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을 통해 사회화가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현재 세계라는 범위에서 서양은 정치적, 경제적인 면 등 여러 가지로 동양을 리드하고 있는 입장이다. 그렇기 때문에 서양의 기준에 맞춰, 서양입맛에 맞지 않는 문화는 야만이라고 여기는 세계적인 경향이 있는 것이다. 만약 반대로 동양에서 리드를 하는 입장이라면, 그리고 동양에서 지금의 서양과 같이 자 문화를 우월하게 여기는 풍토를 가지고 있다면, 고급 음식으로 여겨지는 ‘달팽이 요리’란 그야말로 징그럽고, 하등한 혐오식품이 될지도 모르는 것이다. 한 사회의 환경에 따라 만들어지고 습관 되어진 그 사회의 사람들에게 맞춰진 고유의 문화에는 우열이 있을 수 없다.
3) 개장국과 보신탕
88서울 올림픽 개최 당시, 외국인들의 눈치를 살피느라 ‘개장국’이라는 이름은 ‘보양탕’이 되고 ‘보양탕’은 지금의 ‘보신탕’이 되었고, 판매도 합법적으로는 할 수 없게 되었다. 물론 우리나라사람들이 스스로 보신탕문화를 반대하는 경향이 점차 생기고 있기는 하다. 우리나라에도 애완견문화가 발달하였고 ‘개’가 아니라도 단백질을 공급받을 수 있는 수단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을 문화의 발달이라고 볼 수는 없다. ‘개를 먹는 문화’가 하등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단지 환경이 바뀌면서 사람들은 다른 방향의 사회화를 하게 되고, 그래서 사람들의 인식이 점차 바뀌는 것뿐이다.
우리나라에서 앞으로 계속해서 개를 먹게 될 수도, 혹은 먹지 않게 될 수도 있다. 만약 개를 먹지 않게 된다면 그것은 세계화와 과학의 발전 등을 통해 조금씩 변화한 우리나라 문화에 우리가 조금씩 사회화되어, 우리 스스로가 개를 먹지 않는 것에 대해 자연스럽게 여기게 되었을 때, 그 때에 먹지 않게 될 것이다. 우리 사회는 아직 개를 먹는 문화를 가지고 있고 사회화 되어 있는데, 서양문화에 사회화 된 서양인들의 기준에 개고기가 불쾌하다고 하여, 우리의 문화를 비하시키고 억지로 바꾸려 하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이다.
Ⅲ. 결론
이와 같이 우리는 사회라는 커다란 공간 속에서 공통의 사회적 규범을 지켜나가며 변화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통해서 사회 구성원들 사이의 동의를 통한 사회적인 특징을 습득해 나가며
지속적인 재사회화를 통해 적응해 나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음식에 대한 끊임없는 변화를 통해 재사회화를 실천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고정적이고 진리적인 관점에서 각기 다른 사회의 음식의 사회화에 따라 생겨난 문화를 자신의 사회에서 습득한 이기적인 잣대로 다른 음식문화를 하등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을 나타낸다.
즉, 이러한 서열화를 가능하게 한 근거를 사람은 철저하게 사회화 되었다는 것에 두고 싶다. 지렁이가 혐오식품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있어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다른 사회 환경에서 사회화과정을 거친 이들에게는 아닐 수 있다. 우리의 인식과는 다르게 오히려 지렁이는 칼로리가 적고 단백질 함유량이 높은 음식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두 ‘실질적인 사실’에 입각하여 당장 지렁이를 먹자는 의견이 아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알고 있는 것이 반드시 진리는 아니라는 것, 인위적으로 형성되어 내안에 자리 잡은 것일 수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한다는 뜻이다.
즉, 내가 생각해 왔던 음식에 대한 인식의 모든 것들이 다른 사람에게는 불쾌감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되며, 무조건적으로 강요할 수는 없다는 걸 명심해야 할 것이다.
고정불변한 법칙은 존재하지 않듯이 끊임없이 변모해 가는 사회를 통해 다른 나라의 사회화를 통한 음식문화와 우리나라가 가지고 있는 음식문화 다르다는 이유하나만으로 비판할 것이 아니라 왜 다른지 그 이유를 먼저 따져봐야 할 것이다.
그동안 우리도 모르게 행하고 있던 사회적인 행동과 사고의 원천을 당연하게 진리로 여기고 판단의 기준으로 삼았던 예전의 모습에서 벗어나 음식에 대한 인식을 새로이 가져야 할 것이다.
앞서 언급했던 얘기가 꼭 혐오식품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모든 사회화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어떤 것에 우리가 습관 되어 있는 현상이며, 그것을 온몸으로 익히고 학습하는 과정을 통해 사회의 일원이 되는 우리는 다른 사회를 이해하기 위한 상대적인 입장과 사고의 유연성을 잃지 말아야 할 것이다.
