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 화가의 표현주의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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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표현주의 특색

▶ 허무주의 대안으로서의 표현주의

▶ 표현주의의 그룹

▶ 표현주의 화가와 작품

본문내용

. 예수를 포함한 인물들은 모두 괴기스럽게 보이고, 왠지 음침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성스러운 것과는 거리가 멀다. 자극적인 색채가 그런 느낌을 훨씬 강화시켜 준다. 야수파처럼 놀데도 원시미술을 찬양했던 사람이다. 매우 거칠고 직설적인 양식은 놀데가 의식적으로 추구했던 원시적 회화 기법에서 나온 것이다. 놀데는 이렇게 그린 자신의 그림이 무지하고 소박한 농부들도 이해할 수 있는 대중미술이라고 생각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이런 그림이 인간의 정신적 열정을 표현하는데도 아주 효과적이라고 보았다. 그가 종교화를 즐겨 그렸던 이유는 그의 신앙심 때문이라기보다는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모종의 정신적 열정이 성서적 주제를 통해 가장 잘 드러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에른스트 루드비히 키르히너
1905년 독일의 드레스덴에서 몇몇 화가들이 모여서 "다리파" 라는 그룹을 결성한다. 그 그룹에는 키르히너, 헤켈, 슈미트-로트러프 등이 속해 있었다. 에밀 놀데도 한때 이 표현주의적인 미술 운동에 참여한다. 하지만 그는 곧 탈퇴한다. 왜냐하면 개성이 강했던 놀데는 그룹양식을 지향했던 다리파가 체질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쨌든 다리파는 꽤 결속력이 강한 단체로, 매우 강한 주장을 담은 선언문을 발표함으로써 정식으로 발기한다. 선언문의 내용은 그들이 낡은 구세력에 저항하는 미래지향적 단체라는 것, 어떠한 규칙에도 얽매이지 않고 창조적 충동을 가식 없이 표현한다는 것 등이었다. "다리"라는 명칭도 그들이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한다는 의미가 있다. 그들은 서구문명이 이룩해 놓은 전통적 요소를 거부하고 원시적이고 거친 방법을 선호했다. 그러한 방법을 통해 그들은 삶 자체에 접근하고 그 진실을 표현하길 원했다. 키르히너는 다리파 운동을 주도했던 화가로, 다리파 멤버 중에서 가장 열정적이고 재능이 있었다. 그도 동시대의 많은 화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원시미술에 열광했던 화가였다. 그와 다리파 화가들은 1909년~ 10년 사이의 기간 동안 농촌에 내려가 공동생활을 하기도 했는데, 그것은 일부러 가난한 생활을 함으로써 원시성에 접근하고자 했던 노력이었다. 1914년에 1차 대전이 발발하자 키르히너는 군인으로 참전한다. 그런데 전쟁이 그에게 남겨준 것은 어떤 정의나 진실도 아니고, 신체적 정신적 상처뿐이었다. 그의 자화상에서 군복을 입고 있는 키르히너는 여전히 화가로 나타난다. 그런데 키르히너는 담배를 꼬나 문 냉소적인 표정에 한쪽 손이 없는 불구로 그려진다. 그는 이렇게 상처받고 고독한 인간의 모습으로 자신의 자화상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전쟁은 키르히너에게만 상처를 안겨준 것은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대량학살의 장면을 목도하고 전쟁의 피해를 입게 되었다. 1차 대전 이후 서구인들은 서구문명에 대한 비관적인 시각을 강화하게 된다. 즉, 산업 사회의 발달이 반드시 행복한 미래를 약속하지는 않는다는 생각이 팽배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종전이후 서구의 전통을 부인하고 원시적인 것을 추구하는 일련의 표현주의 미술운동들이 전과 달리 상당한 대중적 호응을 얻게 되었다. 한편 독일의 뮌헨에서도 표현주의 미술운동이 등장했다. 칸딘스키, 마르크, 마케 등을 중심으로 하는 "청기사"라는 그룹이었다. 그들은 1912년 "청기사"라는 이름의 연감을 출판하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였는데, 이들이 추구했던 것은 서구 물질문명의 한계를 뛰어 넘는 순수하게 정신적인 세계였다. 그들의 목표를 위하여 청기사파는 이제껏 서구 전통에서 푸대접받던 원시적인 미술에 주목한다. 그들은 그런 미술을 통해 보편적이고 초자연적인 존재를 경험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 바실리 칸딘스키
칸딘스키가 최초로 순수 추상에 도달했다고 알려진 그림이다. 이 그림에는 어떤 대상을 암시하는 부분이 전혀 없다. 단지 색채와 선의 다양성이 있을 뿐이다. 칸딘스키는 미술가가 무엇보다도 자신의 "내적 필연성"을 표현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런데 그것이 순수 조형적 요소로 표현가능하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는 각각의 색, 직선 및 곡선이 각자 의미하는 느낌이 있어서 이들의 배합으로 일종의 작곡(composition)을 할 수 있다고 믿었다. 예를 들어, 빨강 색은 뜨거운 정열을, 녹색은 평화를, 굵은 직선은 강인함을, 곡선은 부드러움을 의미한다. 화가는 이들 요소들을 적절히 사용하여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칸딘스키는 그림 자체만으로 충분한 표현이 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제목을 따로 붙일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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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2.08.01
  • 저작시기2007.4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7600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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