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코의 권력을 통해 근대적 주체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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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들어가는 말

2. 푸는 말
1) 근대성과 근대적 주체
2) 근대적 주체 형성의 규율의 구조
3) 규율의 육체 생산
4) 규율의 전략5) 감시, 제재, 시험
6) 일망 감시시설

3. 나오는 말

본문내용

차별적으로 다양한 대상에게 기능할 수 있는 것이다.
3. 나오는 말
푸코에 대한 글을 찾아보는 내내 아주 불쾌한 생각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일단 푸코와 관련된 모든 글의 어려움도 있겠지만 그가 말하는 권력의 절대성에 힘이 빠져버렸다. 주위 모든 것에 권력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모든 것은 그 권력 하에 놓여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이제까지 가지고 있던 인간에 대한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인간은 하나의 개체적 부품으로 파악될 수 밖에 없다. 인간의 행위는 모두 권력을 지향하며 그러나 그 또한 권력에 의한 것이며 권력의 틀에 갇혀있다는 것에 대해서 알고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그리고 모든 순수학문 마저도 결국에는 권력으로 향하고 있다.
인간과학은 개체들을 인식론적 장안에 적절하게 배치시키는 작업을 수행한다. 이렇게 정리분류된 기록은 권력이 최소한의 비용으로 개체를 길들이고 유용하게 만드는데 최대한 힘을 쓸 뿐이다. 푸코는 어떤 사회에서도 사회적 신체를 구성하고 특질화하는 다양한 권력관계가 있는데 이러한 권력관계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담론의 생산과 축적, 유통이 필요하다고 본다. 즉 권력은 진리를 생산함으로써 작용한다. 그는 이런 바탕에서 인간과학과 권력의 공모관계를 지적한다. 그는 권력이 지식의 전제조건이며 권력과 무관하거나 권력을 목표로 삼지 않는 순수한 지식은 있을 수 없다고 본다. 지식과 권력은 쌍둥이이며 지식 자체가 권력이고 권력은 지식을 통해 작용한다 윤호병 외 지음, 『후기 구조주의』, 고려원, 1992 138쪽~142쪽
일망 감시장치를 예로 들어보자. 고도로 발달한 현대의 전산망, 정보기술을 이러한 권력의 체계로 확장될 수 있다. 실제 미국의 국가 정보기관은 비밀리에 인터넷을 통해 세계 각국의 정보뿐만 아니라 인터넷을 사용하는 모든 개인들의 정보까지 억세스를 하고 수집한다고 한다. 그러한 사실을 뒷받침하는 사례로 스웨덴이 자국의 사회 정책을 위해 미국에서 자국 정보를 사갔다는 것이다. 어쩌면 영화 데몰리션 맨에서 나오는 사회가 될지도 모르는 우려가 생긴다. 인간을 해방시킨다고 주장한 인간의 이성과 계몽의 정신은 어쩌면 일망 감시장치에서 그 유토피아를 찾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푸코의 글을 통해 이러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것 또한 그가 형성해 놓은 담론의 권력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 아닌가?
그의 커다란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분명 그의 이야기들을 다시 되새김질을 할 필요가 있다. 그는 분명 전적으로 다른 사회, 다른 세계관을 산출하기 위한 것을 추구한 것이 아니다. 이런 점에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것에 비판하는 경우가 많다. 그는 보편주의적 문제제기와 총체적 해결을 추구하지 않는다. 그는 새로운 모색이 잠정적이고 국지적 형식으로 마련될 수 밖에 없다고 본다. 그는 어떠한 고정된 보편성의 척도 없이 기존 경계를 의심하면서 근대적 공간에서 자유를 실험한다.
그는 권력의 작용이 탈중심화된 것으로 보기 때문에 그에 맞서는 단일한 저항의 핵심도 없다. 그래서 모든 저항을 이끄는 단일한 집단, 계급은 없으며 오직 다양한 형태의 저항들이 있을 뿐이다. 자유와 해방을 실체화하고 고정시키는 모든 시도는 총체적 감시와 억압 체제를 마련하므로 그것은 다시 권력의 틀 속으로 들어오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푸코의 말들을 내 나름대로 이해하기로 해보자. 그리고 그것이 ‘들어가는 말’에서 제기한 문제에 대한 답변을 내릴 수 있는 과정이기도 하겠다.
일단 푸코의 글에서 여러 학자들이 많은 허점들을 발견하고 있다는 것이다. 푸코의 저서는 그의 고고학과 계보학적 탐구방식으로 이루어졌는데 그것의 토대를 이루는 자료들에 신빙성을 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그의 새로운 문제제기와 그를 통한 비주류적인 소재들 - 광기, 질병 등과 같은 사례를 인간 학문의 여러 아류적 인 것에서 끌어들여 왔다. 또한 그러한 아류를 다루는 만큼 정통의 사례를 비슷한 비율로 끄집어내었다면 좀 더 신빙성이 생겼을지도 모르지만 그것마저 인색하게 굴었다. 뤽 페리, 알랭 르노, 『68 사상과 현대 프랑스 철학』, 구교찬 외 옮김, 인간사랑, 1995
푸코 아류의 옹호와 예증 : 『광기의 역사』의 예, 127쪽~138쪽
그렇다면 그의 말들은 모든 것이 잘 못 된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앞서 제기한 문제에 대해 푸코는 그저 철학사를 뒤집어 어질어 놓은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의 말이 전적으로 진실이고 아니고를 넘어서자. 어차피 모든 학문의 순수성의 그의 말대로 이미 많이 퇴색하지 않았는가? 계몽주의의 이성이 우리에게 완벽한 유토피아를 가져다주지 못했다는 것이 사실이며 이성의 그늘에 가려 보지 못하고 잃어버린 것이 많다는 것도 사실이다. 또한 이미 언급한 것과 마찬가지로 푸코는 “인간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초역사적 보편적 질문을 던진 것도 아니기에 그의 이론으로 인간과 인간이 형성해 놓은 문화사회를 바라본 다는 것은 분명 잘 못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의 말에 대한 가치 평가는 무의미한 것이다. 또한 책을 잡기 시작하면서부터 계속 붙어 다니는 불쾌함마저 가질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는 여느 다른 철학자들처럼 인간에 대한 본질적인 대답을 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러한 그의 작업을 스스로 그의 입을 통해 공공연하게 이야기되었는데 인간에 대한 본질의 답을 요구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푸코는 분명 이제껏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인간을 저 위대한 존재자로만 형이상화 시키고 고귀하게 만들며 착각해온 인간들에게 그 틀을 한 번쯤 벗어나게 해주었다는 것이다. - 실제로 푸코 이후 그러한 질문이 사라진 것도 아니다. 그만큼 우리의 시각을 더욱 넓혀 주었으며 인식하지 못하고 그저 가볍게 지나간 그렇지만 결코 가볍지 않는 문제들도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러므로 인간이란 무엇인지 모른다고 말하는 푸코를 굳이 인간 본질의 문제까지 끌고들어와 가치평가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기존의 질문들과의 단절을 통해 질문의 틀을 고쳐 푸코의 작업 그 자체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분명 이제까지 그와 같은 사고의 틀을 가진 경우가 철학사에 없었기 때문에 그의 작업은 분명 한 획을 굵게 긋는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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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8.03.26
  • 저작시기2008.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457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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