즉, 어떠한 나라나 사회의 문화도 그 것 자체가 정답이고, 진리일 수 없다. 다만, 구성원들 사이에 일어난 사회적인 동의에 대한 실천적인 행동과 상대성에 입각한 자 문화와 타문화에 대한 이해만이 우리의 비껴나간 의식을 바로 잡아 줄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세계라는 범위에서 서양은 정치적, 경제적인 면 등 여러 가지로 동양을 리드하고 있는 입장이다. 그렇기 때문에 서양의 기준에 맞춰, 서양입맛에 맞지 않는 문화는 야만이라고 여기는 세계적인 경향이 있는 것이다. 만약 반대로 동양에서 리드를 하는 입장이라면, 그리고 동양에서 지금의 서양과 같이 자 문화를 우월하게 여기는 풍토를 가지고 있다면, 고급 음식으로 여겨지는 ‘달팽이 요리’란 그야말로 징그럽고, 하등한 혐오식품이 될지도 모르는 것이다. 한 사회의 환경에 따라 만들어지고 습관 되어진 그 사회의 사람들에게 맞춰진 고유의 문화에는 우열이 있을 수 없다.
3) 개장국과 보신탕
88서울 올림픽 개최 당시, 외국인들의 눈치를 살피느라 ‘개장국’이라는 이름은 ‘보양탕’이 되고 ‘보양탕’은 지금의 ‘보신탕’이 되었고, 판매도 합법적으로는 할 수 없게 되었다. 물론 우리나라사람들이 스스로 보신탕문화를 반대하는 경향이 점차 생기고 있기는 하다. 우리나라에도 애완견문화가 발달하였고 ‘개’가 아니라도 단백질을 공급받을 수 있는 수단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을 문화의 발달이라고 볼 수는 없다. ‘개를 먹는 문화’가 하등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단지 환경이 바뀌면서 사람들은 다른 방향의 사회화를 하게 되고, 그래서 사람들의 인식이 점차 바뀌는 것뿐이다.
우리나라에서 앞으로 계속해서 개를 먹게 될 수도, 혹은 먹지 않게 될 수도 있다. 만약 개를 먹지 않게 된다면 그것은 세계화와 과학의 발전 등을 통해 조금씩 변화한 우리나라 문화에 우리가 조금씩 사회화되어, 우리 스스로가 개를 먹지 않는 것에 대해 자연스럽게 여기게 되었을 때, 그 때에 먹지 않게 될 것이다. 우리 사회는 아직 개를 먹는 문화를 가지고 있고 사회화 되어 있는데, 서양문화에 사회화 된 서양인들의 기준에 개고기가 불쾌하다고 하여, 우리의 문화를 비하시키고 억지로 바꾸려 하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이다.
Ⅲ. 결론
이와 같이 우리는 사회라는 커다란 공간 속에서 공통의 사회적 규범을 지켜나가며 변화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통해서 사회 구성원들 사이의 동의를 통한 사회적인 특징을 습득해 나가며
지속적인 재사회화를 통해 적응해 나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음식에 대한 끊임없는 변화를 통해 재사회화를 실천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고정적이고 진리적인 관점에서 각기 다른 사회의 음식의 사회화에 따라 생겨난 문화를 자신의 사회에서 습득한 이기적인 잣대로 다른 음식문화를 하등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을 나타낸다.
즉, 이러한 서열화를 가능하게 한 근거를 사람은 철저하게 사회화 되었다는 것에 두고 싶다. 지렁이가 혐오식품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있어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다른 사회 환경에서 사회화과정을 거친 이들에게는 아닐 수 있다. 우리의 인식과는 다르게 오히려 지렁이는 칼로리가 적고 단백질 함유량이 높은 음식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두 ‘실질적인 사실’에 입각하여 당장 지렁이를 먹자는 의견이 아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알고 있는 것이 반드시 진리는 아니라는 것, 인위적으로 형성되어 내안에 자리 잡은 것일 수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한다는 뜻이다.
즉, 내가 생각해 왔던 음식에 대한 인식의 모든 것들이 다른 사람에게는 불쾌감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되며, 무조건적으로 강요할 수는 없다는 걸 명심해야 할 것이다.
고정불변한 법칙은 존재하지 않듯이 끊임없이 변모해 가는 사회를 통해 다른 나라의 사회화를 통한 음식문화와 우리나라가 가지고 있는 음식문화 다르다는 이유하나만으로 비판할 것이 아니라 왜 다른지 그 이유를 먼저 따져봐야 할 것이다.
그동안 우리도 모르게 행하고 있던 사회적인 행동과 사고의 원천을 당연하게 진리로 여기고 판단의 기준으로 삼았던 예전의 모습에서 벗어나 음식에 대한 인식을 새로이 가져야 할 것이다.
앞서 언급했던 얘기가 꼭 혐오식품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모든 사회화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어떤 것에 우리가 습관 되어 있는 현상이며, 그것을 온몸으로 익히고 학습하는 과정을 통해 사회의 일원이 되는 우리는 다른 사회를 이해하기 위한 상대적인 입장과 사고의 유연성을 잃지 말아야 할 것이다.
즉, 어떠한 나라나 사회의 문화도 그 것 자체가 정답이고, 진리일 수 없다. 다만, 구성원들 사이에 일어난 사회적인 동의에 대한 실천적인 행동과 상대성에 입각한 자 문화와 타문화에 대한 이해만이 우리의 비껴나간 의식을 바로 잡아 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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