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노서동, 노동동 고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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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경주 노서동, 노동동 고분군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노서동 고분군

Ⅱ. 맺음말

<참고문헌>

본문내용

동제 신발 등의 장신구와 자작나무껍질로 만든 모자 4개, 금은장안교(金銀裝鞍橋)를 비롯한 마구류, 청동제 용기류, 금은장환두대도(金銀裝環頭大刀) 등의 무기가 있었다. 이 가운데 무덤이름의 유래가 되었던 금동제 신발은 길이가 32.7㎝이며 3개의 금동판을 조립하여 만들었다. 신발 표면에는 거북등무늬[龜甲紋]의 윤곽 안에 봉황·괴수·쌍조(雙鳥) 등 각종 상상의 동물이 맞새김[透彫]과 두드려새김[打出]으로 새겨져 있다. 거북등무늬는 우리나라에서 가야와 백제의 각종 장식문양에서 많이 보이며 중국에서는 남북조시대의 남조(南朝)에서 크게 유행한 것이다. 이 고분의 축조연대는 경주지역 고분출토유물들과 비교해볼 때 5세기 후엽으로 보인다. 그리고 출토유물 중 순금제품의 수량이 적고 출자형금관(出字形金冠)이 출토되지 않은 점으로 보아, 금관이 출토되는 고분보다 한 단계 낮은 2급, 즉 왕족이나 귀족계급의 무덤으로 보인다.
Ⅱ. 맺음말
비록 처음부터 우리의 손과 우리의 계획에 의해서 발굴 된 것은 아니지만, 그 출토된 유물의 중요성이나 호우총의 발굴이 우리 손으로 이루어낸 최고의 발굴이라는 점 등을 고려해보면 노서동고분군 일대의 유적은 역사적으로 의미가 크다고 할 수가 있다. 이에 우리는 지금 남아서 유지되고 있는 상태의 무덤과 유물이라도 잘 보전해 나가며 관리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 박광일, 『우리 아이 첫 경주여행2』, 삼성당, 2004
· 한국문화유산답사회, 『경주』, 돌베게, 1994
· 이형권, 『문화유산을 찾아서』, 매일경제신문사, 1993
· 국립경주박물관, 『경주이야기』, 국립경주박물관, 1991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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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5페이지
  • 등록일2009.11.05
  • 저작시기2009.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5597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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