리가 되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한편 탈춤의 연행과 함께 邑의 祭儀를 戶長이 변함없이 주재한 것 역시 향리 집단과 민중과의 불안정한 위계질서를 바로 잡는데 기여했다고 믿어진다. 祭儀를 향리집단이 主宰함으로써 이들이 民을 대표한다는 상징적 의미와 역할은 이 절차를 통하여 반복되고 강화될 수 있었다. 나아가 이 절차는 향리 집단이 민중과 깊은 유대 관계를 갖고는 있지만 양자 사이의 신분적 위계질서는 전도될 수 없음을 재확인시켜 민중들이 새로운 질서로 행해 나가는 것을 막으려는 방향으로 운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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