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歌舞伎(덧말:かぶき)의 어원과 의미
2. 歌舞伎(덧말:かぶき)의 배경과 변천
3. 歌舞伎(덧말:かぶき)의 연기와 연출
4. 歌舞伎(덧말:かぶき)의 세습화
5. 歌舞伎(덧말:かぶき)의 작품세계
6. 오늘날의 歌舞伎(덧말:かぶき)
2. 歌舞伎(덧말:かぶき)의 배경과 변천
3. 歌舞伎(덧말:かぶき)의 연기와 연출
4. 歌舞伎(덧말:かぶき)의 세습화
5. 歌舞伎(덧말:かぶき)의 작품세계
6. 오늘날의 歌舞伎(덧말:かぶき)
본문내용
으로 상하 관계가 이루어지던 무사사회의 미덕과 가치관이 잘 나타난 가부키 추신구라. 이 가부키는 주군을 잃은 무사 한 사람 한 사람이 지휘자 유라노스케를 중심으로 정의감으로 단결하여 고난을 이겨내며 뜻을 이루는 강렬한 충의를 그려낸 작품이었다.
예술지상주의의 신가부키 [슈젠지모노가타리()]
가부키는 대부분이 에도시대에 창작되었지만, 메이지 유신 이후에는 새로운 수법을 동원한 작품이 근대 문인들의 손에 의해서 창작되어 사회의 새로운 기운을 표현해 내기에 이르렀다. 슈젠지 모노가타리는 이즈()의 슈젠지 온천 마을에 전해지던 전설을 바탕으로 오카모토기도가 쓴 작품이다. 1911년에 초연된 이래 큰 인기를 얻어 신가부키의 명작으로 손꼽히고 있다.
이 작품은 오스카와일드의 영향을 받아 당시의 일본문단에 많은 영향을 끼쳤던 문예사조인 예술지상주의 정신이 잘 나타나 있다.
작품의 시대적 배경은 가마쿠라시대, 슈젠지에 유배되어 있던 장군 미나모토노요리이에()는 마을에 살고 있는 가면제조 기술자인 야샤오()에게 명을 내려 자신의 얼굴을 본뜬 가면을 만들도록 한다. 야샤오는 신기에 가까울 정도의 뛰어난 솜씨를 지니고 있었으나, 이상하게도 미나모토노요리이에 장군의 가면은 좀처럼 완성하지 못하였다. 야샤오는 심혈을 기울여 만들곤 했지만 만드는 가면마다 죽음의 기운이 느껴져서 차마 바치지 않았다.
장군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몸소 가면을 찾으러 야샤오의 집으로 온다. 마침 야사오에게는 두 딸이 있었다. 언니는 소박한 성품의 가에데(), 여동생은 귀족이나 무사의 아내되기가 소원인 가쓰라(). 야샤오는 자신의 신분도 생각하지 않고 무리한 소원을 지니고 있는 가쓰라를 타이르기도 했으나 가쓰라는 막무가내였다.
장군은 가면을 내어놓으라고 하나 야샤오는 아직 바칠 만큼 자신 있는 가면을 만들지 못했다고 거절한다. 이 때 가쓰라가 나서면서 아버지가 만든 가면 가운데 하나를 장군에게 바쳤다. 장군은 이렇게 훌륭한 가면은 처음 보았다고 칭찬하면서 가면을 받아들면서 가쓰라도 마음에 드니 자신의 시중을 들게 하겠다며 데리고 갔다. 천한 집안의 딸이었으나 소원을 이루었다고 가쓰라는 매우 기뻐했다.
그러나 가쓰라의 기쁨도 잠시 뿐이었다. 거소로 돌아가는 길에 호죠도키마사()가 보낸 자객들이 장군을 죽이려 하여 큰 싸움이 벌어진다. 가쓰라는 아버지가 만든 가면을 쓰고, 장군을 대신 하여 죽을 각오로 열심히 싸우며 적들을 유인하여 자기 집 쪽으로 도망했다.
결국 크게 부상을 입은 가쓰라는 아버지 곁으로 돌아왔다. 아픔을 이기지 못해 고통스러운 얼굴로 말하기를 '지금 죽어도 나는 여한이 없습니다. 가난한 집안에서 백년을 사는 것보다, 잠시 동안이었으나 장군 집안의 식구가 되었으니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하며 숨을 거두어갔다.
야샤오는 생각했다. 자신이 만든 가면에서 죽음의 기운이 감돌던 것은 자신의 솜씨가 모자라서가 아니라, 실제 장군의 얼굴에 그런 기운이 감돌았기 때문이며, 신비롭게도 그런 기운까지 가면에 묘사하였음을 깨달았다. 야샤오는 내심 자신의 가면 솜씨에 탄복하면서 더욱 뜨거운 창작 의욕을 가지게 되었다.
야샤오는 가면을 벗고 숨을 거두어 가는 딸의 고통스러워하는 얼굴을 열심히 들여다보았다. 욕심껏 살다가 처절한 죽음을 맞이하는 딸의 얼굴을 자세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리곤 종이와 붓을 대령시켰다. 이후 가면을 깎아 표정을 만들 때 참고 자료가 될 것이라면서 비정한 손놀림으로 죽어가는 딸의 얼굴을 그리기 시작했다는데서 막을 내린다.
6. 오늘날의
많은 가부키 가운데서 사랑의 이야기, 충신의 이야기, 예술의 이야기 등의 세 편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이는 가부키 세계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가부키는 제7대 이치카와 단주로가 지정한 18편의 명작선을 '가부키 18번'이라 하여 주요 레퍼토리로 하며, 이후에 정해진 '신 가부키 십팔번', '신 고전 십종 가부키' '삼대 가부키' 등이 있어 가부키 감상의 영역을 다양하게 넓히고 있다.
