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농무」에서 화자의 관심사와 의도
2. 이해와 감상
2. 이해와 감상
본문내용
명하다. 그러기에 더욱 농악에 신명을 내어 그 속에 몰입하는 사람들의 애환이 절실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래서 현실의 불우한 조건을 넘어선 흥겨운 축제를 표방하고 있는 이 시의 표면적 주제는, 뒷면에 숨겨진 당대의 사회 · 정치적 현실을 다분히 문학적인 방식을 빌어 고발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고발의 방식은 문학을 압도하지 않으며, 독자들에게 충분히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시상에 몰입하여 더불어 나아가다 보면, 우리도 어느새 시 속의 농무와 함께 `한 다리를들고 날라리를 불'고, `고갯짓을 하고 어깨를 흔들'게 된다. 그리고 그 공감과 참여가 현실을 잊고 단지 일시적 얄팍한 위로에 몸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그 현실의 착잡함을 이겨내는 민중의 고충, 그 생명력을 확인하는 일에 귀결됨을 깨닫게 된다.
이 시는 좋은 민중시, 농촌시의 대표작으로 손색이 없다. 장르의 특성상 시는 사실주의의 가능성에 열려 있는 편이 아니다. 그러나 신경림이 개척한 시의 영역에서 그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또한 한국의 현대시가 반세기 후에 얼마나 남을 것인지 알 수가 없지만, 오늘의 농촌을 반세기 후에 시에서 보려면 시집 <농무>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그래서 현실의 불우한 조건을 넘어선 흥겨운 축제를 표방하고 있는 이 시의 표면적 주제는, 뒷면에 숨겨진 당대의 사회 · 정치적 현실을 다분히 문학적인 방식을 빌어 고발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고발의 방식은 문학을 압도하지 않으며, 독자들에게 충분히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시상에 몰입하여 더불어 나아가다 보면, 우리도 어느새 시 속의 농무와 함께 `한 다리를들고 날라리를 불'고, `고갯짓을 하고 어깨를 흔들'게 된다. 그리고 그 공감과 참여가 현실을 잊고 단지 일시적 얄팍한 위로에 몸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그 현실의 착잡함을 이겨내는 민중의 고충, 그 생명력을 확인하는 일에 귀결됨을 깨닫게 된다.
이 시는 좋은 민중시, 농촌시의 대표작으로 손색이 없다. 장르의 특성상 시는 사실주의의 가능성에 열려 있는 편이 아니다. 그러나 신경림이 개척한 시의 영역에서 그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또한 한국의 현대시가 반세기 후에 얼마나 남을 것인지 알 수가 없지만, 오늘의 농촌을 반세기 후에 시에서 보려면 시집 <농무>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