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평원의 전사들-미국 역사 최대의 희생양 인디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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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교시> 북미 대륙 인디언 수난사

1. 북미 대륙 인디언 수난사①

1) 인디언과 백인의 첫 만남

2) 미국 정부의 인디언 정책

3) 체로키 인디언의 강제 이주

<2교시>

1. 북미 대륙 인디언 수난사②

1) 수우족 인디언의 최후: 보호구역 이탈에서 멸종까지

2) 러시모어와 크레이지 호스

2. 인디언 동화정책과 현재의 실상

<학습 Ouis>

본문내용

이 18m, 코가 6m, 눈이 3m. 멀리서 보아도 웅장하게 다가온다. 14년의 작업끝에 1941년 완공된 이곳을 미국인들은 민주주의 전당으로 부른다. 미국 역사의 자부심과 긍지가 넘쳐나는 곳이다.
크레이지 호스의 기마상
큰 바위 얼굴에서 약 25km 떨어진 곳에 더 크고 더 웅장한 크레이지 호스의 모습이 암벽에 새겨져 있다. 남산 높이의 산 꼭대기 바위를 깨고 부숴 조작해 만든 27m 높이의 거대한 얼굴이다. 암벽에 얼굴을 새기는 데만 50년이 걸렸다. 말을 탄 몸체와 말은 아직도 작업이 진행 중이다.
이글거리는 눈동자, 꽉다문 입술, 그리고 결의에 가득한 단호한 모습..... 미국 기병대를 상대로 수많은 전투를 치른 역전의 용사, 백인에 끝까지 저항했던 최후의 전사다운 이미지를 강하게 전해준다. 이곳은 인디언의 잃어버린 역사와 자부심을 극적으로 재생시켜 주는 곳이다.
백인 기병대에 쫓겨 블래힐스를 떠돌던 크레이지 호스에게 어느 날 우연히 만난 백인 모피상인 물었다. “지금 자네가 살 땅이 이 나라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자 크레이지 호스는 왼팔을 뻗어 지평선을 가리키며 자랑스럽게 큰 소리로 대답했다고 한다. “나의 땅은 내가 죽어 묻힐 곳이다” 라고. 이 말에는 아메리카가 본래 우리의 땅이라는 원주민의 자존심, 백인에 대한 처절한 저항 정신이 담겨있다. 이것은 백인들과의 굴종적인 타협을 거부하고, 명예로운 삶을 지키겠다는 크레이지 호스의 자부심의 표출이었다.
러시모아 마운틴에 새겨진 4명의 미국 대통령 얼굴 바위
“인디언의 땅은 저 먼 곳까지다” 지평선을 가리키는 크레이지 호스의 손가락
멀리 뒤편에 보이는 것이 실제 크레이지 호스의 암벽 조각상
2. 인디언 동화정책과 현재의 실상
기독교로의 개종
인디언을 백인들 사회로부터 분리시키는 데 성공한 미국 정부는 이들을 미국 사회에 동화시키는 작업을 폈다. 먼저 정부 보조금으로 선교사를 파견하였다. 목적은 인디언들을 기독교로 개종시키는 일이다. 청교도의 시각에서 보면 인디언들은 우상을 섬기는 미개한 족속이었다. 그들을 개종시키는 것은 곧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성전이었으며, 한편으로는 미국 사회에 순응시키는 방법이기도 하였다. 선교나 성전이라는 이름으로 인디언의 정기를 말살하고 인디언의 고유의 토속적인 문화를 고사시키려는 의도였던 것이었다.
의무교육제 실시
1891년에는 인디언에게도 의무 교육제가 실시되었다. 그 기본적인 의도는 인디언 자녀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미국적 가치관과 생활 방식을 심어 주려는 것이었다. 한 민족의 정기와 전통을 끊은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언어를 말살하는 것이다. 36년간 일본의 식민지 하에서 일본정부가 우리의 말과 글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강요한 것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미국정부가 가장 먼저 취한 행동은 인디언 자녀들을 부모와 격리시키는 일이었다. 도시 곳곳에 인디언 자녀들을 위한 기숙학교를 지어, 아이들이 보호구역 안에 사는 부모를 떠나 기숙학교에 들어가도록 했다. 이곳에서 인디언 자녀들은 영어만을 써야했고, 미국식 복장과 풍습을 배우도록 하였다.
