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생태시에 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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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독일의 생태시에 관한 연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연구의 목적 및 필요성

Ⅱ 독일의 생태시
1. 생태주의와 생태시
2. 물․공기․흙(지구)에 대한 시
2.1 물에 대한 시
2.2 공기에 대한 시들
2.3 지구(또는 흙)에 대한 시들
3. 아름답고, 새로운 세계 - 인지들, 체험들, 재앙들

Ⅲ 요약 및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있다.
그 여인은 먹었다.
배 한 개를
씻지 않은 채로 그 여인의
배가 부어올랐고
그 여인의 두 팔이
부어올랐으며 그 여인의
두 다리가 부어올랐다.
세포들이 마치 부스러기처럼
흩어져 떨어졌다
‘씻지 않은 채로’ ‘배 한 개’를 먹은 여인이 죽어가고 있다. 이러한 무서운 상황을 말로써 표현하다못해 떨어져나가는 세포의 모습으로 시의 끝을 흐트러뜨린다. 생산성의 호조를 위한 이러한 맹독성의 농약이 수없이 사용되고 있는 것은 오늘날 범세계적인 추세이다. 하지만 그러한 농약이 생산성을 높이는 것은 일시적이며 잠시 동안의 가시적인 효과였다는 것을 이제는 알게 되었다. 농약의 사용은 음식을 통해 직접적으로 그것을 먹는 사람들에게 뿐 아니라 토양에 까지 영향을 주고 결과적으로 볼 때에는 음식이 생명유지의 수단이 아니라 죽음의 수단이 되어가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농약의 무서움을 알면서도 수요 때문에 그 양의 조달을 위해서 농약을 써야하는 실정이다. 인간이 새로운 무엇인가를 만들어낸다는 것에는 그만큼의 대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인간은 인공의 힘이 가해지지 않은 자연스러운 모습 그대로의 ‘자연’에 대한 동경을 본능적으로 추구하는 것 같다. 우리가 과학화된 첨단의 시대에 살면서도 항상 푸른 녹지를 그리워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그러한 ‘자연’의 모습을 모사하려 애쓰는 것 같은 일들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 몇 세기 동안 그 진정한 모습을 자꾸만 잃어가고, 망가져가는 자연을 은폐할 생각에 그리고 그러한 자연을 되살리려는 노력 없이, 그저 ‘자연의 모습’만을 본딴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이다. 그렇게 모사된 자연은 인간에게 참된 자연을 못느끼게 할 뿐 아니라 더욱더 괴리감을 쌓아갈 뿐이다.
자연(Natur)
여기에 우리는 우리의 작은 집을 지을래요,
하고 친지들이 말한다.
그들의 땅에서는 암소들이 풀을 뜯고
클로버 사이에는 꽃들이 피어있다.
여기에는 모든 것이 아직도 아주 자연스러워요,
공기며, 숲이며, 언덕이며, 밭들이
이곳에 우리는 살게 될 거예요.... 하고 그들은 말한다.
그대들이 없다면
그것은 그렇게 남아 있을테지,
하고 나는 말한다.
루트비히 펠스 1946년 트로이히트링엔 출생, 시집 <돌진> <모든 것은 계속된다.> <배들의 노래에 대하여>
의 시 이다. 평상시에 환경문제에 대하여 심각히 여기지 않던 사람이라도 이러한 시의 상황에 동감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왜냐하면 도시의 삶속에서는 그 누구라도 자연은 인공이 가해지지 않을 때 가장 완전하다는 것을 그 간의 삶의 체험에서 알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이다. 우리는 완전한 인공에 싸여서 살고 있다. 풀한 포기 자연인 것을 찾아보기 힘든 아파트와 높은 빌딩 속에서, 시들어져가는 나무대신 조화, 인조목들이 버젓이 걸려있는 세상에서 우리는 이러한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자연을 끊임없이 추구하지만 지금과 같은 눈 가리고 아웅 식의 상황에서는 인간과 자연은 계속 멀어져 갈뿐이다.
Ⅲ 요약 및 결론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생태시는 환경오염으로 인한 생태계 자연의 파괴는 하나의 현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이를 일어나게한 ‘인간성’ 자체의 문제로 더 깊이 들어감으로 인간의 각성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즉 환경오염은 궁극적으로 자연과 인간이 자연과 격리되었을 때 발생한 것이고 그 문제는 지구생태계의 망가짐에 따른 가시적인 멸망의 문제 뿐만 아니라 인간다움의 상실의 문제로 이어진다. 현대의 생명 경시의 문제-인간관계의 피폐도 이러한 맥락에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인간성의 문제는 인공적인 것으로 회복 불가능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특히 마지막 주제였던 적막과 파괴, 창조의 부정, 극복될 수 없는 멸망 등을 뜻하는 ‘묵시록’이란 말은 그 자체가 이제는 헤어날 수 없는 파괴-자연, 인간성-의 길에 들어선 현대사회의 모습에 대한 가장 적절한 단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인간 스스로가 불러온 재앙인 것이다. 이제는 그러한 이야기가 단지 말로만 끝나는 시대는 지났다. 신성의 부정에서 야기된 인간의 자만으로 인해 이루어진 세계가 무너져가고 있다. 여기서의 신성의 부정이란 자연을 존중하는 삶에서 벗어난 인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주변의 생명들과의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지금과 같은 삶은 결국 인간 서로서로에게까지 그 영향을 미쳐서 인간의 삶 자체를 메마르게 만들고 있다. 인간의 인성자체가 자연으로부터 멀어지고 예전에 가지고 있던 상호 존중, 생명의 가치 인식등의 자연적 질서를 점점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즉 자연을 파괴하여왔듯이 그러한 생각과 행동은 인간 서로의 관계 자체도 그렇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실로 인간이 인간다움을 상실해가고, 도덕성이 무너지는 등 현대인의 정신적인 문제들이 인간과 자연과의 괴리 때문에 일어났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어느 시대에나 멸망에 대한 예언들은 항상 있어왔던 것 같다. 인간은 자신이 한 일에 대하여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하여 생각한 것이다. 특히 인간이 스스로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일에 대하여서는 자각을 하고 그러한 일을 저지른 것에 대한 반성과 이로인한 부정적인 결과들에 대해서 두려움을 갖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생태시들이 갖는 의미는 인간의 과거의 잘못됨을 지적하고 앞으로 멸망할 것으로 단정지어 수동적 비관적 회의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이제는 그러한 오류를 범하지 말며, 과거에 저지를 일에 대한 반성과 함께 이를 시정해 나가야 함을 강도높게 다그치는 것일 것이다. 또한 그와 함께 지금까지의 미완성적인, 너무나도 이기적이고 자만으로 가득차있는 이 시대의 인간상을 버리고 새로운 인간의 출현을 기대해야한다는 반성적인 의미도 들어있는 것 같다. 즉 목적은 인간성의 변화인 것이다. 아무리 환경과학이 발전을 한다해도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의식이 변화되지 않는 한 인류 멸망의 길은 항상 열려 있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요하네스 보브롭스키: 역사와 자연의 문제 중심, 송용구
현대시와 생태주의, 송용구
녹색의 저항 - 독일의 생태시, 송용구
생태시와 저항의식, 송용구
에코토피아를 향한 생명 시학, 송용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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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8.10.25
  • 저작시기200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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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487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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