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 선법, 좌선법, 동정일여, 삼학병진]원불교 선법과 좌선법, 원불교 선법과 동정일여, 원불교 선법과 삼학병진, 원불교 선법과 무시선, 원불교 선법과 공부, 원불교 선법과 교서, 원불교 선법과 목우수행 분석
본 자료는 6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해당 자료는 6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6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원불교 선법, 좌선법, 동정일여, 삼학병진]원불교 선법과 좌선법, 원불교 선법과 동정일여, 원불교 선법과 삼학병진, 원불교 선법과 무시선, 원불교 선법과 공부, 원불교 선법과 교서, 원불교 선법과 목우수행 분석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원불교 선법과 좌선법

Ⅱ. 원불교 선법과 동정일여

Ⅲ. 원불교 선법과 삼학병진

Ⅳ. 원불교 선법과 무시선
1. 진공묘유의 선
2. 삼학병진선
1) 삼학
2) 삼학병진
3. 생활 속의 선(활선)
4. 자유를 얻는 선

Ⅴ. 원불교 선법과 공부
1. 교법의 시작과 끝에서 본 공부
2. 사은 사요와 공부
3. 삼학수행은 「오래오래 공부하는 길」
4. 공부의 요도와 인생의 요도

Ⅵ. 원불교 선법과 교서
1. ????정정요론???? 및 ????수심정경????의 영향문제
2. ????수심정경???? 영향의 한계와 대종사의 체험

