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기독교 윤리] 바울서신 각 권에 나타난 바울의 윤리 (직설법과 명령법의 관계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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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바울의 기독교 윤리] 바울서신 각 권에 나타난 바울의 윤리 (직설법과 명령법의 관계 고찰)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신학과 윤리의 관계
2. 바울 서신에서 직설법과 명령법
3. 직설법과 명령법에 대한 견해들
4. 바울 윤리의 4가지 기초

본문내용

관점에서 생각할 수 있다. 직설법이 신자의 새 시대 (the new age or the age to come)적인 위치에 초점을 두고 있다고 볼 수 있고, 명령법은 신자의 옛 시대 혹은 악한 시대적 위치에 초점을 두고 있다. 신자는 이미 받은 구원 (직설법적 구원)으로 말미암아 새 시대의 소속된 자로서 옛 시대 속에 살고 있다. 바로 여기서 새 시대에 소속된 신자는 옛 시대로부터 온갖 죄의 공격의 위험을 받고 있다. Kuemmel는 “명령법이 끝장나고 있는 옛 시대와 그 능력들에 의하여 위협을 받고 그렇기 때문에 신자가 이미 받은 구원을 굳게 잡을 책임을 신자를 그려주고 있는 것이다” 고 했다 (The Theology of the NT, p.227: “But the imperative characterizes the Xn as threatened by the old eon which is coming to an end and by its powers, and hence as responsible for holding firm to the deliverance that he has received"). 이 관점에서 명령법은 받지 않은 구원을 얻으라는 권면이 아니라, 이미 받은 구원을 굳게 잡고 놓치지 말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Ibid., p. 227).
3) 성령론적인 측면으로, 성령은 종말론적인 선물이면서 동시에 아직 임하지 않은 구원의 대추수를 보장하는 선불의 개념을 가지고 있다(downpayment or earnest). 성령의 관점에서 볼 때 바울의 윤리는 성령 안에서 사는 삶이요, 성령을 따라 행하는 삶이요 (갈 5:24), 성령의 욕망을 성취하는 하는 삶이요, 성령의 새로움 가운데 행하는 삶이다 (롬 7:6). 바로 이점에서 바울의 윤리는 성령의 윤리라고 볼 수 있다. 신자의 존재 방식은 성령의 영역이기 때문에 (en pneumati) 성령에 요구를 따라 살아야 할 책임이 있다 (롬 8:9). 왜냐하면 성령의 지속적인 도우심과 변화시키는 능력이 없이 올바른 삶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성령의 윤리라 불릴 수 있는 또 다른 이유는 성령을 주인으로 모시고 그 뜻을 따라가 갈 때만이 하나님이 요구하는 명령들을 이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울 윤리의 성령론적 측면을 강하게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 로마서 8장과 갈 5장이다.
4) 인간론적인 측면으로, 신자는 종말론적인 성령을 소유한 새 사람이면서 동시에 옛 시대의 특성인 내주하는 죄와 옛 사람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다. 신자들의 마음에는 성령님이 주인으로 내주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자의 몸은 여전히 죄의 몸이요 (롬6:6 the sinful body), 죽을 몸이다 (6:12 mortal body). 그러기 때문에 새 창조 질서에 소속된 새로운 피조물 (new creature belonging to the new creation order in 2 Cor 5:17)인 신자는 성령으로 몸의 더러운 행실들을 죽이고, 옛 사람을 벗으며, 땅에 속한 지체들을 벗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인간의 관점에서 상대적인 의미로 윤리는 감사와 응답의 윤리이다 (Schrange, p. 171).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종말론적인 행동에 대한 반응의 윤리이다 (ethic of response to God's eschatological act in Jesus Christ from A. D. Verhey, "Ethics: NT Ethics," ISBE 2:179). 이 말은 우리가 받은 구원의 실재에 합당한 삶은 전적으로 인간의 노력과 힘으로만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바울 윤리의 성령론적 관점은 이러한 이해를 불가능하게 한다. 뿐만 아니라 윤리의 기독론적인 관점은 여전히 감사의 응답으로써의 바른 삶은 그리스도의 은택에 기초하고 있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윤리에서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이 상호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구원의 실재라는 선물을 직설법으로 주시고 나머지는 우리가 이에 근거하여 우리만의 힘으로 명령법의 요구를 이루는 삶을 살라고 하시는 분이 아니다. Marxsen는 다음과 같이 묻는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이 명령들을 실천하라고 요구하신다고 생각할까? 만약 그러한 경우라면, 모든 것이 사람의 행위에 달려있을 위험성이 없을까?” (p. 181). 이 명령법의 실행조차도 성령의 도움이 없이 우리의 노력으로만은 불가능하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는 직설법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명령법에도 존재한다. 다만 그 은혜가 존재하고 작용하는 방식이 다를 뿐이다. 직설법에서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밖에서부터 우리 안으로 들어온다. 이 때 우리는 은혜의 수혜자이다. 반면 명령법에서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 속에서 우리를 통하여 (노력, 기도 등) 역사한다. 같은 맥락에서 Ridderbos는 다음과 같이 잘 지적하고 있다.
“새 사람이 새 생명 속에서 나타내는 것, 그가 성령의 열매와 선행으로 나타내 보이는 것은 그가 하나님의 힘과(out of and by the strength of God), 성령의 능력을 통해 (out of the power of the Spirit)그리스도에게 소속되게 하시는 그분의 덕으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by virtue of his belonging to Christ). 따라서 이 둘의 관계에 대하여 의심할 여지가 없다. 직설법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 명령법은 인간이 역할을 분담을 하거나 명령법은 신자 편에서 하나님이 하신 일에 대하여 반응하기 위해서 그가 하신 일에 대하여 일깨운다는 의미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역할이 분담된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Paul, p. 255).
이 둘이 균형을 이루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빌 2:12-13이다. 하나님이 신자가 구원을 계속적으로 이루어 나가는데 필요한 것을 그 속에서 역사하고 있기 때문에 신자가 구원을 이루어 나가야 하고, 또 구원을 이루어 나갈 수 있다. 이점에서 신자가 구원을 이루고자 하는 노력은 능력으로 신자 속에서 역사하는 그리스도의 역사하심을 따라 일어나는 것이다 (Ridderbos, p. 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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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4.09.03
  • 저작시기20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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