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터 벤야민 Benjamin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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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관객들의 달라진 감상적 태도에서 찾았다. 아우라의 소멸과 해체에 의한 대중들의 문화 각 영역에 대한 직접적인 참여 가능성은 확실히 검토해보아야할 가치가 있다. "사물을 공간적으로 또 인간적으로 보다 가까이 자신에게 끌어오고자 하는 것은 현대의 대중이 바라 마지 않는 열렬한 욕구"인데, 복제사진은 그러한 욕구를 현실로 가능하게 한다. 그러나 이러한 가능성은 역시 가능성일 뿐이다. 소련의 영화작가들이 민중들을 직접 배우로 출연시키고, 르포르타지와 직업체험담 등이 (독자와 작가의 구분을 무너뜨리면서) 활발히 발표되었다. 그러나 "서구에서는 자본주의적 착취로 인하여 자기자신을 재현·연출하려는 현대인간의 정당한 요구는 거의 무시되고 있다"는 지적을 그는 잊지 않는다. 칼 맑스가 자유의 이중성에 대해 한편으로는 자유가 봉건제까지 사회의 기초를 이루었던 신분적인 질서를 무너뜨렸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있지 못한, 생산수단으로부터 자유로운 free 프롤레타리아트를 양산하여 자본주의에 내재한 모순을 낳았다는 점을 지적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벤야민은 복제수단의 등장이 낳은 아우라의 소멸이 한편으로는 대중들의 일상에 대한 직접적인 참여를 가능하게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자본주의적 질서가 그것을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을 잊지 않는다. 따라서 "종족 신화, 대중의 정치집회, 양식화된 행진, 경례와 물신화된 가장 등을 사용한 나치처럼 파시즘도 세속화된 의례와 제전의 형태로 '정치를 미학화'시켰다고 주장"하면서, 예술의 정치화라는 극단적인 전략을 구사한 것도 실은 그가 낙관적이라기 보다는 아우라의 소멸이 갖는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고찰하고 잇었기 때문이라고 보아야 한다.
Ⅴ. 마치며
그에게 나타나는 역사에 대한 독특한 관점은 그의 삶 전체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파시즘이 몰아치는 가운데 끊임없이 망명을 해야했으며 죽음도 역시 망명 도중에 이루어졌다. 그는 자신의 경제생활에 대한 고민(실제로 그는 안정적인 수입을 얻었던 때가 한번도 없었다)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때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파시즘과 사회민주주의와 스탈린주의 등 맑스주의의 속류화과정 속에서 섣부른 낙관적 전망 조차도 함부로 펼칠 수 없는 시기였다. 그의 친구였던 한나 아렌트는 로자 룩셈부르크, 발터 벤야민, 브레히트 등을 묶어 {어두운 시대의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펴낸 적이 있다. 그 속에서 발터 벤야민이 고민했던 '좌파 아웃사이더'로서의 지식인이라는 문제, 역사에 대한 단상(斷想), 대중들의 일상에 대한 관심들은 오늘 우리를 비켜날 수 있는 주제들은 아닐 듯 싶다. 그의 생각들이 끊어진 곳에서 우리들의 생각을 새롭게 시작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영화라는 매체에서 새로운 예술양식의 가능성을 찾아보았던 그가 오늘날 우리들의 영화생활을 본다면 무엇이라 반응할까?"와 같은 턱없어 보이지만 퍽 재미있는 질문과 같은. 그러한 창조적인 생각들에 이 글이 작은 단초를 제공할 수 있었다면 더이상 바랄 나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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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9.12.24
  • 저작시기2009.6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569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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