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태백산맥에 대한 다각적인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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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에도 많은 주장과 반론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태백산맥이 이 시대에 가지는 의미를 나는 이렇게 정리하고 싶다.
모든 것은 완전할 수는 없는 것이다. 즉, 아무리 역사적 고증을 하고 자료를 모으고 하여도 어쩔 수 없는 오류는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작가자신은 완전을 기하고 싶었겠지만 역사학자가 아닌 바에야 완전한 고증을 통한 역사적 사실만을 골라내서 소설을 쓴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조정래씨가 완전히 잘못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소설을 씀에 있어서 실명을 쓰지 말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픽션임을 강조하는 문구를 앞에 썼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작가의 주관적인 역사관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교양이라는 명목으로 제시할 염려가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었다면.........
태백산맥이 근래에 문제시되고 있는 이유는 두가지 문제 때문이다. 즉, 역사적인 왜곡이 있었다는 점과 좌익을 미화하고 있다라는 점의 두가지가 바로 그것이다. 그 문제들의 원인을 나름대로 생각해보면 첫번째 문제의 원인은 태백산맥은 좌우익의 대립의 역사적인 원인들을 근간으로 전개되고 있고, 그러한 전개과정에서 극적효과를 높이기 위해서 실명을 쓰는 등의 방법을 쓴 것이 문제가 되었다는 것이다. 두번째 문제의 원인은 전쟁을 직접 겪은 세대에게 있어서는 그 어떤 이론보다도 그들이 직접 겪었던 끔찍했던 과거인 좌익이라고 불리는 것들을 원초적으로 거부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즉, 국군과 북한군이 교대로 점령하는 과정을 여러번 격은 6. 25의 전개 과정에서 서로 보복을 해대는 끔찍함을 격은 세대들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돈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가 되는 것은 좌익이라는 이름이 붙은 모든 것이다.
소설 태백산맥의 문학사적인 위치는 이 시대에 태백산맥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인 의의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다고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전후 문학사를 간략히 살펴보면서 태백산맥이 가지는 위치를 조명해보았다.
태백산맥은 문학사적인 뿌리를 전후 분단문학에 두고 있다고 하면 거의 정확하다고 할 수 있다. 초기 분단 소재 작품들이 일관성 있게 발전해온 결실이라고나 할까?
초기 분단소재의 문학은 전선의 문학 혹은 종군문학 수준이었다.
즉, 문학성은 별로 따져볼 것이 없고 주로 6. 25 당시의 상황을 리얼하게 표현했다는 면에서는 관심을 두고 볼 수 있는 그러한 수준이었다.
많은 작가들이 단순히 밥을 먹고 살기 위하여 글을 써버리곤 하던 시대가 이 시대이다.
50년대 후반기에 들어와서는 전쟁의 참상과 후유증을 그린 작품들이 많이 나타나게 되었는데 이러한 소설들은 휴머니즘을 바탕 삼은 반전의식을 주축으로 삼고 있었다. 이들은 전쟁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지 않을 수 없었던 세대였으므로 전쟁에 치를 떠는 세대였다. 그들은 전쟁 자체를 증오하는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고나 할까?
60년대에 들어와서는 최인훈의 광장을 시작으로 한국전쟁은 왜 일어났으며 우리 민족은 왜 이런 시련을 겪어야만 하는지를 자성하는 관점이 대두하기 시작하였다. 이전까지의 소설과는 다른 조금은 문학적인 면이 많이 두드러지기 시작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최인훈의 광장은 분단문제를 처음으로 이념의 관점으로 조명한 작품이다. 맨 마지막 장면을 통해서 남북한 정권을 다 매도한 작품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는 이 작품은 민족적 허무주의란 평가도 있으나 분단민족의 비극을 가감없이 냉철하게 해부한 자화상이란 점에서 충분한 가치이월적인 요소를 지녔다고 평가되고 있다.(참고 : 한국논단 11월호)
70년대에 들어와서는 유신독재체재라는 배경하에서 한국전쟁을 재평가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이병주의 대하소설 지리산을 대표적인 작품으로서 뽑을 수 있다.
80년대는 광주항쟁으로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광주항쟁을 배경으로 소설쪽에서는 분단소설과 노동소설이 대표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이 중에서도 위에서 언급하였던 50년대 분단문제등을 원점으로 80년대에 새로이 등장한 분단소설은 태백산맥과 이문열의 영웅시대로 대변될 수 있다. 특히 태백산맥의 경우 현실과 마주칠 수 없는 작가들이 자의식의 문화를 찾는 과정에서 역사소설로 돌아서는 그러한 것과는 다른 작가의 투철한 사회의식과 역사의식을 바탕으로한 계획에 의한 역사소설이라는 점에서 우선 선구자적인 면을 보인다.
작가가 태백산맥을 쓰고자 하였던 동기를 작가 자신이 소설을 쓰고 난 다음에 한 말을 정리해본다.
태백산맥을 쓰고자 하였던 첫번째 이유는 분단극복의 의지를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두번째로는 왜곡된 역사 사건들의 수정을 목표로 하였다.
세번째로는 농민을 중심으로한 민중이 역사의 주체가 된 이유를 설명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네번째로는 사회주의 운동을 정당하게 자리 매김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작가의 이러한 처음 의도는 어느 정도 완성되었다고 할 수도 있다고 본다. 특히나 두번째와 세번째 의도는 정리하는 이가 보기에는 거의 흡족할 정도로 형상화 되었다고 평가한다. 물론 역사적인 고증의 문제에서는 문제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
이런 저런 면을 살펴보았을 때 태백산맥은 어느날 아침에 한 작가의 머리 속에서 불쑥 솟아난 것이 아니라 분단 40여년 동안 예술적으로 잘 익은 채 빚어진 즉, 분단역사를 총체적으로 잘 표현한 작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태백산맥이란 소설은 하나의 관점만을 가지고 보기에는 아까운 소설이다. 또한 그만큼 힘들었기에 조원들과 함께 태백산맥을 연구하며 중도에 포기할까하는 생각도 많이 들었었다. 그러나 결과를 정리하는 지금에 와서는 그 동안 진지하고도 성의 있는 열성을 보여준 밤에 피는 장미들 조원 모두에게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가 없다.
소설이 너무나 훌룡해서 너무나 마음에 잘 와닫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의 소설의 내용은 모든 이념의 벽을 넘어서 그 당시의 서민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세세히 보여준다고 생각된다.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고 있던 한국 근대사의 여러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된 태백산맥은 처음에 작가의 의도만큼은 성공하지 못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태백산맥은 총체적인 한국 근대사의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하였다는 점은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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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8.12.22
  • 저작시기20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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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5075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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