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문화와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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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I. 죽음에 대해 생각하기
1. 죽음, 그 미지의 나라
2. 누가 죽음의 승리를 보았는가?
3. 죽음을 두려워 말라
4. 죽음에 이르는 병
5. 신, 거짓말, 죽음
6. 사랑했노라 그래서 죽였노라
7. 야한 것은 죽이는 것?
8. 죽음은 행복하다
9. 유럽에서 죽다

II. 죽음에 대해 그려내기
1. 해골의 비밀
2. 비극적이지 않은 르네상스 비극
3. 희생과 죽음
4. 피그말리온과 프랑켄슈타인
5. 묘지 위에 놓이는 장미
6. 누가 흡혈귀를 무서워하랴
7. 공포영화는 죽음에 대한 백신?
8. 신화는 끝나지 않았다

III. 맺음말

본문내용

아닐까 생각된다. 예를 들어 식민지적 경험을 근대적 경험으로 가지고 있는 한국과 같은 나라에서 근대예술이란 태생적으로 민족문화적 역사성이나 부르주아적 문화의식과 조우할 수 없었고 예술을 넘어서 인문학 전체가 어떤 몰 주체적인 허위의식을 인정하지 않으면 성립하지 못하는 조건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벤야민은 유럽 이외의 땅에서 자신의 생명을 이어간다는 것은 더 이상 무의미한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게다가 그가 평생을 바쳐 이루어온 모든 학문적 업적과 자료들이 고스란히 파리에 남아있었기 때문에 그의 상실감은 더욱 컸을 것이다. 말하자면 벤야민의 자살은 절망에 빠진 한 개인의 비운이었다기 보다는 순수성에 집착한 유럽중심주의가 어떻게 한계 상황에 부딪히게 된 것인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인 것이다. 벤야민의 자살은 루카치의 소련 행과 하이데거의 나치 협력과 맞물려 역사의 소용돌이에 떠밀려 침몰해갔던 유럽이라는 타이타닉호의 선택을 잘 보여주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벤야민의 자살은 현실에 질식된 유럽적 휴머니즘의 죽음이기도 한 것이다.
벤야민은 부유한 유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애초에 장사나 돈벌이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초기에 박사학위 논문을 완성했을 때를 제외하고 학문적 성공운은 그를 찾아 오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교수자격 심사용으로 제출된 『독일 추모극의 기원』이란 논문은 내용이 산만하고 이해가 어렵다는 이유로 반려되었다. 그 후 벤야민은 라디오 진행자로부터 번역가 그리고 신문이나 잡지의 잡문 기고자로 생계를 해결해야 했다. 그러나 그는 결코 미학주의적 태도와 생활방식을 포기하지 않았다.
벤야민의 사상은 간단하게 말해서 모방론에 있다. 물론 이렇게 말해버린다면 복잡하기 이를 데 없고 난해하기로 악명높은 그의 사상을 너무 단순화시키는 위험성이 있지만 나의 견해로 보자면 벤야민은 모방론을 빼놓고 말할 수가 없는 이론가이다. 그러나 정작 벤야민 본인은 「모방에 대하여」란 짧은 글을 제외하고 모방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언급한 적이 없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왜 그의 이론은 모방론을 전제하고 있는 것일까?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서양의 전근대 철학을 관통해왔던 하나의 전제를 이해해야 한다. 그 전제란 바로 인간이 신의 모방이라는 믿음이었다. 이런 인간관에 문제를 제기하는 시점이 포스트구조주의의 시기이며 이보다 앞서 이런 믿음을 의심하고 그 의심을 나름대로 해결하고자 했던 사람이 하이데거였다. 벤야민의 철학 역시 기본적으로 이런 의심에 근거하고 있었다.
