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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 또한 모두가 그러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라면 ‘시’라는 공개적 예술 장르과 과연 필요할까. 그러한 개인적 차이는 옳고 그른 판단의 아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예술 분야의 성립에 전제가 되는 조건 중에 하나가 된다. Eliot는 그의 ‘탈개성적’ 시론에서 촉매제로써의 ‘백금’을 비유로 들어 작품 속에서 시인의 존재가 드러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는데, 개인적으로 이러한 의견에 많은 부분을 동의하지 못하고 있다.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은 동일한 조건에서 같은 ‘인풋(input)’적 요소들을 공유한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이 어느 대상을 거쳐 밖으로 ‘아웃풋(putput)’이 되느냐에 따라 그 결과물이 달라지게 된다. 즉, 과학자를 통하게 되면 과학이론이 되는 것이고, 음악가를 통하게 되면 음악이 되어 나오는 것이다. 시는 그러한 투입 요소들이 시인의 재능을 거쳐 문학으로 형성되는 것인데, 이 과정에서 시인 개인의 성향과 재능이 전적으로 관여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시들이 시로써의 유사성을 보이면서도, 같은 소재와 주제를 두고서 다른 모습을 보일 수 있는 것이다.
일전, 나는 관련된 글을 쓰면서 자신의 글과 문학을 세상에 내어 놓는 이라면 응당 공인으로써의 ‘작가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던 적이 있다. 예술에서의 위선을 가리고, 진정한 감동과 영감을 통하여 비롯된 진실을 밝히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에 그것은 거의 모든 부분을 시인이 가진 ‘작가정신’을 믿고 의지하는 법 밖에는 없다. 따라서 시인은 의무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적어도 인간의 원초적이고, 또한 본능적인 감동에 경도되어 이를 글로 쓰지 않고서는 못 버티는 감성적 주체라면 필히 ‘진실’된 자세로 그 깜냥의 최대를 발휘하여 역작을 내어놓아야 한다는 의무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나에게 주어진 재능이 나를 위한 것만이 아님을 인식하고, 운명의 선물로써 쥐어진 나의 필력을 통하여 더욱 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나가려는 피와 땀을 흘려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자기 희생은 그의 예술에 절실함을 더하게 될 것이며, 그러한 과정이 반복되어지면서 그는 이 세상이 기억하는 문호가 될 것이다. 비평은 이와 같은 문학관을 바탕으로 그 문학의 진실성을 찾기 위하여 작가를 논하고, 그 도의를 논하며, 그에 합당한 작품과 그 작품의 적실성을 찾아 그 작품의 가치를 매겨 문학의 생사를 결정하는 막중한 임무를 담당해야 할 것이다.
일전, 나는 관련된 글을 쓰면서 자신의 글과 문학을 세상에 내어 놓는 이라면 응당 공인으로써의 ‘작가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던 적이 있다. 예술에서의 위선을 가리고, 진정한 감동과 영감을 통하여 비롯된 진실을 밝히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에 그것은 거의 모든 부분을 시인이 가진 ‘작가정신’을 믿고 의지하는 법 밖에는 없다. 따라서 시인은 의무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적어도 인간의 원초적이고, 또한 본능적인 감동에 경도되어 이를 글로 쓰지 않고서는 못 버티는 감성적 주체라면 필히 ‘진실’된 자세로 그 깜냥의 최대를 발휘하여 역작을 내어놓아야 한다는 의무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나에게 주어진 재능이 나를 위한 것만이 아님을 인식하고, 운명의 선물로써 쥐어진 나의 필력을 통하여 더욱 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나가려는 피와 땀을 흘려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자기 희생은 그의 예술에 절실함을 더하게 될 것이며, 그러한 과정이 반복되어지면서 그는 이 세상이 기억하는 문호가 될 것이다. 비평은 이와 같은 문학관을 바탕으로 그 문학의 진실성을 찾기 위하여 작가를 논하고, 그 도의를 논하며, 그에 합당한 작품과 그 작품의 적실성을 찾아 그 작품의 가치를 매겨 문학의 생사를 결정하는 막중한 임무를 담당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