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대북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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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70년대 대북정책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서론
1. 주제선택의 이유와 중요성

Ⅱ.본론
1. 1970년대 이전의 대북정책
2. 1970년대 국제환경과 한반도 안보환경
3. 박정희 정부의 안보정책
4. 박정희 정부의 통일정책
5. 8·15 선언(평화통일 기반 조성을 위한 구상 제의)
6. 남북적십자회담(통일정책 수반으로서의 남북대화)
7. 7·4 남북공동성명
8. 6·23선언(평화통일 외교정책에 관한 특별선언)
9. 남북 상호불가침협정체결 제안과 남북대화의 전진적 방향
10. 남북체육회담
11. 통일실현 기초로서의 국가안전보장책
12. 현 정치인(김덕규)이 바라보는 박정희 정부의 대북정책
13. 우리들의 생각

Ⅲ.결론

본문내용

을 반대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 선언을 계기로 거의 20여 년만에 남북한 당국이 직접 협상하여 마련한 공동성명은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말았다.
그 결과 남북한 양측은 서로를 더욱 불신하였고, 각각 유신체제와 유일지도체제를 내용으로 체제강화에 몰두하였다.
(2) 김덕규 의원이 바라보는 박정희 정부의 통일정책
박정희 정부의 통일정책이 진정성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7.4남북공동성명은 대화의 물꼬를 트게 했지만 진정성이 결여되어 있었기 때문에 진정한 통일의 노력이라고 볼 수 없었다. 이러한 협상 중에서도 항상 대결과 대립의 충돌이 있어왔다. 3·8선에서 총성이 울려 퍼졌던 것이다.
한미관계에서 한국은 미국에 6.25에 관한 은혜를 갖고 있다. 그리고 박정희 정부 때 안전을 위한 체계를 갖추어 주어 안보는 유지가 되었다. 아쉬운 것은 군사정권과 미국의 역할이 과연 긍정적으로 남북통일을 지향했는가는 미지수다.
반독재 민주화의 군사정권은 통일 정책을 정권 유지의 수단으로 보았다.
앞으로의 통일은 물리적 통일이 아닌 평화교류 즉 대화를 통하여 남북한의 동질성을 회복하면서 이루어 나가야 할 것이다.
통일은 급한 것이 아니다.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13. 우리들의 생각
2006년 5. 24일 뉴스를 보니 북한이 일방적으로 경의선 남북열차 운행을 취소하였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것은 정말 북한이 통일에 대한 의지가 있느냐하는 것에 그리고 정말 통일을 원하고 있느냐 하는 것 에 의구심을 갖고 바라보게 하는 행위이다.
2000년도에 있었던 남북정상의 만남이 이벤트적인 면이 다분히 있었다 할 지 라도 그 자체만으로도 정말 감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아직도 약속했던 답방을 무기한 연기하고 있는 실정이다.
남북정책, 특별히 70년대의 남북정책에 대한 조사를 하면서 느꼈던 점이 있다. 그 누구나 아니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본질적으로 아무런 이유 없이 한민족이라는 그 정통성이 있기 때문에 통일이 된다면 가슴속 깊이 뭉클함을 느낄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마음만으로는 해결하기에는 벅차다 싶은 복잡한 일이 많이 있는 듯 보인다.
정권에, 국제정세에 그리고 현실적인 경제문제로 인해 통일은 일상생활 속에서 다소 뒷전으로 밀려있고 멀게만 느껴지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통일문제는 그것이 ‘문제’가 될 때에는 참으로 우리의 생존권과도 직결되어 있는 중대한 사안이다. 사실 우리 남자들이 피 끓는 청춘에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고 있는 것도 북한과 문제가 직결 되어있는 것이다. 우리가 알게 모르게 자각을 하 든 안하든 통일문제는, 남북문제는 우리의 생활과 깊숙이 연관되어 있기도 한 것이다.
다소 감정적으로 흐르는 듯 한 말일지 모르겠지만 통일은 아무런 이유 없이 이루어 져야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떠한 이유가 생겨 날 때 우리의 통일은 한걸음씩 멀어져 갈 것이다. 지금까지 특히 70년대의 남북정책은 김덕규 의원이 말했던 것처럼 정당성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통일에 대하여 진정한 목적을 두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지금도 현 정부와 김정일 위원장이 통일에 대한 진실한 마음으로 다가서고 있는 지는 잘 느껴지지 않는다.
좀 더 진정으로 다가서고 좀 더 현실적으로 이벤트적인 면이 아닌 방식으로 통일문제에 두 정권이 다가설 때 통일은 한걸음 더 가까워 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국방의 의무도 좀 더 현실적으로 바뀔 것 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전쟁의 위험도 한결 사라질 것이고 말이다.
Ⅲ. 결 론
박정희 정부의 통일정책을 한마디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처음에는 북한을 대화의 상대로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다 1970년대 전반에 들어서면서 서서히 북한을 국가수준으로 인정한 것은 아니었지만, 통일의 주체로서 대화의 상대로서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정책을 실시했다.
1960년대는 경제적으로 북한에게 열세였고 정치적으로도 어수선한 분위기였기 때문에 북한과 대화를 하거나 화해의 제스쳐를 보낼 수는 없었다. 1960년대 통일정책의 가장 큰 기조는 ‘선건설 후통일’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정책은 1960년대 상황을 적절히 설명한다고 할 수 있다.
박정희 대통령은 북한과의 통일에 전력하기 전에 남한의 경제력을 일정정도의 수준으로 끌어올려서, 그 경제력을 바탕으로 북한과의 통일논의에서 우위를 점하고자 했다. 따라서 60년대에는 민간인들이나 민간단체들의 평화통일에 대한 논의는 금기시 되었으며 통일에 대한 모든 사항은 정부가 독점적으로 처리하게 되었다. 하지만 정부의 통일논의 독점에도 불구하고 정치인들이나 사회저면인사들을 중심으로 각양각색의 통일정책들이 제시되었는데 박정희 대통령은 이러한 제안들에 대해서 양면적 대응책, 즉, 일면강경대응, 일면 신중수렴의 조치를 취했다. 1960년대는 통일에 대한 논의보다는 경제력발전에 우선을 두는 정부의 정책으로 인해 통일논의가 활발하지 못했다.
반면에 1970년대 들어서서는 초반부터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위한 조치들이 취해졌다.
제1기 남북대화의 시대라고 일컬어지기도 하는 1970년대에는 많은 남북대화들이 추진되었다. 남북적십자회담, 남북조절 위원회, 남북 체육회담 등이 이 시기에 이루어진 남북대화들이다. 비록 발전적인 형태로 나아가지는 못했더라도 이 당시의 많은 남북대화들은 남과 북의 관계를 일정정도 화해의 길로 인도했음은 사실이다.
북에 대한 박정희 대통령의 태도도 많은 변화를 보인다. 1960년대 철저히 북한을 배척하던 박정희 대통령은 국제화해분위기속에서 북과의 화해를 추진했고, 평화통일 기반조성을 위한 구상을 제시한 ‘8·15선언’이라든지 평화통일 외교정책에 관한 특별선언(6·23선언)등을 발표하게 되었다. 이러한 선언들이 비록 실천적인 면에서 커다란 효과를 거두지 못했지만 정부의 통일정책이 상당히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다.
1970년대 초반의 활발한 남북대화도 결국은 서로의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한 채 남과 북은 다시 대립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하지만 남과 북의 화해분위기는 그 뒤를 이어 들어선 정부의 통일정책에 발전적인 영향을 미쳤고, 2000년 6월에는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까지 이끌어 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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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4.07.11
  • 저작시기20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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