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구약 시대의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사람에게 전해 주는 임무를 맡은 사람입니다.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에는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고 직설적으로만 하지 않고, 어떤 사기(史記)를 가지고 이야기도 하고 혹은 자기의 말로 책망하는 것같이 맹렬하게 질책하기도 하고, 또 앞일을 예언하기도 합니다.
예언이라 할 때 거기에는 앞으로 일어날 일을 미리 말한다는 부분이 물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예언의 전부는 아니고 예언이라고 할 때에는 먼저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걸쳐서 어떤 제목을 취해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 예언자(預言者)라 하는 말을 한문으로 쓸 때에도 맡을 예(預)자를 쓰는 것이지 미리 예(豫)를 쓰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말씀을 받아 가지고 저축해서 그것을 가지고 얘기한다 하는 의미가 더 강한 것입니다. 장래를 미리 알려 준다는 의미가 주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지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시는 말씀을 잘 맡아서 선지자는 전하는 것인데, 하나님의 신의 감동으로 명령을 그대로 받는 부분이 있는가 하면 또한 자기의 판단과 깨달음을 통해 이것이 분명히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알려 주도록 하신 것이다 하는 결론과 확신 가운데서 움직이는 것 또한 많습니다.
히브리 사람들의 역사는 하나님께서 직접 신정(神政)을 하시겠다는 뜻으로서 뽑아내신 민족의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처음부터 명확히 민족 사명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보통 이 세상의 한 국가를 놓고 너희 나라가 무엇을 위하여 이 세상에 있느냐 할 때 ‘우리는 영구하고 역사적인 것, 전 국민이 과연 그렇다고 수긍하며 따라갈 만한 사명을 갖고 있다’고 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예언이라 할 때 거기에는 앞으로 일어날 일을 미리 말한다는 부분이 물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예언의 전부는 아니고 예언이라고 할 때에는 먼저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걸쳐서 어떤 제목을 취해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 예언자(預言者)라 하는 말을 한문으로 쓸 때에도 맡을 예(預)자를 쓰는 것이지 미리 예(豫)를 쓰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말씀을 받아 가지고 저축해서 그것을 가지고 얘기한다 하는 의미가 더 강한 것입니다. 장래를 미리 알려 준다는 의미가 주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지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시는 말씀을 잘 맡아서 선지자는 전하는 것인데, 하나님의 신의 감동으로 명령을 그대로 받는 부분이 있는가 하면 또한 자기의 판단과 깨달음을 통해 이것이 분명히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알려 주도록 하신 것이다 하는 결론과 확신 가운데서 움직이는 것 또한 많습니다.
히브리 사람들의 역사는 하나님께서 직접 신정(神政)을 하시겠다는 뜻으로서 뽑아내신 민족의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처음부터 명확히 민족 사명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보통 이 세상의 한 국가를 놓고 너희 나라가 무엇을 위하여 이 세상에 있느냐 할 때 ‘우리는 영구하고 역사적인 것, 전 국민이 과연 그렇다고 수긍하며 따라갈 만한 사명을 갖고 있다’고 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본문내용
의 예언 활동 및 봉사의 생활에서 항상 대척적인 위치에서 북쪽 이스라엘 나라와 남쪽 유다 나라를 위협 했습니다.
앗수르는 아주 오래된 나라입니다. 주전 2000년경에 벌써 그 이름이 나온 나라입니다. 그렇지만 그 나라가 세계적인 제국으로 용명(勇名)을 떨치기 시작한 것은 B.C. 875년경부터인데 아주 잔혹한 그 백성들이 사위(四圍)의 나라를 막 집어먹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 북쪽 이스라엘 나라가 아람 나라와 의논을 하여 남방 유다를 쳤는데, 이게 734년경 얘기입니다, 그만 어떻게 할 길이 없으니까 유다는 사자를 멀리 앗수르로 보내 가지고 원조를 요청했습니다. 앗수르의 속국과 같이 조공을 해주고 ‘저놈들이 우리를 못 치게 좀 도와주십시오’ 한 것입니다. 그렇게 하니까 앗수르가 그 말을 듣고 대군을 몰고 와서 수리아와 이스라엘 나라를 쳤습니다. 그리고는 갈릴리 일대로 막 몰려 들어가 굉장히 많은 사람들을 잡아서 북쪽으로 가버렸어요. 이게 ‘갈릴리 포로 사건’ 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앗수르한테 그렇게 곤욕을 당한 뒤에 다시 쳐내려온 앗수르의 사르곤 임금에게 주전 721년에 완전히 망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다시는 회복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 다음에 한 20년 지나서는 앗수르가 이번에는 유다까지 집어먹으려고 남쪽으로 몰려 내려와서 유다의 40여개 성읍을 궤멸시켰습니다. 여기 본문에 나오는 말대로 황무해 가지고 아무것도 없고 딸 시온 하나만 남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이 대목은 지금 예언으로 그렇게 얘기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701년쯤에 이사야는 한 70세가 넘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전체로 볼 때 반드시 그때 이후 늙어 가지고 썼다고 볼 이유가 없습니다. 그때 앗수르 사람들이 유다에 와서 그 많은 성읍을 친 다음에 사람들을 잡아 다시 앗수르로 갔습니다. 이것이 히스기야 때입니다. 얼마 후 앗수르는 다시 유다를 침공하였고 그때 히스기야는 하나님 앞에 간절히 구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에게 계시하셨고 그 계시대로 천사가 와서 18만 5천 앗수르의 대군을 도륙해 버렸습니다. 그 후에 앗수르 임금 산헤립은 본국으로 돌아가 20년을 더 살았지만 다시는 예루살렘으로 쳐내려오지 못했습니다. 그만큼 받은 타격이 컸고 또한 하나님의 무서운 징벌이 두려웠던 것입니다. 이사야 시대에 앗수르는 이런 관계에 있던 나라입니다.