서민들의 세계에서부터 무사들, 귀족들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등장인물과 배경을 지니는 가부키는 오늘날에도 새로이 창작되며 레퍼토리를 확대시켜 나아가고 있다.
참고 사이트 및 문헌
http://cafe.naver.com/japaneselove.cafe
http://itourlove.com
http://cafe.naver.com/kmroom.cafe
http://trcskim.pe.kr
사진과 함께 읽는 일본, 일본인, 일본문화 (저자 정형 )
예술지상주의의 신가부키 [슈젠지모노가타리()]
가부키는 대부분이 에도시대에 창작되었지만, 메이지 유신 이후에는 새로운 수법을 동원한 작품이 근대 문인들의 손에 의해서 창작되어 사회의 새로운 기운을 표현해 내기에 이르렀다. 슈젠지 모노가타리는 이즈()의 슈젠지 온천 마을에 전해지던 전설을 바탕으로 오카모토기도가 쓴 작품이다. 1911년에 초연된 이래 큰 인기를 얻어 신가부키의 명작으로 손꼽히고 있다.
이 작품은 오스카와일드의 영향을 받아 당시의 일본문단에 많은 영향을 끼쳤던 문예사조인 예술지상주의 정신이 잘 나타나 있다.
작품의 시대적 배경은 가마쿠라시대, 슈젠지에 유배되어 있던 장군 미나모토노요리이에()는 마을에 살고 있는 가면제조 기술자인 야샤오()에게 명을 내려 자신의 얼굴을 본뜬 가면을 만들도록 한다. 야샤오는 신기에 가까울 정도의 뛰어난 솜씨를 지니고 있었으나, 이상하게도 미나모토노요리이에 장군의 가면은 좀처럼 완성하지 못하였다. 야샤오는 심혈을 기울여 만들곤 했지만 만드는 가면마다 죽음의 기운이 느껴져서 차마 바치지 않았다.
장군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몸소 가면을 찾으러 야샤오의 집으로 온다. 마침 야사오에게는 두 딸이 있었다. 언니는 소박한 성품의 가에데(), 여동생은 귀족이나 무사의 아내되기가 소원인 가쓰라(). 야샤오는 자신의 신분도 생각하지 않고 무리한 소원을 지니고 있는 가쓰라를 타이르기도 했으나 가쓰라는 막무가내였다.
장군은 가면을 내어놓으라고 하나 야샤오는 아직 바칠 만큼 자신 있는 가면을 만들지 못했다고 거절한다. 이 때 가쓰라가 나서면서 아버지가 만든 가면 가운데 하나를 장군에게 바쳤다. 장군은 이렇게 훌륭한 가면은 처음 보았다고 칭찬하면서 가면을 받아들면서 가쓰라도 마음에 드니 자신의 시중을 들게 하겠다며 데리고 갔다. 천한 집안의 딸이었으나 소원을 이루었다고 가쓰라는 매우 기뻐했다.
그러나 가쓰라의 기쁨도 잠시 뿐이었다. 거소로 돌아가는 길에 호죠도키마사()가 보낸 자객들이 장군을 죽이려 하여 큰 싸움이 벌어진다. 가쓰라는 아버지가 만든 가면을 쓰고, 장군을 대신 하여 죽을 각오로 열심히 싸우며 적들을 유인하여 자기 집 쪽으로 도망했다.
결국 크게 부상을 입은 가쓰라는 아버지 곁으로 돌아왔다. 아픔을 이기지 못해 고통스러운 얼굴로 말하기를 '지금 죽어도 나는 여한이 없습니다. 가난한 집안에서 백년을 사는 것보다, 잠시 동안이었으나 장군 집안의 식구가 되었으니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하며 숨을 거두어갔다.
야샤오는 생각했다. 자신이 만든 가면에서 죽음의 기운이 감돌던 것은 자신의 솜씨가 모자라서가 아니라, 실제 장군의 얼굴에 그런 기운이 감돌았기 때문이며, 신비롭게도 그런 기운까지 가면에 묘사하였음을 깨달았다. 야샤오는 내심 자신의 가면 솜씨에 탄복하면서 더욱 뜨거운 창작 의욕을 가지게 되었다.
야샤오는 가면을 벗고 숨을 거두어 가는 딸의 고통스러워하는 얼굴을 열심히 들여다보았다. 욕심껏 살다가 처절한 죽음을 맞이하는 딸의 얼굴을 자세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리곤 종이와 붓을 대령시켰다. 이후 가면을 깎아 표정을 만들 때 참고 자료가 될 것이라면서 비정한 손놀림으로 죽어가는 딸의 얼굴을 그리기 시작했다는데서 막을 내린다.
6. 오늘날의
많은 가부키 가운데서 사랑의 이야기, 충신의 이야기, 예술의 이야기 등의 세 편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이는 가부키 세계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가부키는 제7대 이치카와 단주로가 지정한 18편의 명작선을 '가부키 18번'이라 하여 주요 레퍼토리로 하며, 이후에 정해진 '신 가부키 십팔번', '신 고전 십종 가부키' '삼대 가부키' 등이 있어 가부키 감상의 영역을 다양하게 넓히고 있다.
서민들의 세계에서부터 무사들, 귀족들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등장인물과 배경을 지니는 가부키는 오늘날에도 새로이 창작되며 레퍼토리를 확대시켜 나아가고 있다.
참고 사이트 및 문헌
http://cafe.naver.com/japaneselove.cafe
http://itourlove.com
http://cafe.naver.com/kmroom.cafe
http://trcskim.pe.kr
사진과 함께 읽는 일본, 일본인, 일본문화 (저자 정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