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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을 제공하시고 사람이 이에 응답함으로써 예배가 성립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배는 구속의 은혜를 체험하고,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가진 사람이 자발적으로 하나님의 은총에 대하여 경배와 찬양으로 응답하는 행위를 말하는 것이다.
예배에 깊이 들어가는 것과 하나님을 아는 것은 비례한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어떻게 하나님에 대해 알 수 있는가? 여기에 있어서 첫 번째 원칙은 우리가 알고자 한다고 해서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께서 알려 주시는 것만큼만 알 수 있다는 것을 먼저 인정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능동적으로 하나님을 알 수 없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우리에게 계시하지 않으시면 우리는 절대자요 무한자이신 하나님을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성경은 하나님에 대해 말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당신을 계시하여 주셨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기록하게 하신 성경의 저자들에게 허락하셨던 성령의 감동을 우리들에게 주신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의 감동을 받아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 말씀은 기록된 성경을 통해 기록된 성경을 해석해 주는 설교를 통해서도 하나님을 알게 하신다.” 라고 칼바르트는 말하였다. 즉 하나님을 알고자 한다면 먼저 성경을 많이 읽어야 하고 성경에 대해 들어야 한다(설교). 하나님께서 당신을 열어 보이신 곳은 성경이고 그 성경을 풀어주는 설교를 통해서다.
「J. S. 윌리」는 예배의 중요성에 대해 말하기를 "예배는 생명 있는 종교가 가지는 유일하고 충분한 증거다"라고 말했으며, 루터는 "만일 그대가 하나님을 모시고 있다면 마땅히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 하나님께 돌려드릴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찬양이라 할 수 있으며, 이 찬양의 절정이 '봉헌'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봉헌'이란, 물질적 가치에 그 핵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구속의 은총에 감사하여 보답하는 '생명의 드림'이라는 정신에 있다 할 것이다.
예배는 구속, 예언, 일치와 더불어서 교회의 중요한 네 가지 기능 중의 하나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배 없는 교회는 존재의 가치가 없는 것이다.
예배는 교회의 신성한 의무요, 특권이다. 그리고 예배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대하고, 가장 긴급하며, 가장 영광스러운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교회의 예배에 있어서 우리가 회복해야 할 것이 하나 있는데 앞서도 말했듯이 그것은 '드림'의 정신이다. 창조주와 피조물과의 관계에 있어서 예배자의 행위는 감사함으로 드리는 '드림'으로써 나타나야 하는데도 그것은 형식화, 또는 수단화 되어버리고 오직 '받음' 만이 강조되고 있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
눅7장의 향유의 여인 36 한 바리새인이 예수께 자기와 함께 잡수시기를 청하니 이에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앉으셨을 때에 37 그 동네에 죄인인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으셨음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38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씻고 그 발에 입 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39 예수를 청한 바리새인이 이것을 보고 마음에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더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 하거늘 40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시몬아 내가 네게 이를 말이 있다 하시니 저가 가로되 선생님 말씀하소서
을 살펴보자 (마26:6-13 막14:3-9 요12:2-8)
이 여인의 예배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1. 향유를 부어 드림으로 투자를 했다.(300데나리온=약 일천만원) 근로자의 1 년치 급료에 해당하는 물질적인 투자가 있었다.
2. 예수님을 찾아 왔다.
3. 예수님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4. 자신의 품위를 손상시키면서까지 예수님을 위했다(눈물로 발을 씻김) 이러한 행동은 이 여인은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구원자시요 왕이신 예수님)
창세기 22장 아브라함의 이삭 번제를 보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소유라는 사상이 나온다. 이는 나의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왔기 때문이다. 나는 대가를 치르면서 드리려는 마음이 있는가? 내가 가진 이것 보다 주님이 더 귀하신 분이라는 신앙의 고백이 필요하다.
예배에는 두 가지 면이 있다. 즉 우리가 드리는 부분과 하나님께서 계시하는 부분인 것이다.
①부르심(초청)-왜 찬양해야 하는가? 예배에 대한 제시
② 들어가는 시간-하나님과 만나는 시간(사랑 축제 중보)
③ 표현의 단계-하나님의 위대하심에 감격하고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고 회개-하나님의 성품을 찬양
④ 하나님의 차례-하나님께서 우리를 만지시는 시간, 하나님을 기다리는 시간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맡기는 시간(구원, 치유, 사죄등)
⑤ 헌신의 단계-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나시면 우리의 헌신은 자연스럽게 나타나야 한다.
'받음'이 목적이 되어버린 예배 속에서는 드리고자 하는 마음의 여유가 부족하게 되므로 예배의 정신이 훼손되고 마는 것이다. 구원받은 자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무조건적으로 응답해야 한다. 그것은 '드림'의 행위가 결코 '받음'의 조건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휴스태드」는 예배의 본질에 대해서 말하기를 "예배는 하나님과 인간의 대화, 하나님께 드림, 하나님을 닮아 가는 과정" 이라고 했다. 따라서 구원받은 자가 드리는 모든 예배는 믿음과 드림의 행위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모든 공적인 예배는 객관적 진리(성경)를 근거로 하여, 예배 자가 주체적 입장에서 하나님과의 만남과 대화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께 우리들의 몸과 마음, 감정과 의지 등이 감사함으로 드려질 때 가능하다.
예배 자는 예배를 통하여 변화된 자신의 모습을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또한 예배 인도자는 회중들로 하여금 예배에 성공할 수 있도록 돕는 일에 힘써야 할 것이다. 달콤한 몇 마디의 말이나 행동으로 회중을 설득하려 하지 말고, 예배 속에서의 '드림'의 정신이 실현 될 수 있도록 교육하고 인도해야 하는 것이다.
