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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직신학 창조론 페이퍼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들어가는 말

Ⅱ. 선한 창조
1. 기독교 신앙과 생태학적 위기
1) 기독교 신앙의 생태적 위기
2) 생태계 위기의 원인과 신학
3) 자연으로부터 신학의 퇴거

2. 창조에 대한 성경 증언의 재해석
1) 성경 전체 흐름의 재해석
2) 창세기의 재해석

3. 창조와 진화
1) 다양한 차원의 진화와 신학의 관계
2) 진화의 차원

4. 창조론 주제의 재고찰
1) 하나님의 철저한 타자성, 초월성, 주권성
2) 모든 존재는 하나님께 의존
3) 모든 우연성, 유한성, 한계성에도 불구하고 창조는 선함
4) 모든 피조된 존재의 공존성과 상호 의존성
5) 창조의 목적을 가지고, 창조된 세상도 역동적이고 목적 지향적

5. 삼위일체, 창조, 생태학
1) 생태학 문헌에 접근법
2) 삼위일체적 창조론

6. 창조의 모델들
1) 창조의 유비
2) 안식일

7. 창조론과 현대 과학
1) 과학과 종교 논쟁
2) 과학과 종교의 대화 필요성
3) 이안 바버와 존 호트의 유형
4) 밀리오리의 원리
5) 자연에 대한 신학
6) 과학과 신학의 대화의 주요 주제들
7) 과학과 성서의 대화

8. 생태-미학적 창조론
1) 좋음, תוב
2) 창조의 타락, 추(醜)
3) 창조와 지각의 아름다움, 안식

Ⅲ. 인간론
1. 인간이란 무엇인가?
1) 신비의 인간
2) 실존의 인간

2.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창조된 인간
1) 하나님의 형상
2) 관계적 인간
3) 창조된 인간

3. 미적 인간, 다윗
1) 정치적 인간
2) 미적 인간
3) 평화의 왕 예수. 다윗의 아들

4. 타락한 인간
1) 죄의 해석학적 방향
2) 원죄의 근본 물음 – 하나님과의 관계성에서
3) 인간과의 관계성에서 - 피조물간의 억압적 위계질서 형성
4) 미래의 관계성에서