이런 과정을 거쳐 인디언 말은 점차 잊혀져갔다. 그들 조상의 문화는 저급하고 야만적인 이교도의 문화라는 취급을 받았다. 기숙학교에서 자란 아이들은 더 이상 인디언의 후예가 아니었다. 철저한 백인으로 교육된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비극은 아무리 백인 흉내를 내어도 결코 백인이 될 수 없다는 절망감이었다. 인종차별의 벽 앞에 낙담한 인디언 후예들은 결국 마약과 알코올 중독에 빠지는 일이 비일비재하였다.
시민권 부여
1924년 의회는 합중국내에서 한 모든 인디언은 미국의 국민이라는 법안을 통과시켜 인디언에게 시민권을 부여하였다. 인디언들은 조상대대로 살던 땅을 빼앗긴 지 200여년 만에 겨우 얻은 시민권이었다. 노예로 미국 땅에 끌려온 흑인들도 노예에서 해방되고 투표권을 받은 것은 남북전쟁 직후였다. 미국에서 여성들이 투표권을 얻은 해가 1922년이었다. 미국의 소수민족 중에서 인디언들이 가장 늦게 시민권과 투표권이 주어진 셈이다.
인디언 사회의 현실적 상황
한 때 아메리카 대륙 곳곳을 누비며 광야를 달리던 그 많던 인디언 부족들이 대부분 멸종되어 지금은 약 200만 명만이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그 가운데 절반이 인디언 보호구역에 모여살고 있다. 현재는 오클라호마 주에 가장 많은 인디언 보호구역이 있고, 뉴멕시코, 애리조나 등의 서남부 지역에 자리 잡고 있다. 먹을 것도 농사를 지을 땅도 거의 없는 황량한 벌판에 세워진 보호구역에서 인디언들은 정부의 보조금으로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
인디언 보호구역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가난과 실업 문제이다. 아무리 주변을 둘러봐도 먹고 살 길이 막연하다. 미국에서 비교적 규모가 크다는 뉴멕시코의 푸에블로 인디언 보호구역의 경우, 약 200여 가구의 인디언들이 살고 있다. 이 정도 규모의 백인 마을이라며 학교와 도서관, 소방서, 경찰서 등 관공서와 식료품 가게들이 들어서야 하는데, 단 한곳도 그런 것이 없다. 그 만큼 소비 능력이 없다는 소리다.
인디언들은 가난 때문에 교육의 기회를 놓치고, 이로 인하여 낮은 임금의 허드레 일자리만 맴돌아 빈곤의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가난과 실의에 빠져, 알코올 중독자가 유난히 많다. 알코올에 한 번 맛들인 인디언들은 술의 노예가 되어 버린다. 거기에는 자신들이 태어난 땅에서 버림받고 쫓겨나 인고의 세월을 살아 온 데 대한 울분과 회한이 담겨져 있다.
<학습 Ouis>
1) 조지아와 테네시 지역을 중심으로 인디언 최초로 문자를 발명하고, 학교와 공장을 짓고 독자적인 헌법을 갖추는 등 상당히 문명화된 공동체를 형성한 인디언 부족의 이름은?
정답 - 체로키 인디언
2) 수우족 인디언들이 커스터 장군이 이끄는 제 7기병대에 대항하여 서부개척사에서 최대의 승리를 이끈 전투의 이름은?
정답 - 리틀 빅혼 전투
3) 미국 사우스다코다 주 블랙힐스에는 두개의 암벽 인물상이 있다. 하나는 러시모어 산에 있는 4명의 미국 대통령의 큰 바위 얼굴이며, 다른 하나는 인디언 전사 ( )의 기마 인물상이다.
정답 - 크레이지 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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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1.04.17
  • 저작시기2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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