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음을 열고 상상을 하거나 세심하게 관찰을 하면 금새 찾을 수 있다. 이것은 수염 아저씨처럼 무뚝뚝한 어른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모두에게 개방된 것이 동화의 세계이다.
배우들이 이렇게 읽어준 이번 연극은 TV에서 방영된 ‘TV 동화세상’이라는 프로그램과 닮아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프로그램 이름이 맞는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전에 학교 가는 도중 애들이 넘어지지 말라고 밤에 태우고 남은 연탄재를 새벽에 얼은 빙판길에 말마다 빼지 않고 뿌리시는 어느 할머니 이야기가 생각난다.
3.비장함과 온화함
앞에서 설명된 『엘렉트라』의 비장함과 『우동 한 그릇』의 온화함(따뜻함)을 극적으로 대비하여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두 연극의 조명의 차이이다. 『엘렉트라』를 보면은 왜 이렇게 붉은 빛 일색의 조명들이 쓰였을까하는 의문은 조금만 연극을 보다보면 금새 이해가 간다. 그리고 『우동 한 그릇』의 따뜻하고 온화한 노란색 위주의 조명은 극이 진행되는 동안에 관객들에게 저절로 온기를 느끼게 한다. 특히 무대 한 가운데에 걸린 사각의 등은 더욱 정이 가는 것이다.
4.긍정과 부정
『엘렉트라』나 『우동 한 그릇』 둘 다 모두 전적으로 부정적이라거나 긍정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 분명히 비극이지만 『엘렉트라』에도 형제간의 사랑, 부모자식간의 사랑이라고 하는 긍정적인 면을 발견할 수 있고, 『우동 한 그릇』에도 서민들의 궁핍한 삶과 운명적 순응이라는 부정적인 면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작품 세계를 비교해 보면 어느 쪽이 우세하게 나타나는지는 확실하게 구분할 수 있다. 따라서 이 두 개를 비교할 때에는 전자의 것이 후자에 비해 세계를 좀 더 부정적으로, 후자의 것이 전자의 것에 비해 세계를 좀 더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라는 상대적인 관점을 지녀야 한다.
5.고대와 현대
두 작품은 시대적 배경도 다를뿐더러 원작의 발생 식도 엄청난 차이가 난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 신화의 세계에 대한 해석이 유용한 의미를 지니고 있듯이 『엘렉트라』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나름의 시사하는 바가 있다. 인간이 모순된 상황에 직면했을 때에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모순된 상황의 반복을 멈추기 위해서는 어떠한 결단이 필요한지, 인간이 우위에 두어야할 가치가 어떤 것인지, 사람들마다의 제각기 다른 가치를 어떻게 할 것인지 등 현대적 관점에서 찾을 수 있는 의의는 개인마다, 사회마다 다양하다. 또한 현대의 작품이라고 해서 항상 현재의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는 규칙은 없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통틀어서 시간을 초월해서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우동 한 그릇』에 나타난 부모-자식간의 사랑은 서로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두고 있다. 어머니의 어려움과 입장을 알기에 아무런 불평없이 아침, 저녁으로 조간, 석간 신문을 돌리는 첫째, 어머니가 늦게 들어오실 수밖에 없는 것을 알기에 식사당번을 자청하고 학교에 어머니를 모시고 가면 어머니가 직장을 하루 쉴 수밖에 없는 알기에 어머니에게 상장을 보이지 않고 형에게 부탁하는 둘째, 이런 아들들을 위해서 하루라도 빨리 빚을 갚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어머니, 이들 모두 서로의 입장을 너무나 잘 이해하고 있기에 그들의 사랑이 빛이 나는 것이다.
▶ 두 편의 연극 중에서 무엇이 더 나은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엘렉트라』를 보고 나서는 신경이 팽팽하게 긴장되면서 몸이 싸늘해지는 편이었다면 『우동 한 그릇』은 신경이 느슨해지면서 몸에 열기가 도는 편이었다. 요즘 여러 가지 일에 신경을 써다보니 너무 각박하게 시간이 흘러가서 그런지 조금 신경을 풀어주는 『우동 한 그릇』이 더 좋게 다가왔다. 그러다 보니 『우동 한 그릇』과 같은 방식을 사용한 다른 작품이 있는지 궁금해진다.