이사야는 유다 왕국이 장차 앗수르에게 그렇게 될 것을 이야기하면서 “시온만이 에워싸인 성읍같이 겨우 남았도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조금 남겨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었으리로다.” 장차 이렇게 무서운 사실이 올 것인데 너희는 하나님을 배반하고 여전히 악을 행하고 있느냐? 이것이 이사야서의 서두에 있는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그는 여러 열국에 관해서도 많은 예언을 했지만 주로 항상 유다와 예루살렘 중심으로 얘기하였습니다. 유다와 예루살렘, 시온 즉 장차 올 메시아의 내림과 복음의 사실 또 메시아가 주실 바 그 은혜의 자리를 놓고 얘기합니다. 그런 만큼 복음적인 내용을 또한 많이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이사야서를 다섯 번째의 복음서라고 하기도 합니다.
여기 이사야서 맨 처음에서 우리가 보는 바는 이스라엘 백성의 죄, 구약 교회로 하나님이 선택해서 그 크신 하나님의 경륜을 나타낼 오이코노미아가 자신의 성격과 존재 의의, 또한 신성한 사명은 느끼지 못하고 배반하고 반역하는 죄악으로 말미암아 받은 징계의 자리가 아물지도 않았는데도 계속적으로 악을 행하는 답답하고 슬픈 현실을 통곡하듯이 외치는 소리입니다. ‘하늘이여 이것 좀 보아라 땅이여 귀를 기울여 이 소리 좀 들어라’ 하는 슬픔과 통곡입니다.
앗수르는 아주 오래된 나라입니다. 주전 2000년경에 벌써 그 이름이 나온 나라입니다. 그렇지만 그 나라가 세계적인 제국으로 용명(勇名)을 떨치기 시작한 것은 B.C. 875년경부터인데 아주 잔혹한 그 백성들이 사위(四圍)의 나라를 막 집어먹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 북쪽 이스라엘 나라가 아람 나라와 의논을 하여 남방 유다를 쳤는데, 이게 734년경 얘기입니다, 그만 어떻게 할 길이 없으니까 유다는 사자를 멀리 앗수르로 보내 가지고 원조를 요청했습니다. 앗수르의 속국과 같이 조공을 해주고 ‘저놈들이 우리를 못 치게 좀 도와주십시오’ 한 것입니다. 그렇게 하니까 앗수르가 그 말을 듣고 대군을 몰고 와서 수리아와 이스라엘 나라를 쳤습니다. 그리고는 갈릴리 일대로 막 몰려 들어가 굉장히 많은 사람들을 잡아서 북쪽으로 가버렸어요. 이게 ‘갈릴리 포로 사건’ 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앗수르한테 그렇게 곤욕을 당한 뒤에 다시 쳐내려온 앗수르의 사르곤 임금에게 주전 721년에 완전히 망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다시는 회복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 다음에 한 20년 지나서는 앗수르가 이번에는 유다까지 집어먹으려고 남쪽으로 몰려 내려와서 유다의 40여개 성읍을 궤멸시켰습니다. 여기 본문에 나오는 말대로 황무해 가지고 아무것도 없고 딸 시온 하나만 남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이 대목은 지금 예언으로 그렇게 얘기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701년쯤에 이사야는 한 70세가 넘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전체로 볼 때 반드시 그때 이후 늙어 가지고 썼다고 볼 이유가 없습니다. 그때 앗수르 사람들이 유다에 와서 그 많은 성읍을 친 다음에 사람들을 잡아 다시 앗수르로 갔습니다. 이것이 히스기야 때입니다. 얼마 후 앗수르는 다시 유다를 침공하였고 그때 히스기야는 하나님 앞에 간절히 구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에게 계시하셨고 그 계시대로 천사가 와서 18만 5천 앗수르의 대군을 도륙해 버렸습니다. 그 후에 앗수르 임금 산헤립은 본국으로 돌아가 20년을 더 살았지만 다시는 예루살렘으로 쳐내려오지 못했습니다. 그만큼 받은 타격이 컸고 또한 하나님의 무서운 징벌이 두려웠던 것입니다. 이사야 시대에 앗수르는 이런 관계에 있던 나라입니다.
이사야는 유다 왕국이 장차 앗수르에게 그렇게 될 것을 이야기하면서 “시온만이 에워싸인 성읍같이 겨우 남았도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조금 남겨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었으리로다.” 장차 이렇게 무서운 사실이 올 것인데 너희는 하나님을 배반하고 여전히 악을 행하고 있느냐? 이것이 이사야서의 서두에 있는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그는 여러 열국에 관해서도 많은 예언을 했지만 주로 항상 유다와 예루살렘 중심으로 얘기하였습니다. 유다와 예루살렘, 시온 즉 장차 올 메시아의 내림과 복음의 사실 또 메시아가 주실 바 그 은혜의 자리를 놓고 얘기합니다. 그런 만큼 복음적인 내용을 또한 많이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이사야서를 다섯 번째의 복음서라고 하기도 합니다.
여기 이사야서 맨 처음에서 우리가 보는 바는 이스라엘 백성의 죄, 구약 교회로 하나님이 선택해서 그 크신 하나님의 경륜을 나타낼 오이코노미아가 자신의 성격과 존재 의의, 또한 신성한 사명은 느끼지 못하고 배반하고 반역하는 죄악으로 말미암아 받은 징계의 자리가 아물지도 않았는데도 계속적으로 악을 행하는 답답하고 슬픈 현실을 통곡하듯이 외치는 소리입니다. ‘하늘이여 이것 좀 보아라 땅이여 귀를 기울여 이 소리 좀 들어라’ 하는 슬픔과 통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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