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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이다. 주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으로 일러 애굽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십계명에는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라고 하였다. 기독교는 하나님이라는 하나의 신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종교이다. 그래서 지상국과 신국으로 나누듯이 참된 신(神) 하나님과 어리석은 인간들이 섬기는 지상의 우상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러한 종교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이 서양의 역사인 것이다. 따라서 서양의 역사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기독교를 떼어 놓고 설명할 수 없으며, 기독교를 부정하고는 서양의 역사가 존재 할 수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은 기독교를 바탕으로 역사학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첫째, 모든 것이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고, 인간의 범죄로 만물이 아주 아래 놓이게 되었으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장차 만물이 구속될 것을 믿는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대해 균형 잡힌 상(像)을 소유하고 있으며, 따라서 어느 한 부분을 중시하거나 경시하는 것, 혹은 환원(reduction)시키는 것을 피한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세계에서 정치경제문화사회적 관계가정국가 등이 놓여야 할 위치에 대한 상이 분명하기에 - 물론 그리스도의 재림 전까지는 희미한 점도 있으나 - 포괄적이고 균형 잡힌 해석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일례로, 16세기의 종교 개혁을 해석함에 있어, 하늘의 하나님께서 그의 종들을 통해 교회를 개혁하신 것을 주된 것으로 보면서도 하나님께서 그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 사용하신 당시의 여러 상황들, 즉 지리상의 발견상업 혁명중산층의 대두인쇄술의 발달 등을 무시하지 않을 것이다. 종교적 신앙만을 중시하고 다른 것을 무시하려는 해석이나, 주객을 전도시킨 마르크스주의자의 해석, 즉 자본주의적 생산력의 발전에 의해 종교개혁이라는 부르조아 혁명이 일어났다는 경제적 환원주의도 거부할 것이다.
둘째, 성경적 인간관은 역사학에 방향을 제시한다. 문학이 허구(fiction)를 통해 인간이라는 문제와 씨름한다면, 역사학은 과거의 사실(non-fiction)을 통해 인간이 무엇인가를 탐구하는 학문이라 할 수 있는데, 인간을 탐구한다는 이 점에 성경적 인간관은 중요한 분석을 제시한다.
“자신의 비참을 모르면서 하나님을 알면 교만이 생긴다. 하나님을 모르면서 자신의 비참을 알면 절망이 생긴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면 거기서 하나님과 우리의 비참을 발견하기에 중간이 생긴다”(팡세, 527)는 파스칼의 말처럼, 인간의 고귀성과 비참성을 아는 기독교 역사학자는 인간이 부정당하게 높아졌을 때 비하시키고, 또 부정당하게 비하되었을 때 승귀시킬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기독교적 역사학에 대한 책을 읽고, 레포트를 쓰게 되면서 기독교적 역사관에 대해 종합적인 견해를 얻을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역사학을 듣는 한 학생으로서가 아니라 기독교를 믿는 한 교인으로서 기독교에 대한 공부를 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 뿌듯하기도 하고, 역사학이라는 과목이 나와는 멀리 있는 과목이 아니라 내가 믿고 좋아하는 것들과 관련되 친근한 학문이라는 생각이 들어 더 뜻 깊은 레포트가 되었다.
이와 같은 기독교를 바탕으로 역사학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첫째, 모든 것이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고, 인간의 범죄로 만물이 아주 아래 놓이게 되었으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장차 만물이 구속될 것을 믿는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대해 균형 잡힌 상(像)을 소유하고 있으며, 따라서 어느 한 부분을 중시하거나 경시하는 것, 혹은 환원(reduction)시키는 것을 피한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세계에서 정치경제문화사회적 관계가정국가 등이 놓여야 할 위치에 대한 상이 분명하기에 - 물론 그리스도의 재림 전까지는 희미한 점도 있으나 - 포괄적이고 균형 잡힌 해석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일례로, 16세기의 종교 개혁을 해석함에 있어, 하늘의 하나님께서 그의 종들을 통해 교회를 개혁하신 것을 주된 것으로 보면서도 하나님께서 그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 사용하신 당시의 여러 상황들, 즉 지리상의 발견상업 혁명중산층의 대두인쇄술의 발달 등을 무시하지 않을 것이다. 종교적 신앙만을 중시하고 다른 것을 무시하려는 해석이나, 주객을 전도시킨 마르크스주의자의 해석, 즉 자본주의적 생산력의 발전에 의해 종교개혁이라는 부르조아 혁명이 일어났다는 경제적 환원주의도 거부할 것이다.
둘째, 성경적 인간관은 역사학에 방향을 제시한다. 문학이 허구(fiction)를 통해 인간이라는 문제와 씨름한다면, 역사학은 과거의 사실(non-fiction)을 통해 인간이 무엇인가를 탐구하는 학문이라 할 수 있는데, 인간을 탐구한다는 이 점에 성경적 인간관은 중요한 분석을 제시한다.
“자신의 비참을 모르면서 하나님을 알면 교만이 생긴다. 하나님을 모르면서 자신의 비참을 알면 절망이 생긴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면 거기서 하나님과 우리의 비참을 발견하기에 중간이 생긴다”(팡세, 527)는 파스칼의 말처럼, 인간의 고귀성과 비참성을 아는 기독교 역사학자는 인간이 부정당하게 높아졌을 때 비하시키고, 또 부정당하게 비하되었을 때 승귀시킬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기독교적 역사학에 대한 책을 읽고, 레포트를 쓰게 되면서 기독교적 역사관에 대해 종합적인 견해를 얻을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역사학을 듣는 한 학생으로서가 아니라 기독교를 믿는 한 교인으로서 기독교에 대한 공부를 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 뿌듯하기도 하고, 역사학이라는 과목이 나와는 멀리 있는 과목이 아니라 내가 믿고 좋아하는 것들과 관련되 친근한 학문이라는 생각이 들어 더 뜻 깊은 레포트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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