배우들이 이렇게 읽어준 이번 연극은 TV에서 방영된 ‘TV 동화세상’이라는 프로그램과 닮아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프로그램 이름이 맞는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전에 학교 가는 도중 애들이 넘어지지 말라고 밤에 태우고 남은 연탄재를 새벽에 얼은 빙판길에 말마다 빼지 않고 뿌리시는 어느 할머니 이야기가 생각난다.
3.비장함과 온화함
앞에서 설명된 『엘렉트라』의 비장함과 『우동 한 그릇』의 온화함(따뜻함)을 극적으로 대비하여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두 연극의 조명의 차이이다. 『엘렉트라』를 보면은 왜 이렇게 붉은 빛 일색의 조명들이 쓰였을까하는 의문은 조금만 연극을 보다보면 금새 이해가 간다. 그리고 『우동 한 그릇』의 따뜻하고 온화한 노란색 위주의 조명은 극이 진행되는 동안에 관객들에게 저절로 온기를 느끼게 한다. 특히 무대 한 가운데에 걸린 사각의 등은 더욱 정이 가는 것이다.
4.긍정과 부정
『엘렉트라』나 『우동 한 그릇』 둘 다 모두 전적으로 부정적이라거나 긍정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 분명히 비극이지만 『엘렉트라』에도 형제간의 사랑, 부모자식간의 사랑이라고 하는 긍정적인 면을 발견할 수 있고, 『우동 한 그릇』에도 서민들의 궁핍한 삶과 운명적 순응이라는 부정적인 면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작품 세계를 비교해 보면 어느 쪽이 우세하게 나타나는지는 확실하게 구분할 수 있다. 따라서 이 두 개를 비교할 때에는 전자의 것이 후자에 비해 세계를 좀 더 부정적으로, 후자의 것이 전자의 것에 비해 세계를 좀 더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라는 상대적인 관점을 지녀야 한다.
5.고대와 현대
두 작품은 시대적 배경도 다를뿐더러 원작의 발생 식도 엄청난 차이가 난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 신화의 세계에 대한 해석이 유용한 의미를 지니고 있듯이 『엘렉트라』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나름의 시사하는 바가 있다. 인간이 모순된 상황에 직면했을 때에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모순된 상황의 반복을 멈추기 위해서는 어떠한 결단이 필요한지, 인간이 우위에 두어야할 가치가 어떤 것인지, 사람들마다의 제각기 다른 가치를 어떻게 할 것인지 등 현대적 관점에서 찾을 수 있는 의의는 개인마다, 사회마다 다양하다. 또한 현대의 작품이라고 해서 항상 현재의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는 규칙은 없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통틀어서 시간을 초월해서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우동 한 그릇』에 나타난 부모-자식간의 사랑은 서로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두고 있다. 어머니의 어려움과 입장을 알기에 아무런 불평없이 아침, 저녁으로 조간, 석간 신문을 돌리는 첫째, 어머니가 늦게 들어오실 수밖에 없는 것을 알기에 식사당번을 자청하고 학교에 어머니를 모시고 가면 어머니가 직장을 하루 쉴 수밖에 없는 알기에 어머니에게 상장을 보이지 않고 형에게 부탁하는 둘째, 이런 아들들을 위해서 하루라도 빨리 빚을 갚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어머니, 이들 모두 서로의 입장을 너무나 잘 이해하고 있기에 그들의 사랑이 빛이 나는 것이다.
▶ 두 편의 연극 중에서 무엇이 더 나은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엘렉트라』를 보고 나서는 신경이 팽팽하게 긴장되면서 몸이 싸늘해지는 편이었다면 『우동 한 그릇』은 신경이 느슨해지면서 몸에 열기가 도는 편이었다. 요즘 여러 가지 일에 신경을 써다보니 너무 각박하게 시간이 흘러가서 그런지 조금 신경을 풀어주는 『우동 한 그릇』이 더 좋게 다가왔다. 그러다 보니 『우동 한 그릇』과 같은 방식을 사용한 다른 작품이 있는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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