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라미드건설, 마라톤전투, 테르모필레전투, 살라미스해전의 감상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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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제목 : 범국가적 프로젝트인 피라미드 건설
제목 : 하나로 뭉쳐 이긴 마라톤 전투
제목 : 스파르타의 정신적 승리인 테르모필레 전투
제목 : 정신적인 힘의 승리, 살라미스 해전

본문내용

테미스토클레스의 전략 전술적 재능과, 자신들의 자유와 가족들의 생존을 위해 싸우는 그리스 연합 함대 수병들의 용기와 대담함으로 승부를 걸 수 있었다. 테미스토클레스의 전략으로 살라미스에서 전투를 치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살라미스는 그리스 본토 사이의 좁은 해협으로 페르시아 함대가 작전을 펼칠 공간이 부족하므로 인력이나 해전 경험에서 유리한 점을 활용 할 수 없을뿐더러 사기가 앙양된 그리스 수병들이 승리 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것을 테미스토클레스는 확신할 수 있었다.
아테네를 점령한 후 크세르크세스는 페르시아 해군장병들을 만나 그들의 의견을 듣고자 페르시아 해군을 방문했다. 크세르크세스가 주관하는 회의에 시돈왕, 티로스왕 등 왕들이 즐비하게 참여했고, 마르도니우스를 비롯하여 거의 모든 사람들이 해전을 벌여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오로지 여성 지휘자 아르테미시아만은 홀로 해전을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그리스인이 해전에서 페르시아인보다 남자와 여자의 힘 차이만큼이나 훨씬 우월하기 때문이고 현재 원정의 목표였던 아테네를 점령한 마당에 그리스에서 페르시아에 저항할 나라는 아무도 없는 상태인데 구태여 위험한 해전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녀의 주장이다. 그동안 너무 많은 병력을 잃었을 뿐 아니라 그리스와의 여러 전투에서 손해를 많이 입자 화가 날 대로 난 크세르크세스는 분명 그리스를 정복하고 싶어 하였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크세르크세스는 해전을 하는 것으로 명령을 했고 페르시아 함대는 살라미스로 쳐들어가게 된다.
페르시아는 함대를 나누어 살라미스의 북쪽과 서쪽 연안을 동시에 차단하려 들었는데, 그로 인해 병력이 약화되었다. 페르시아 함대가 좁은 통로로 몰려들자 큰 혼란이 일어났다. 갑자기 살라미스 섬의 언덕에서 나팔 소리가 들리면서 그리스 동맹군의 갤리선이 쏜살같이 전진하였다. 그리스의 갤리선은 페르시아 함선의 측면을 들이 받았고 충격을 받은 페르시아 함선은 배가 부서지면서 균형을 잃고 서로 부딪치게 만들었다. 특히 돌발 상황에 놀랄 사이 동맹군은 타격을 입은 페르시아 함선을 계속 공격 했다. 그리스 함대가 2열을 지은데 비해 그들의 열은 셋이었다. 그러나 그리스 측이 배를 부딪쳐오고 좁은 해역에 너무 많은 배가 들어온 데 따르는 혼란으로 순식간에 함대의 열은 해체되었다. 그리스 수병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고 규율과 사기도 더 높았으므로 수적으로 앞선 적병들이 배에 오르지 못하도록 하면서 적선을 여러 차례 들이받아 부술 수 있었다. 이때 그리스의 배는 앞쪽을 강하게 만들어 배와 배끼리 부딪혔을 때 상대편 배를 침몰시키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삼단노선으로서 빠르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하여 해전에서 큰 힘을 발휘했고 결국 살라미스 해전에서 승리하게 된다.
