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정변과 5.16 군사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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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무신정변과 5.16 군사 혁명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었으며, 문신들의 호화스러운 행락 놀이 따위에 호위병으로 불려나가곤 했다. 더욱이 무신 정변이 일어났던 의종 때는 문벌 귀족 사회의 사치와 부패가 갈 데까지 간 때였다. 의종은 왕권이 힘을 잃은 상태에서 문벌 귀족들의 부패에 덩달아 놀아나면서 사치와 방탕으로 나날을 보냈습니다. 무신 정변이 일어났던 날도 왕과 문신들은 보현원에 사치스러운 나들이를 했다.
그 무렵 문벌 귀족 사회는 썩을 대로 썩었고 왕은 무능과 부패에 절어 있었으므로 무신이 아니더라도 실력만 갖추었다면 정권을 뒤엎겠다는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때 상황에서 정권을 뒤엎을 만한 현실적인 힘을 갖춘 세력은 무신들 이외에는 없었다. 무신들은 조직이 잘 되어 있고 무력을 가지고 있었을 뿐 아니라, 잦은 전쟁과 반란을 겪으면서 상당한 실력을 갖춘 세력으로 성장해 있었다. 즉, 무신 정변의 발발과 성공은 무신들이 현실적인 정권 담당 세력이었기 때문인 것이다.
무신 정변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무신들이 무력을 갖춘 집단이면서 가장 잘 조직된 집단이었다는 데에도 있었지만, 병사들의 적극적인 협력도 중요한 요인의 하나였다. 그들은 문벌 귀족 사회의 혹독한 병역 의무와 노역 동원 그리고 농민인 부모형제의 곤궁함 때문에 크나큰 불만을 지니고 있었다.
무신 정변을 거쳐 집권한 무신들은 썩어빠진 문벌 귀족 사회에서 정권을 뒤엎고 다음 정권을 떠맡을 수 있는 현실적인 힘을 가진 세력이기는 했지만, 문벌 귀족 사회의 부패와 무능을 개혁할 수 있는 세력은 전혀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무신 정권은 문벌 귀족 사회의 부패와 무능을 개혁하기는커녕 모순을 더욱 증폭하는 작용을 했습니다.
반란에 성공한 무신들은 굶주린 이리떼처럼 문벌 귀족들이 차지했던 부와 권력을 차지하는 데 정신이 없었다. 그들이 그러는 만큼 농민들에 대한 수탈은 더욱 가혹해졌고, 반란에 성공한 무신들끼리 벌이는 부와 권력을 둘러싼 다툼도 심각했습니다. 함께 반란을 일으켰던 정중부와 이의방, 이고는 서로 사병을 거느리면서 혈투를 벌이다가 이고는 이의방에게, 이의방은 정중부에게 제거 당했다. 마침내 정중부가 일인자가 되어 혼자서 권력을 독차지한 뒤 무신들의 최고 회의 기관인 중방을 중심으로 통치를 했다.
그러나 정중부의 집권도 잠깐이었다. 정중부는 다시 경대승의 손에 숙청되고, 경대승은 도방을 두어 자기의 신변을 지키면서 권력을 휘두르다 병이 들어서 죽었다. 경대승이 죽은 뒤 이의민이 권력을 잡았으나, 곧바로 최충헌에게 피살되었다. 무신 정변이 일어난 1170년부터 최충헌이 정권을 잡은 1196년까지 자그마치 3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무신들은 서로 토지와 권력을 빼앗기 위해 이전투구를 벌였다. 그러다 보니 고려 사회는 크나큰 혼란에 빠졌고, 백성들의 생활은 말이 아닌 지경이 되어 버렸다.
고려 시대의 무신 정변은 그런 점에서 우리에게 역사적 교훈을 준다다. 무신 정변은 무신 차별이 직접적 계기가 되었지만, 그것보다는 문벌 귀족 사회의 부패와 왕권의 무능 및 부패, 그리고 현실적인 정권 담당 세력으로서 무신들이 지닌 실력이 근본적인 원인이 되어 일어난 것이다다. 여기에 억압과 수탈에 시달리던 일반 병사들의 도움이 한몫했다고 보아야 한다.
현대 사회에서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는 원인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우선 그 사회의 집권 세력이 부패하고 무능할 때 군사 쿠데타의 온상이 된다. 그리고 군부 이외에 부패한 집권 세력을 대신해서 정권을 담당할 실력을 갖춘 세력이 없을 때 군사 쿠데타는 발생할 조건이 형성되는 것이다. 부패하고 무능한 집권 세력을 대신해서 개혁을 할 수 있는 세력이 존재하는 사회에서는 군사 쿠데타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군사 쿠데타는 정상적인 헌정 질서를 중단시켰다는 것 때문에만 문제인 것은 아니다다. 군인들이 주도 세력이라는 것 때문에 문제인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것은 고려 시대의 무신 정변에서 보듯 개혁과는 거리가 먼, 극단적인 반동적 형태의 폭거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5. 16 군사 쿠데타는 4. 19 혁명에서 분출된 민주 열기를 짓누른 폭거였고, 반외세 민족통일운동의 열기를 짓밟은 반혁명이었기 때문에 문제가 된 것이다. 12. 12와 연이은 5. 18 군사 쿠데타는 반유신 민주화투쟁과 80년의 이른바 `서울의 봄`을 짓밟고 과거로 회귀하려 했던 폭거이기 때문에 문제인 것이다. 이 쿠데타들은 그 순간에 현장에서 진압되지 못했지만, 이후 역사적 평가 혹은 법적 처리를 통해 폭거로 규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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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3.08.22
  • 저작시기2013.8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874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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