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허락하는 데에 있다고 생각하는 그런 선에까지 와 있다.(597쪽) 비록 내가 이런 잔인한 일을 의도적으로 저질렀지만,그것은 내 마음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내 어리석은 머리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599쪽) 나는 리자가 사라지기를 가버리기를 나를 지하실속의 안정속에 내버려두기를 바랬다. 리자는 떠났다.나는 단 1분도 참을 수 없어 그녀를 부른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떠났고 그녀의 떠난 자리에 청색 5루블짜리 지폐를 본다.밖은 조용했고 눈은 펑펑 쏟아지고 있었다.(600쪽)
지하생활자는 묻는다.스스로 싸구려 행복과 고상한 고통 중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가를 묻는다. 자신에게 시간이 흘러도 불쾌함으로 남는 리자와의 얘기에 그는 자신의 수기는 문학이라 할 수도 없는 교화시키기 위한 처벌이라 말하며 자신의 낭만적인 주인공에 반(反)하는 주인공의 등장이유를 역시 삐딱하게 말하고 우리는 정확히 이 <살아있는> 삶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있고,그것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며 그것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를 혼자 내버려봐라. 책 없이 그러면 우리는 곧 혼란에 빠질 것이고 길을 잃을 것이다.(603쪽) 그러나 곧 우리는 관념으로부터 태어나는 방법을 생각해 낼 것이다.(603쪽)그리고 더이상 <지하에서>쓰는 것을 원치 않는다.
라고 말하지만 이 역설주의자는 역시 이곳에서 끝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우린 여기에서 중지해도 될 듯 보인다고 작가는 재치있게 말한다. <지하로부터의 수기> 이렇게 끝맺음을 한다. 2 ×2 =4인 인생이 있고 2 ×2= 5인 인생도 있음을 어떤이는 사랑의 완성으로서의 행복한 결과가 아닌 과정으로서의 혼돈과 파멸로의 흐름에 빠질 수도 있음을 그리면서, 결정되어진 결과를 두려워하는 자 역시 존재함을 작가가 아주 능글맞게 잘 표현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그 자신 이 작품을 쓸 당시 아내의 병고로 아주 힘들어하는 순간이었다고 한다. 그 당시의 작가들의 작품과 독일과 프랑스 낭만주의에 대한 자기 의견을 표현하면서 소설적 재미를 안겨주는 것 역시 맘에 든다. 사람이 무엇을 말하거나 글로 씀은 자기표현임을 알지만 더불어 그 글을 보는 사람 역시 자기표현의 감정이 생김을 느낄 수 있는 글이라는 생각이 든다.역시 어떤이의 마음과 지성을 다 이해했다고는 못하지만 독자의 입장에서 나름의 철학과 감성으로 받아들이는 글읽기이다.도스또예프스끼는 전제조건을 말하였고 나는 이해의 정도에 얇은 방어막을 친다
지하생활자는 묻는다.스스로 싸구려 행복과 고상한 고통 중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가를 묻는다. 자신에게 시간이 흘러도 불쾌함으로 남는 리자와의 얘기에 그는 자신의 수기는 문학이라 할 수도 없는 교화시키기 위한 처벌이라 말하며 자신의 낭만적인 주인공에 반(反)하는 주인공의 등장이유를 역시 삐딱하게 말하고 우리는 정확히 이 <살아있는> 삶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있고,그것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며 그것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를 혼자 내버려봐라. 책 없이 그러면 우리는 곧 혼란에 빠질 것이고 길을 잃을 것이다.(603쪽) 그러나 곧 우리는 관념으로부터 태어나는 방법을 생각해 낼 것이다.(603쪽)그리고 더이상 <지하에서>쓰는 것을 원치 않는다.
라고 말하지만 이 역설주의자는 역시 이곳에서 끝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우린 여기에서 중지해도 될 듯 보인다고 작가는 재치있게 말한다. <지하로부터의 수기> 이렇게 끝맺음을 한다. 2 ×2 =4인 인생이 있고 2 ×2= 5인 인생도 있음을 어떤이는 사랑의 완성으로서의 행복한 결과가 아닌 과정으로서의 혼돈과 파멸로의 흐름에 빠질 수도 있음을 그리면서, 결정되어진 결과를 두려워하는 자 역시 존재함을 작가가 아주 능글맞게 잘 표현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그 자신 이 작품을 쓸 당시 아내의 병고로 아주 힘들어하는 순간이었다고 한다. 그 당시의 작가들의 작품과 독일과 프랑스 낭만주의에 대한 자기 의견을 표현하면서 소설적 재미를 안겨주는 것 역시 맘에 든다. 사람이 무엇을 말하거나 글로 씀은 자기표현임을 알지만 더불어 그 글을 보는 사람 역시 자기표현의 감정이 생김을 느낄 수 있는 글이라는 생각이 든다.역시 어떤이의 마음과 지성을 다 이해했다고는 못하지만 독자의 입장에서 나름의 철학과 감성으로 받아들이는 글읽기이다.도스또예프스끼는 전제조건을 말하였고 나는 이해의 정도에 얇은 방어막을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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