그리스 병사들은 적에 비해 수적 열세이고, 전투경험도 부족하고, 포위 공격에 시달렸으나 몇 가지 이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현지 지리를 잘 알고, 보급과 병참이 수월하며, 요새를 활용하여 적의 수적 우세를 상쇄할 수 있다는 점이였으며, 왕, 귀족, 사제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과 자신의 가족, 재산을 위해 싸웠기 때문이였다. 무조건적인 헌신과 엄격한 복종은 전장에서는 힘을 발휘하지만, 그렇게 조직된 사회의 중추신경이 마비될 경우는 전의를 상실하고 낭패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하지만 자유로운 군사는 군대 전체의 사기를 드높이고 하급 병사들에게까지도 자신감을 심어주며, 통일적인 명령보다는 지휘관들의 합의를 이끌어낸다. “살라미스에서 그리스가 패배했더라면 서구 문명은 끝장났을 테고 특유의 자유 이념도 사라졌을 것이다“ 라고 많은 역사학자들 뿐 아니라 사람들은 생각한다. 이런 중요한 전쟁을 보다 열세였지만 승리로 이끌어 낸 그리스인들이 대단하다.
전쟁 후 테미스토클레스는 아테네시를 재건하고 스파르타의 반대를 무마하면서 진지를 구축하였고 아테네의 해상 관문이라고 할 수 있는 페이파에우스 항구도시를 건설하여 아테네인이 바다로 관심을 돌리도록 노력했다. 그러나 그는 스파르타와 대립하였고 여러 섬나라로 다니면서 금품을 짜낸 일로 인해 동맹국의 미움을 샀다. 그래서 결국 도편추방제로 추방당하여 페르시아로 망명해서 페르시아의 배려로 살았다. 그는 적국이였던 페르시아로 망명하면서 살라미스 해전에서 승기를 잡자 페르시아에게 도망갈 기회는 지금 밖에 없다고 한말을 살아서 돌아갈 수 있도록 기회를 준 것이라고 교묘하게 바꾸어서 페르시아의 배려를 받을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 나라의 장수로서 자신의 나라를 구하기 위해 죽을 각오를 하고 싸운 사람으로서 전쟁 후 그의 모습은 간신배처럼 보인다. 뛰어난 지략가로서 그는 역사에서 인정받지만 또한 비난을 받게 된다. 그 후 그리스에서는 전쟁에 참여했던 노예들의 노잡이까지 승리의 중추적 역할을 하였다며 민회 참석권을 요구하게 되었고 이는 그리스의 민주정치에 큰 발전을 이끌어 주는 계기가 되었다.
살라미스 해전의 그리스의 승리 중 가장 큰 요인으로 살라미스 앞바다의 지형을 들 수 있다. 그렇다면 전투의 승자를 가늠하게 만든 요인은 지형이었을까? 아니다. 그 이전에 페르시아가 '질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분석하는데 그것에 따르면 페르시아 군대는 왕에게 잘 보이기 위해 싸웠고 그리스인들은 민주주의와 같은 영광을 지키기 위해 싸웠다. 페르시아 군대는 패배해도 승리했다고 거짓으로 보고했고 살기 위해 아군이 아군을 공격하는 초유의 사태까지 벌어질 정도로 그들은 살아서 왕에게 잘 보이면 그만이라는 식이었다. 하지만 그리스동맹군은 달랐다. 그들이 승리해야 하는 이유는, 패전이 불 보듯 뻔한 전쟁터에 나섰던 이유는 자신과 자신들의 세상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때문에 이 전쟁은 외견상 동서양의 유례없는 대격돌로 볼 수 있지만 실상은 '물질적인 힘'과 '정신적인 힘'의 대결로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고 이제 이름으로만 알려졌던 살라미스 해전은 '정신'이 '물질'을 물리친 역사의 현장으로 기억할 수 있게 됐다.
1. 살육과 문명 : 빅터 데이비스 핸슨, 남경태 옮김, 푸른숲, 2001, (P.59~109)
2. 전쟁영웅들의 이야기(고대서양편) : 김충영, 두남, 2005, (P.2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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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7.11.13
  • 저작시기200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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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436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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