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기독교사 연구] 중국 경교의 유입과 성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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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기독교사 연구] 중국 경교의 유입과 성쇠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원을 받으며 성장할 수 있었다. 또한 국가의 지원을 받음으로 상류층에게도 쉽게 선교할 수 있었다.
또한 안과, 내과, 외과, 예방학에 걸쳐 의술에 정통한 선교사들을 동원함으로 다방면으로 백성들에게 도움을 주는 실용적이고 광범위한 포교활동을 펼쳤다. 이러한 방법은 흡사 현재의 우리의 의료선교와도 많은 부분 비슷하다고 느꼈으며 그 당시 이런 방법으로 선교활동 했다는 사실에 매우 놀라웠다.
하지만 이러한 선교활동에도 불구하고 경교가 쇠퇴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또한 선교방법에서 찾을 수 있었다.
경교는 문화적 배경을 극복하기 위해 철저히 현지화 하는 타협적 전략을 취함으로써 큰 거부감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그러나 경교가 유리해지도록 했던 이와 같은 방책들은 후에 혼란시기에는 오히려 불리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경교가 취했던 현지화 전략은 결과적으로 경교의 ‘토착화’를 방해했다. 경교는 중국 민중의 정신세계 속에 경교만의 자리를 가지고 있지 않았고 외국인들에 의해 잘 유지되는 것처럼 보였지만 회창금교 사건 이후 급속도로 쇠퇴했다.
그리고 외국인 선교사들이 의료선교와 구제 사업으로 활발하게 포교활동을 하는 반면 현지인 선교사 배양에는 관심을 쏟지 않았다. 그러므로 경교가 흥한 이후에도 자립적인 종교의 형태를 갖추지 못하였고 또한 페르시아가 멸망하면서 모교회 자원이 중단되어 외국인 선교사들의 활동이 어려워졌음에도 불구하고 배양된 현지인 사역자 부족으로 경교가 더 이상 성행하지 못하였다.
마지막으로 당대 경교와 근대 한국의 기독교는 큰 차이를 보인다. 경교는 외국인에 의해 전래된 후 황실이라는 안전한 기반을 바탕으로 시작한 반면, 한국 기독교는 외국인에 의해 복음을 받아들였지만 현지인에 의해 학문적으로 받아들이고 민중을 바탕으로 자리 잡아 정부의 대대적인 박해를 받는 등 불안하게 시작한다. 그러나 한국 기독교는 기독교 본래의 뚜렷한 정체성을 바탕으로 민중에 기반하고 있었기 때문에 많은 어려움에도 무너지지 않았다. 경교의 성쇠과정을 통해 외래종교가 대중적인 신앙으로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민중의 마음에 자리 잡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참고문헌
사무엘 H. 저, 김인수 역, 「아시아 기독교회사」1권, 장로회신학대학교출판부, 1996
손윤탁, \"중국의 경교 전래\", 선교운동사, 2001
강인규, “당대의 경교” , 중국선교연구원
두갈, “당대 경교를 찾아서”, 동아시아를 잇는 여행기, 2011
  • 가격1,200
  • 페이지수6페이지
  • 등록일2018.11.19
  • 저작시기2018.1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07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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