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주의 역사관의 중심이동 및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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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I. 마크트스주의의 실천

Ⅱ. 역사적 유물론 개념의 역사적 배경

III. 역사학의 패러다임- '사회적인 것'에서 '문화적인 것'으로

IV. 오리엔탈리즘적 유산: 프롤레타리아트에서 '하위주체'(subaltern)로

V. 마르크스주의 역사학과 '새로운 문화사'

본문내용

Spivak, "Can the Subaltern Speak?" in C. Nelson and L. Grossberg eds., Marxism and Interpretation of Culture (Chicago, 1988), p. 283.
프롤레타리아트가 대자적 계급으로 충분히 성장하지 못한 남부 이탈리아나 제 3세계에서 레닌의 전위당 이론은 결국 혁명 엘리트들의 헤게모니를 정당화하는 이론적 열쇠였을 뿐이다. 그것은 마르크스주의가 '하위주체'를 전유하는 또 다른 비결이었다.
'하위주체' 연구의 문제의식은 물론 결코 새로운 것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서유럽의 '비판적 역사학'의 아래로부터의 역사 또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연장선상에 서 있다. 예컨대 구하(Ranajit Guha)의 하위주체 연구는 그것을 권력관계의 그물망 속에서 보는 데서 시작한다. 그것은 본질론적 해석이 제시한 단일한 인도의 역사상을 권력관계의 파동에 따라 변화하는 다층적 표상으로 대체한다.
) G. Prakash, "Writing Post-Orientalist...," p. 400.
그것은 식민지 엘리트 및 민족주의 엘리트의 의지에 종속된 역사서술을 해방시키고, 더 나아가서는 전위 프롤레타리아 엘리트들이 전유한 '하위주체'를 복원하려는 시도이다. 권력으로부터 역사의 해방이 가능한 것은, '하위주체' 연구가 생산양식이나 근대화의 모델 대신 지배/피지배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전반적인 해방은 생산투쟁의 영역을 넘어 사회관계와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권력의 지배와 착취가 이루어지는가를 검토할 때,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오리엔탈리즘, 민족주의, 마르크스주의를 포함한 다양한 근대화 이데올로기들과의 단절이 요구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기존의 '비판적 역사학'을 극복하고자 했던 영국의 '역사공방'(History Workshop) 그룹의 비판은 같은 맥락에서 주목된다. 이들은 기존의 좌파 역사학이 근대화 이론과 진보 모델에 대해 순진한 신뢰를 보냈다고 비판하고, 과학적 역사학에 대한 집착을 버릴 것을 주장하였다. 그것은 결국 역사 행위자로서의 인민을 당대의 맥락에서 읽는 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일상생활사, 구술사, 역사적 인류학, 미시사 등이 제기한 도전도 주목할 만 하다. 이들은 역사가 더 높은 경제성장과 번영 더 많은 평등과 정치적 자유를 향한 일직선적 진보과정이라는 근대화론의 전제를 부정했다는 점에서 인도의 '하위주체' 연구와 문제의식을 공유했다. 포스트 모던 역사서술 또한 정체성에 대한 본질주의적 정의를 해체하고 다중적 정체성을 주장한다는 점에서, 민족주의 역사학과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에 대한 하위주체 그룹의 비판과 공동전선을 형성한다.
) 서유럽의 '비판적 역사학'의 최근 동향에 대해서는 S. Berger, op. cit., pp. 220-231.
많은 점에서 서구의 비판적 역사학 및 신문화사와 동양의 '하위주체' 연구는 역사를 독해하는 코드를 공유한다. 그 코드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로 요약된다. 1) 마르크스주의 거대담론이 제시하는 보편적인 해방담론의 해체. 2) 포스트 모던적 방법론을 이용한 급진적 문제제기. 3) 본질주의적 역사관의 거부와 상대주의적 역사관의 채택. 4) 사회적인 것에서 문화적인 것으로 혹은 단단한 역사에서 부드러운 역사로의 이동. 5) 추상적인 것에서 구체적인 것으로의 하강. 6) 인과적 설명에서 의미의 독해로의 중심이동. 7) 또 다른 침묵과 억압을 만들어낼 수 있는 새로운 종합화에 대한 거부.
V. 마르크스주의 역사학과 '새로운 문화사'
노년의 엥겔스는 로마제국 내에서 기독교가 승리한 방식을 바람직한 변혁 모델로 제시한 바 있다. 마르크스의 <<프랑스의 계급투쟁>> 1895년 판 서문에서 엥겔스는 그 점을 분명히 했다. 소수의 전위적 혁명가들이 혁명을 주도하는 시대는 갔으며, 사회주의 혁명은 기독교가 승리한 방식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었다. 과거의 역사 속에서 '희망의 불꽃'을 발견하고 대안적 사상을 구하는 것이 허용된다면, 나는 바로 이 점에 주목하고 싶다. 그것은 혁명 전술에 대한 단편적 언급이 아니다. 그것은 정치 또는 사회경제적 영역에 국한된 변혁의 한계를 비유적으로 지적한 것이 아닌가 한다. 엥겔스가 볼 때, 기독교의 승리는 제국체제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국가의 모든 기반과 기존의 가치체계를 와해시킨 근본적인 혁명이었다.
말단 병사들이 군대의 상명하복 체제를 거부하고 기존의 사회적 가치를 경멸한 기독교의 승리는 곧 정치적 사회적 헤게모니에 대한 문화적 헤게모니의 승리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기독교의 승리는 '진실'의 담론으로 포장한 로마황제의 역사관을 파괴했다는 점에서 궁극적인 승리였다.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공인하기에 앞서, 이미 기독교는 문화적 영역에서 기존의 지배/피지배 질서를 전복시켰다. 후기 로마제국에서 도덕적 문화적 헤게모니를 행사한 것은 기독교를 탄압한 국가권력이 아니라 기독교의 순교자들이었다. 제국의 질서가 정치·사회적 헤게모니를 대변했다면, 기독교는 문화적 헤게모니를 장악했다. 그것은 결국 정치·사회적 헤게모니에 대한 문화적 헤게모니, 즉 단단한 헤게모니에 대한 부드러운 헤게모니의 승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기독교의 승리에 대한 엥겔스의 이 진술에서 마르크스주의 역사학과 '새로운 문화사'의 접점을 찾는다면, 그것은 지나친 과장일까?
다른 한편으로, 마르크스주의 패러다임과 새로운 급진적 역사학을 종합하여 새로운 슈퍼 패러다임 또는 거대담론을 구축한다면 그것은 역사서술에서 또 다른 권력담론을 낳을 것이다. 그것은 새로운 형태의 또 다른 보편주의를 낳을 것이며, 그것은 다시 그 패러다임을 거부하는 차이들을 배제함으로써 다른 형태의 침묵과 억압을 강제할 것이다. 포스트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이 본질론적 단일한 정체성의 신화를 거부하고 상대주의적 시각에서 인민의 다중적 정체성 하나하나를 중시하는 한, 어떠한 종류의 전일(全一)한 보편주의도 불가능할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다양한 급진적 역사서술들을 수직적으로 한데 묶어 통일된 위계질서를 확립하는 것이 아니다. 필요한 것은 이들이 교호할 수 있는 수평적인 대화 통로를 마련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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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8.08.28
  • 저작시기200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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