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일체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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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에 대해서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세 가지 기본신조
1)사도신조
2)니케아 신조
3) 아타나시우스 신조
2. 삼위일체론의 정립
1)삼위일체의 개념
2)삼위일체에 대한 논의
①테르툴리아누스(Tertullian)
②오리겐(Origenes)
③군주신론
--a.역동적 군주신론(Dynamic Monarchianism)
--b.양태론적 군주신론(Modalistic Monarchianism)
3. 삼위일체논쟁
1)두 감독 디오니시우스 사이에 벌어진 논쟁
2)아리우스주의와 아타나시우스주의 사이에 벌어진 논쟁
3)세 카파도키아 교부들
①바실(Basil)
②닛사의 그레고리(Gregory of Nyssa)
③나지안즈의 그레고리(Gregory of Nazianzus)
4. 아우구스티누스의 삼위일체론의 특징

Ⅲ. 결론

본문내용

)로 존재한다고 한다. 이러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이론에 대하여 아리우스주의자들은 반대했다. 그들은 그리스도교 신학은 하느님 안에 우연이 있다는 것은 인정 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실체가 셋으로 나누어져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하여 아우구스티누스는 그러한 아리우스주의자들의 주장을 거절하고 관계개념으로 설명하려고 하였다. 즉 셋이라는 것은 관계를 의미한다. 생산하는 자, 생산된 자, 출원하는 자로서 하느님의 신성은 영원 전부터 그러한 관계를 가지고 존재했다고 말한다.
③성령에 관하여 아우구스티누스는 매우 불투명하고도 모호한 이해를 갖고 있었는데, 그는 삼위가 독자적 ‘페르소나’를 갖는 다고 하면서도 “영이 아버지와 아들의 상호적 사랑”(communemqua invicem se diligunt pater et filius caritatem)이라고 함으로써 아버지와 아들을 결합시키는 하나의 기능체(bond)로 변경시켰다. 이것은 현재까지 서방신학의 하나의 전통이 되고 있다.
④아우구스티누스는 성령의 이중출원(Filioque)을 강조한다.
그는 아들이 아버지로부터 왔으며 영도 아버지로부터 왔다고 말한다. 그러나 전자는 탄생했고 후자는 출원(processio)했다. 그러므로 전자는 그를 탄생케 한 아버지로부터 왔으나, 후자는 양자로부터 출원한 영이라는 것이다. 아버지는 영의 출원을 가능케 하신 분이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아들을 탄생케 했으나 동시에 그 아들을 그로부터 영이 출원하는 근원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아버지가 최초의 근원이고, 그 근원에서 아들이 능력을 받아 영에게 주었다는 것이다.
⑤아우구스티누스는 삼위일체적 하느님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하여 그는 자연에서 삼위일체의 비유를 발견하고, 외적 사람에게서 흔적을 발견하며, 내적 사람(영혼)에게서 형상을 발견하고 있다. 엄격히 말해서 그는 어디에나 삼위일체의 흔적(vestiges)이 있다는 것이다.
즉 자연계에서는 통일(unitas), 종류(species), 질서(ordo), 학문으로서는 자연학(physica), 논리학(logica), 윤리학(ethica), 실천면에서는 자료(natura), 교육(doctrina), 실용(usus)을 가지고 있다. 외적 인간에게는 환상(visio), 의욕(intentio), 의지(voluntas)를 발견한다.
그러나 아우구스티누스가 삼위일체론 연구에 대하여 이룬 가장 큰 공헌은 내적 사람 안에 하느님의 형상이 분명히 있다고 하는 심리학적 분석을 적용했다는 것이다. 거기에서도 그는 세 가지 측면을 하나로 묶어서 내적 사람의 한 측면으로 이해하는 세 조(組)를 말한다. 즉 존재(esse), 지식(nosse), 의욕(velle)을 위시하여, 마음(mens), 자아의식(notitia), 자기사랑(amor)을 두 번째조로, 기억(memoria), 지식(intelligentia), 의지(voluntas)를 세 번째 조로 말한다. 그는 이렇게 분석하면서 세계의 모든 존재와 사고구조 안에서 삼위일체의 흔적과 형상이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⑥아우구스티누스는 삼위일체 교리를 하느님을 단지 신앙적으로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논리적으로도 증명하려고 하였다. 그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논리적 근거를 성서에서는 발견치 못했다. 그러나 인식의 방법으로서 믿음이 지식의 전제조건이라는 것(사7:29), 그리고 “알기 위하여 믿는다”라는 테르툴리아누스적 논리와 함께 사도들의 고백, 교회의 고백을 바탕으로 삼위일체론을 적극적으로 강조했다.
이렇게 하여 형성된 그의 삼위일체론은 이때까지 많은 도전을 받았으나, 이에 넘어지지 않고 오히려 신앙과 신학의 길잡이가 되고 있다. 또한 아타나시우스 신조의 저술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음을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아우구스티누스의 삼위일체론의 말미부분을 언급하고 마치도록 하겠다.
“주 우리의 하느님이여, 우리는 성부 성자 성령이신 당신을 믿습니다. 당신이 삼위일체가 아니라면 진리는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쳐라. 내가 세상 끝날 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 28:19)라는 말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나는 당신을 기억합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주여, 한 분 하느님이신 당신이여, 성 삼위일체시여, 내가 한 분이신 당신의 영감으로 이 책에 기록한 모든 것을 삼위이신 당신이 받아 주소서. 만일 그 속에 나의 생각이 포함되어 있거든 한 분이시며 삼위이신 당신이 그것을 간과해 주소서.”
Ⅲ. 결론
성부, 성자, 성령이라는 단어는 우리 기독교의 독특한 언어이다. 이 독특한 언어가 본질상 같으며 동시에 위격상 다르다는 삼위일체는 기독교의 가장 핵심적인 교리인 동시에 신비적인 교리이다. 하나와 셋이 같다는 이론은 인간의 머리로 이해하기는 힘들다. 우리는 이 삼위일체를 바라봄에 있어서 머리로서가 아니라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또한 삼위일체를 바라봄에 있어서 ‘삼위일체’라는 교리자체의 중요성보다는 지금 우리가 이것을 어떻게 사용하며 받아들이고 있는가가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즉, 삼위일체 하느님의 객관적 사실 여부와는 달리 그것이 지금 우리 상황에서 어떻게 쓰이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며 이것이 바로 삼위일체교리가 가진 참된 의미일 것이다.
우리는 삼위 하느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며, 삼위 하느님을 사도신경으로 매주 고백하고 있다. 삼위 하느님이 주인이신 말씀을 들으며, 삼위 하느님의 축복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삼위일체론을 낯설게 받아들이고 있다. 또한 대부분의 신자들이 신앙생활에서 실천적인 단일신론을 따르고 있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삼위의 하느님을 제대로 해석해주는 일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며, 교회 내에서 삼위일체론에 대한 올바른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우리들은 사도신경의 삼위일체의 구조와 의미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보아야할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시대에 어찌 보면 단지 하나의 교리로만 생각되어지고 있는 삼위일체에 대해 우리들은 다시 한 번 신앙을 가지고 새롭게 다가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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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6.01.06
  • 저작시기20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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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330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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