Ⅳ. 하나님의 섭리와 악의 신비
1. 섭리 신앙

2. 신학 전통에서의 섭리

3. 악의 문제
1) 자연악
2) 도덕악
3) 역사적인 악
4) 구조악

4. 최근의 신정론
1) 항의의 신정론
2) 과정신학 신정론
3) 인격 형성의 신정론
4) 해방신학의 신정론

5. 삼위일체 하나님과 인간의 고통

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인간
1. 믿음
2. 사랑
3. 소망

Ⅵ. 나가는 말

본문내용

부터 자유롭게 된다.
2. 사랑
사랑이란 타자와 함께하고 타자를 위한 인간이 되는 새로운 길을 의미한다. 예수 안에 최고로 구현되고, 성령에 의해 우리 안에 강화된다. 기독교의 사랑은 자유롭게 자신을 내어준다. 묵종과는 다르며, 자기파괴나 수동적인 태도도 아니다. 심지어 값비싼 희생을 치르면서도 연대감을 이루며 사는 삶을 지향한다. 사랑의 존재라는 것은 지배가 아니라 타자와 함께 연대하는 것이고 온전한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다.
3. 소망(희망)
하나님의 미래를 위한 새로운 자유를 의미한다. 삼위일체 적으로 해석한다면, 하나님의 은혜의 약속이 성령의 권능에 의해 예수 안에 성취됨을 기대하는 것이다. 소망도 자유로운 행동으로서 창조적 상상력으로 더 정의로운 사회를 꿈꾸게 한다. 기독교의 소망은 공상적이지 않다. 그것은 결코 정의와 화해와 평화를 위해 끈질기게 투쟁하게 하고, 오만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궁극적인 승리를 확신하는 것이다.
Ⅵ. 나가는 말
1. 물리화학의 영역 속에서 하나님은 무슨 일을 하셨나?
물리화학적 세계는 1차원의 세계이다. 물리세계는 mass이기 전에 energy로 표현되어야 한다. energy의 기원을 찾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창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리세계에서 진화하여 생명유기체가 되기 위해서는 mass만 존재해서는 불가능하고, mass를 움직이게 할 수 있는 energy가 필요하다. 모든 생명체는 물질의 유기성으로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에 energy라는 개념이 빠질 수 없다. 만약 물질 자체가 에너지를 발산한다고 하면 물질은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유기하고 움직일 수 없다. 하지만 그 에너지 속에 성령의 역사가 존재함으로써 물질들이 서로 유기적인 연합을 할 수 있고 그로 인해 모든 생명체들이 지금까지도 살아서 활동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2. 종교와 과학과의 대화에서 나의 방법
이안 바버의 종교와 과학과의 대화에서 자연에 대한 신학을 주장하는데, 나의 의견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이안 바버가 말한 종교를 구분하는 네 가지 방법 중에서 대화에 초점을 맞추고 싶다. 종교와 과학은 엄연히 자신들이 담당하고 있는 분야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그 둘 사이의 완전한 통합이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대화를 통한 서로간의 조율과 상호보완적인 관계로, 대화를 통한 발전이 더 올바른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바버의 ‘자연에 대한 신학’을 더 완전하게 해주는 것이 존 호트의 ‘지지’의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호트의 견해는 종교가 과학의 의견을 지지해주는 것이라고 표현했는데, 나는 ‘상호지지’라는 표현을 쓰고 싶다. 종교가 심오한 수준에서 과학에 기여할 수도 있고, 과학이 종교의 주장을 더 강하게 만들어 주거나, 올바른 견해를 갖게 도와주도록 ‘지지’할 수 있다고 바라보기 때문에, ‘상호’라는 개념을 덧붙여서 설명하는 것이 종교와 과학과의 관계를 명확히 해준다고 생각한다.
3. 동물의 약육강식의 세계를 미와 추로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세계가 파괴되고 오염되는 것을 ‘추’라고 부른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인간을 제외한 다른 생물체들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모든 행동을 하는 것처럼 보여서 자연을 파괴한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다른 생물체들은 이른바 자연의 섭리에 맞춰서 행동하는 동물적이고, 원초적이고, 하나님의 자연 질서에 따른 행동이다. 창조의 타락인 ’추’라는 개념은 일반적인 의미의 ‘추하다’와 구분되어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동물이 죽은 것을 보고 ‘추하다’라고 할 수 있지만 그것은 창조세계의 미학을 벗어난 결과가 아니다. 오히려 인간의 죄 성을 통하여 자연을 소유하려하고, 도구화 시키고, 지배하려고 하는 것에서 창조의 타락인 ‘추’가 나타나는 것이다. 이 ‘추’의 개념은 기본적인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것에서 비롯된다.
4. 교회가 자본주의에 앞장서면서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는데, 그런 교회가 지금 생태신학으로 어떻게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인가?
현재 특정교회가 자연을 파괴하는 자본주의에 앞장서면서 생태신학을 주장한다면, 그 교회의 주장은 뜬구름 잡는 주장이 될 것이다. 교회가 자본주의와 상반된 길을 걷는다는 것은 사회학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자본을 이용한 교회 운영을 하되, 자본을 사용할 때 친환경적인 노력을 필요로 해야 한다. 마치 유기농작물이 인정을 받기 위해서 몇 년간 농약을 뿌리지 않고 재배를 한 뒤에 토양검사를 받고 유기농작물 마크를 부여받듯이, 교회도 오랫동안 친환경적인 활동을 통해서 사회적인 인정을 받은 후에야 교회와 자연환경, 신앙과 자연환경이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생태신학을 주장하면서 나타내야 할 것이다. 이때에 교회에서
이야기하는 생태신학이 사람과 사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다.
5. 신정론
신정론에 대한 기본 질문인 ‘하나님은 선하신 분인데,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에는 왜 악이 존재하는가?’에 대한 풀이를 ‘자유의지’로 풀어내 보려 한다.
웨슬리에 의하면 인간의 자유의지가 작동될 수 있는 근거는 선행은총이다. 하나님은 피조물을 만들 때에 자유를 허락하셨다. 피조물들에 의한 세상의 악이 하나님의 선하심에 영향을 미칠 수는 없다. 물론 하나님은 피조물들이 악한 행위를 하지 못하게 하실 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이러한 방식의 통치는 하나님의 통치의 모습과는 맞지 않는다. 하나님은 세상과 사귀고 배려하면서 통치하는 미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피조물의 악한 행위를 그들의 자유로 여기시며 안타까워하실 뿐이다. 하나님은 피조물을 존중해주는 분이다. 특히 인간에게는 인격을 존중해 주시며 그들이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게 하시는 분이다.
따라서 세상이 악하다고 하나님의 선이 부정될 수 없으며, 오히려 하나님의 선으로 창조한 세계는 선으로 시작하였지만, 인간의 죄의 타락으로 파괴되고 있을 뿐이다. 다행스럽게도 죄인인 인간이 회개를 통해서 성화의 길에 들어설 수 있다. 인간의 계속되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회개가 세상의 악을 줄이고, 결국에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드러내는 선두주자가 될 수 있는 희망이 될 것이다. 이것을 자유의지의 신정론이라고 명명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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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9.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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