예배에 깊이 들어가는 것과 하나님을 아는 것은 비례한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어떻게 하나님에 대해 알 수 있는가? 여기에 있어서 첫 번째 원칙은 우리가 알고자 한다고 해서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께서 알려 주시는 것만큼만 알 수 있다는 것을 먼저 인정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능동적으로 하나님을 알 수 없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우리에게 계시하지 않으시면 우리는 절대자요 무한자이신 하나님을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성경은 하나님에 대해 말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당신을 계시하여 주셨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기록하게 하신 성경의 저자들에게 허락하셨던 성령의 감동을 우리들에게 주신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의 감동을 받아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 말씀은 기록된 성경을 통해 기록된 성경을 해석해 주는 설교를 통해서도 하나님을 알게 하신다.” 라고 칼바르트는 말하였다. 즉 하나님을 알고자 한다면 먼저 성경을 많이 읽어야 하고 성경에 대해 들어야 한다(설교). 하나님께서 당신을 열어 보이신 곳은 성경이고 그 성경을 풀어주는 설교를 통해서다.
「J. S. 윌리」는 예배의 중요성에 대해 말하기를 "예배는 생명 있는 종교가 가지는 유일하고 충분한 증거다"라고 말했으며, 루터는 "만일 그대가 하나님을 모시고 있다면 마땅히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 하나님께 돌려드릴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찬양이라 할 수 있으며, 이 찬양의 절정이 '봉헌'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봉헌'이란, 물질적 가치에 그 핵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구속의 은총에 감사하여 보답하는 '생명의 드림'이라는 정신에 있다 할 것이다.
예배는 구속, 예언, 일치와 더불어서 교회의 중요한 네 가지 기능 중의 하나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배 없는 교회는 존재의 가치가 없는 것이다.
예배는 교회의 신성한 의무요, 특권이다. 그리고 예배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대하고, 가장 긴급하며, 가장 영광스러운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교회의 예배에 있어서 우리가 회복해야 할 것이 하나 있는데 앞서도 말했듯이 그것은 '드림'의 정신이다. 창조주와 피조물과의 관계에 있어서 예배자의 행위는 감사함으로 드리는 '드림'으로써 나타나야 하는데도 그것은 형식화, 또는 수단화 되어버리고 오직 '받음' 만이 강조되고 있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
눅7장의 향유의 여인 36 한 바리새인이 예수께 자기와 함께 잡수시기를 청하니 이에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앉으셨을 때에 37 그 동네에 죄인인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으셨음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38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씻고 그 발에 입 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39 예수를 청한 바리새인이 이것을 보고 마음에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더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 하거늘 40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시몬아 내가 네게 이를 말이 있다 하시니 저가 가로되 선생님 말씀하소서
을 살펴보자 (마26:6-13 막14:3-9 요12:2-8)
이 여인의 예배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1. 향유를 부어 드림으로 투자를 했다.(300데나리온=약 일천만원) 근로자의 1 년치 급료에 해당하는 물질적인 투자가 있었다.
2. 예수님을 찾아 왔다.
3. 예수님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4. 자신의 품위를 손상시키면서까지 예수님을 위했다(눈물로 발을 씻김) 이러한 행동은 이 여인은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구원자시요 왕이신 예수님)
창세기 22장 아브라함의 이삭 번제를 보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소유라는 사상이 나온다. 이는 나의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왔기 때문이다. 나는 대가를 치르면서 드리려는 마음이 있는가? 내가 가진 이것 보다 주님이 더 귀하신 분이라는 신앙의 고백이 필요하다.
예배에는 두 가지 면이 있다. 즉 우리가 드리는 부분과 하나님께서 계시하는 부분인 것이다.
①부르심(초청)-왜 찬양해야 하는가? 예배에 대한 제시
② 들어가는 시간-하나님과 만나는 시간(사랑 축제 중보)
③ 표현의 단계-하나님의 위대하심에 감격하고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고 회개-하나님의 성품을 찬양
④ 하나님의 차례-하나님께서 우리를 만지시는 시간, 하나님을 기다리는 시간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맡기는 시간(구원, 치유, 사죄등)
⑤ 헌신의 단계-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나시면 우리의 헌신은 자연스럽게 나타나야 한다.
'받음'이 목적이 되어버린 예배 속에서는 드리고자 하는 마음의 여유가 부족하게 되므로 예배의 정신이 훼손되고 마는 것이다. 구원받은 자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무조건적으로 응답해야 한다. 그것은 '드림'의 행위가 결코 '받음'의 조건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휴스태드」는 예배의 본질에 대해서 말하기를 "예배는 하나님과 인간의 대화, 하나님께 드림, 하나님을 닮아 가는 과정" 이라고 했다. 따라서 구원받은 자가 드리는 모든 예배는 믿음과 드림의 행위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모든 공적인 예배는 객관적 진리(성경)를 근거로 하여, 예배 자가 주체적 입장에서 하나님과의 만남과 대화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께 우리들의 몸과 마음, 감정과 의지 등이 감사함으로 드려질 때 가능하다.
예배 자는 예배를 통하여 변화된 자신의 모습을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또한 예배 인도자는 회중들로 하여금 예배에 성공할 수 있도록 돕는 일에 힘써야 할 것이다. 달콤한 몇 마디의 말이나 행동으로 회중을 설득하려 하지 말고, 예배 속에서의 '드림'의 정신이 실현 될 수 있도록 교육하고 인도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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