Ⅶ. 원불교 선법과 목우수행

참고문헌

본문내용

신과 상통한다고 볼 수 있으며 불조요경에 보명의 목우도를 채택한 의미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 되어진다. 즉 원불교의 무시선이 본래 분별주착이 없는 본연성품을 찾아야 함을 주장하는 점과 그 이후에 성품단련에 역점을 두어 설명한 점이 보명의 목우도정신과 상통하기 때문이다.
무시선장에서는 무시선의 원리와 강령을 언급하고서 무시선의 실제활용을 위해서는 목우의 방법을 말하고 있다. 처음으로 선을 닦는 사람은 마음이 마음대로 잘되지 아니하여 마치 저 소 길들이기와 흡사하나니 잠깐이라고 마음의 고삐를 놓고 보면 곧 도심을 상하게 되나니라.
이것은 보명의 목우도 제이도 초조와 제삼도 수제의 단계로서 이들에겐 마음의 고삐와 회초리의 두 방법을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회초리와 고삐는 마음단련의 가장 엄격하고도 철저한 수행방법으로 챙기고 심공 드리는 유념공부를 말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염불 좌선을 할 때와 일체 때에 마음을 잘 붙잡아 외경에 흘러가지 않게 하기를 소 길들이는 이가 고삐를 잡고 놓지 않듯 하는 상태를 정산종사는 집심 이라고 표현했다. 곧 회초리에 역점을 두는 초조의 단계와 다음에는 소의 고삐에 역점을 두는 수제의 단계가 있어서 유념의 대중이 끊어지지 않는 상태가 바로 집심의 단계라 하겠으며 이 집심의 극치는 소를 버드나무에 매는 회수의 단계까지를 의미한다 하겠다.
그러나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어느 정도 조숙되면 평소 욕심나는 경계에 있으되 그 경계에 담박하게 하기 위하여 소에게 맡겨 보는 단계가 있다. 즉 아무리 욕심나는 경계를 대할지라도 끝까지 싸우는 정신을 놓지 아니하고 힘써 행한즉 마음이 차차 조숙되어 마음을 마음대로 하는 지경에 이르나니 항상 끌리고 안 끌리는 대중만 잡아갈지니라. 그리하여 마음을 마음대로 하는 건수가 차차 늘어가는 거동이 있은즉 시시로 평소에 심히 좋아하고 싫어하는 경계에 놓아 맡겨보되 만일 마음이 여전히 동하면 도심이 미숙한 것이요 동하지 아니하면 도심이 익어가는 증거니라 하였다.
이것은 보명의 목우도에서 소의 고삐를 풀고 목동의 회초리만 보여 주는 제오도 순복의 단계에서 제육도 무애, 제칠도 임운까지를 말하며 그 대의는 목동이 대중 잡아 맡겨보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 대중잡아 맡겨 보는 상태를 정산종사는 관심이라고 표현했으며 이 관심공부는 집심공부가 잘되면 마음을 놓아 자적하면서 다만 마음가는 것을 보아 그 망념만 제재하기를 마치 소 길들이는 이가 소의 고삐는 놓고 소가 가는 것만 제재하는 것으로서 놓아 맡겨 보되 온전한 대중만은 잡아야 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마치 어린 아이를 보는 사람이 위험한 것만 챙기고 어린이 마음대로 맡겨 두는 것과 같아서 만약 자라는 어린아이를 계속 잡고만 있고, 자유를 주지 않으면 잘 자랄 수 없는 것과 같이 많이 길들여진 소에게 맡기는 것이 목동의 할 일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보명의 목우도를 원불교 교리상 관심의 안목에서 보면 제오도 순복은 목우에게 맡기어 따르게 하고, 제육도 무애는 맡겼으되 걸림이 없는 상태이고 제칠도 임운은 소에게 맡겨진 극치로서 목동은 깊은 잠이 든 상태에 이른다고 볼 수 있으며 이 관심의 단계에서도 유념의 대중은 필요한 상태라고 할 수 있겠다.
이상 관심에서 한걸음 더 나가면 무심의 상태에 이른다. 무시선장에 보면 부동심을 길러 천만경계에 놓아도 동치 아니함이 무심의 극치임을 밝히고 있다. 그러므로 정산종사는 관심공부가 순숙하면 본다는 상도 놓아서 관하되 관하는 바가 없기를 소길들이는 이가 사람과 소가 둘이 아닌 경지에 들어가 동과 정이 한결같이 하는 것이다 라 하여 무심의 공부단계를 유념의 수행이 아니라 무념의 수행으로서 경계에 당하면 저절로 절도에 맞는 경지로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천만경계에 동하지 아니하면 이것이 내심의 무심 상태로서 무엇에도 얽매이지 아니한 담박한 경지에 이르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이것을 보명의 목우도에서 찾아보면 제팔도 상망은 일체부동하여 천만분별을 다 놓고 다 잊어버린 상태의 무심이라 볼 수 있겠다.
이상의 무심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수선하게 되면 동정간에 마음의 자유를 얻게 되는 상태로써 무시선장에 보면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사람이 만일 오래 오래 선을 계속하여 모든 번뇌를 끊고 마음의 자유를 얻은 즉 철주의 중심이 되고 석벽의 외면이 되어 부귀영화도 능히 그 마음을 달래어 가지 못하고 무기와 권세로도 능히 그 마음을 굽히지 못하며 일체법을 행하되 걸리고 막히는 바가 없고 진세에 처하되 항상 백천 삼매를 얻을지라
여기에 부동심과 무심의 극치로서 철주의 중심이 되고 석벽의 외면이 되어 어느 무엇하나 사로잡히지 않는 상태의 구경과 소도 사람도 다 허물어지고 오직 전체가 일진법계의 법도장으로 두두물물이 부처 아님이 없는 경지가 나타난다.
이것을 정산종사는 능심이라고 표현했으며 따라서 동하여도 동하는 바 없고 정하여도 정하는바 없으되 동하여도 분별에 착이 없고 정하여도 분별이 절도에 맞아 대소유무에 걸림이 없이 시비리해를 자유로 건설하는 단계라 볼 수 있겠다. 여기에 보명의 목우도 제십도인 쌍민은 곧 마음의 자유를 얻되 능히 법도에 맞는 상태로 자유와 법도가 합일된 경지이며 비록 방편을 써도 그 모두가 법도에 맞지 않는 바 없어서 중생으로서는 측량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른 만능의 경지라 하겠다.
따라서 무시선 공부는 보명의 목우도와 통하는 훈련하는 법, 성품단련의 법으로써 집심단계의 유념공부, 관심단계의 집심에 의한 표준으로써 유념공부, 무심단계의 무념공부, 능심단계의 무심에 의한 표준으로써 유념공부 수행을 말함으로써 이는 곧 유념 무념을 아우르며 자재하는 수행법 이라 할 수 있겠다.
참고문헌
* 김은종(1999), 원불교 좌선법의 형성과정, 한국원불교학회
* 김윤겸(1978), 원불교 삼학의 연구, 원광대학교
* 김은종(1999), 원불교 선법 연구의 현황과 과제,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
* 박희종(2009), 무시선법 중 경계에 대한 인식과 수행의 단계 고찰,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
* 박재우(1994), 원불교 선의 특징, 원광대학교
* 이성희(2000), 원불교 선법에 관한 연구, 원불교대학원대학교
  • 가격9,000
  • 페이지수19페이지
  • 등록일2013.07.19
  • 저작시기2021.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863040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