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려사절요』를 만들어 자신들의 사관으로 사서를 완성시키고자 하였던 것이다.
두 사서의 차이는 체재나 서술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기전체가 인물 중심의, 열전이 주가 되는 사서임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정사에 비해 세가의 비중이 큰 것
|
- 페이지 11페이지
- 가격 2,000원
- 등록일 2003.12.05
- 파일종류 한글(hwp)
- 참고문헌 있음
- 최근 2주 판매 이력 없음
|
|
한씨(韓氏)로 택했다고 하는데
이가 곧 위숙 왕후(威肅王后)였다.
세조는 송악산 옛 집에 여러 해 살다가 또 새 집을
그 남쪽에 건설했는데 그 터는 곧 연경궁 봉원전(延慶宮奉元殿) 터이다.
그때에 동리산(桐裏山) 조사(祖師) 도선(道詵)이
|
- 페이지 11페이지
- 가격 3,000원
- 등록일 2009.11.19
- 파일종류 한글(hwp)
- 참고문헌 있음
- 최근 2주 판매 이력 없음
|
|
싣고 있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고려사≫ 찬자들이 쓴 유일한 사론이 세계 말미에 붙여졌다. 또한, 조칙과 상소문은 그 내용을 분류해 각 지에 싣고 나머지는 세가와 전에 실었다는 원칙과 유가(儒家)의 문집과 잡록의 사적 중 내용이 있는
|
- 페이지 2페이지
- 가격 300원
- 등록일 2010.05.14
- 파일종류 한글(hwp)
- 참고문헌 없음
- 최근 2주 판매 이력 없음
|
|
고려 때는 송나라와 빈번한 교류와 아울러 많은 중국 서적이 들어왔다. 《고려사세가》에는 6대 성종 9년(990)에 修書院을 두었고, 9대 현종 18년(1027)에는 송나라 강남인 李文通 등이 597권의 서적을 바쳤고, 선종 3년(1086)에는 王弟 釋煦가 송에
|
- 페이지 13페이지
- 가격 6,500원
- 등록일 2013.08.01
- 파일종류 한글(hwp)
- 참고문헌 있음
- 최근 2주 판매 이력 없음
|
|
세가(世家)에 빠져 있으며, 지(志)에는 연대의 표시가 없는 것도 있다.
註 12)와 同
원래 기록이란 어느 것을 막론하고 일정한 시대에, 일정한 사람들의, 일정한 목적의식 하에서 작성되는 것 인만큼, 그 나름의 제약이 있게 마련이다. 『고려사
|
- 페이지 10페이지
- 가격 2,500원
- 등록일 2004.10.04
- 파일종류 한글(hwp)
- 참고문헌 있음
- 최근 2주 판매 이력 없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