1919년에 발표된 박사학위 논문 『독일 낭만주의에서 비평의 개념』에서 벤야민은 쉴레겔의 예술철학을 괴테를 옹호함으로써 비판한다. 쉴레겔은 예술작품은 불완전한 것이기 때문에 비평을 통해 완전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괴테는 예술작품이란 완성되는 순간 완전하지만 세월 속에서 그 완전성이 붕괴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절대적 초월성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끊임없이 초월성을 향한 인간의 의지는 일상성의 간섭을 받게 마련인 것이다. 따라서 하나의 예술작품은 완전성으로 인해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불완전성 다시 말해 원래는 완전했지만 이제는 불완전한 그 폐허성에 있다고 벤야민은 말한다. 이 지점에서 벤야민은 중세 이래로 유지되어 오던 서구 철학의 진리에 대한 통념을 전복한다. 벤야민 이전까지 서구 철학은 기본적으로 진리는 시간의 딸(Veritas, filia temporis)이란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다시 말해서 진리란 불변이며 지금 현란한 외양들이 그것을 뒤덮고 있다고 해도 언젠가 시간은 그 거짓의 베일을 걷어내고 진리를 보여줄 것이라는 믿음을 서구 철학은 줄곧 유지해왔던 것이다. 물론 이런 인식이 이성에 대한 절대적 믿음에 근거한 헤겔 철학을 서구에 등장하도록 만든 원동력이기도 했다.
벤야민은 진리란 시간이 지날수록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더욱 더 베일 속에 감추어지게 된다고 말한다. 이런 주장은 괴테가 말하는 아름다움의 폐허성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완전한 진리란 불가능한 것이라는 벤야민의 인식은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계몽의 변증법』이 등장하기 훨씬 전에 이미 구체화되었다는 점에서 상당히 주목할 만한 일이다. 베일 속에 가려진 진리가 시간적 진보를 수행하는 이성적 비판을 통해 드러날 것이라는 기존의 인식을 벤야민은 부정한다. 그가 판단하기에 비판 또는 비평이란 것은 이렇게 켜켜이 쌓인 베일을 벗겨내고 진리를 만천하에 드러내는 행위가 아니라 그 베일 속에 감추어진 진리의 윤곽을 통해 그 실체를 상상하는 행위였다. 따라서 벤야민에게 시간은 진리의 보증인이 아니라 진리의 훼손자인 것이다. 물론 이런 인식은 그가 미학주의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미학주의자들의 목표는 바로 자신의 작품들이 시간을 이겨내고 영원불멸의 그 무엇이 되는 것이었으니까.
벤야민은 원칙적으로 리얼리티에 대한 최초의 모방을 인정한다. 궁극적으로 그의 이론이 모방론에 근거했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최초의 모방은 나중에 끊임없이 시간의 간섭을 받아 훼손된다. 아름다움 그 자체는 이런 훼손된 폐허성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런 벤야민의 인식은 삶에 대한 그의 태도를 결정한다. 신의 모방물인 인간은 현실적 삶 속에서 훼손되고 황폐화된 불완전한 존재이다. 그러나 인간은 상처입은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다. 벤야민은 이런 관점에서 역사적 삶을 옹호했다. 그러나 비극에 대한 그의 태도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예술과 삶을 혼동하지 않았다. 도리어 예술이 삶으로부터 소외됨으로써 정치성을 가지는 것임을 입증하면서 벤야민은 모더니즘을 탈정치의 수렁에서 구원한다. 이 철학자의 자살은 이런 의미에서 소크라테스처럼 자신의 정치성을 지키기 위한 결단이었는지도 모른다. 삶으로부터 자신을 전격적으로 소외시킴으로써, 다시 말해서 죽음의 그늘에서 틈(caesura)을 발견하려는 노력의 소산이 그의 자살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이미 벤야민의 역할은 그가 온 몸의 삶으로 밀고 나갔던 그 지점에서 끝났다. 그의 입장에서 보자면 원칙적으로 아름다움이란 과거완료의 일이기에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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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2.06.28
  • 저작시기20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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