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가 정의 특징 형식및 향가 작품분석 및 문학적가치 분석과 나의의견정리 - 향가 연구레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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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향가 정의 특징 형식및 향가 작품분석 및 문학적가치 분석과 나의의견정리 - 향가 연구레포트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향가의 정의

2. 향가의 특징

3. 향가의 형식

4. 향가의 역사 (시작과 소멸까지)

5. 향가의 문학적 가치

6. 향가의 작품세계

7. 향가 대표 작품소개
(1) 서동요
(2) 혜성가
(3) 원왕생가
(4) 처용가

8. 결론 및 나의의견

<참고문헌>

본문내용

80) 때 광덕(廣德)이 지은 것이다. 문무왕대에 사문(沙門, 훗날 불가에 귀해 수도생활을 하는 사람)에 광덕과 엄장(嚴莊)이 있었는데 두 사람은 친구가 되어 먼저 안양(安養, 극락)에 가는 자는 반드시 알려주기로 약속을 한다. 광덕은 분황사(芬皇寺) 서편마을에 은거하며 미투리(신발)을 삼아 생업하며 처자를 데리고 살았으며 염장은 남악(南岳, 경주 변두리) 암자에서 화정에 씨를 심었다. 염장은 달마의 방식으로 수련을 쌓고 광덕은 혼인한 스님이었던 것이다.
그러다 광덕이 먼저 서방세계로 가게 되자, 엄장은 광덕의 해골을 거두어 장사를 지내고 그의 아내와 함께 살게 된다. 이윽고 밤이 되어 엄장이 관계를 맺으려 하니, 광덕의 아내는 남편과 동거하는 10년 동안 하루도 잠자리를 같이 한 적이 없다고 거부한다. 광덕과 아내는 수도의 한 방편으로 결혼을 했고, 혼인은 욕망과 욕구를 인내하고 거부하기 위한 수련의 일종이었던 것이다.
이에 부끄러움을 느낀 엄장은 원효법사에게 나아가 갈 길을 구하니 원효는 삽관법(揷觀法)을 지어 지고하였다. 후에 엄장 역시 관법을 닦아 서방으로 오른다. 삽관법은 원효의 본전(本傳)과 해동승전(海東僧傳)에도 실려 있다.
향가의 대략적인 내용은 달에게 무량수불 앞에 자신을 말을 가져다 전해달라는 말과 함께 다짐(믿음)이 깊은 부처님께 두 손 모아 사뢰길 원왕생, 즉 원컨대 다시 (서방세계로)가고자 합니다라는 뜻을 전한다. 그리고 그를 그리는(그리워하는) 이가 있다고 말하며 혹시 자신을 끼쳐두고(버려두고) 사십팔 대원을 이뤄 이 세계를 넘어선 또 다른 세계로 가실까 염려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 노래는 <도천수관음가 禱千手觀音歌>와 더불어 신라시대 기원가(祈願歌), 즉 기도하는 노래의 전형을 보여 준다. 기원가의 어법은 예배대상에 대한 청원이나 탄원 및 기구(祈求), 혹은 고백의 어법이 중심이 되는데, 이 작품도 바로 이러한 어법구조로 짜여 있다.
덧붙여 신라인의 세계관이 불교와 샤머니즘의 혼합 양상을 보이는 것처럼, 이 노래 또한 달이라는 중개자를 통하여 주술적 어법을 빌려 불교의 ‘무량수불’에게 정토왕생 희원하고 있다. 무량수불은 ‘미타’로 나무아미타불을 뜻한다. 이는 죽은 후 서방세계에 가려고 부르는 사후를 관장하는 보살이기 때문에 수도승들이 모시는 부처이다.
원왕생가는 홀로 불법(관법)을 닦으며 개인적 해탈을 구하는 기원적 서정가요로서도 주목받지만, 신라의 귀족불교가 그 한계를 넘어서 민중들에게 아미타신앙으로 확산되어 대중 불교로 전환되는 시대적 상황 또한 내포하고 있다.
(4) 처용가
처용가는 헌강왕(875~885)때의 향가로 그 해석과 내용이 너무 다양하고 잘 알려져 있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은 생략한다. 처용가는 진성여왕 통치기인 888년에 삼대목으로 향가를 집대성하기 직전에 쓰인 8구체 작품으로 향가의 쇠퇴기에 등장했다. 간단히 내용을 보면 처용이 밤늦게 노닐다가 집에 들어와 보니 가로리(다리가) 넷이었다. 둘은 내 것이고 둘은 누구의 것인가, 본디 내 것 이다만 앗았음을 어찌하리오 라는 내용으로, 역신(병을 주관하는 신)이 집에 들어 아내를 범하고 노여워하지 않는 처용에 감동하여 앞으로 처용의 얼굴이 그려진 집 문은 들지 않겠다고 말한다.
뒤에 호국의미의 제사를 세군데서 지내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는 나라의 혼란이 여전하였음을 보여주며, 처용이란 인물도 호국을 위해 끌어들인 형태라고 보인다. 처용의 정체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한데, 실존 인물로 호족이 임금을 누르던 시기라 호족인 처용을 볼보로 잡아왔다(고려의 기인제도)는 설과 처용이 무슬림으로 동서양의 교류를 보여주며 이슬람 상인으로써 신라와 교역을 위해 들어왔다는 설. 불교적 인물(용-불법수호)로 호국 불교를 지향하는 중이라는 설이 있다.
제일 강력한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은 처용이 ‘민속학적’인물이라는 것인데, 이는 곧 처용이 무당임을 의미한다. 처용이 모시던 ‘몸주’가 동해의 용신으로 보자면, 후에 고려속요에 수용된 처용가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 할 수 있다. 다만 이렇게 역신을 몰아내는 행위가 이루어 진 것이 몽고가 침입했던 시기이므로 이는 나라의 위험을 몰아내려는 행위로도 볼 수 있다.
8. 결론 및 나의의견
향가는 주로 승려계층에 의해 지어진 것으로 불교적 세계관을 기반으로 한다. 대부분의 향가가 불교 관련 저자에 의해 지어졌음은 물론 향가에서 불교적인 내용을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향가의 특성에 의문스러운 점이 있다. 그 이유는 신라에 불교가 들어오는 것이 매우 험난했다는 점 때문이다. 신라 사회에는 토속 신앙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어 불교에 대해 보수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향가의 대부분은 불교적 세계관을 담고 있는데 어떻게 된 것일까? 의문이 든다. 어쨌든 이런 점에서 본다면 향가를 화랑적 세계관이 담긴 문학으로 또는 무속적 세계관이 담긴 문학으로 접근하는 것도 틀린 방법이 아닐 것이다. 결국 이 세 가지의 특성 중 어느 것이 옳고 그르다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만 주의해야할 것은 명확하게 그 특성을 규정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 문제집에서는 향가의 특성 자체를 불교적이라 하였는데 이는 옳지 않다고 본다. 불교적인 세계관이 우세한 것은 사실이지만 다른 가능성을 배제한 채 명확히 규정하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편협한 사고로 이끈다.
국문시가의 구도에서는 국문시가를 높은 갈래와 낮은 갈래로 분류하였다. 높은 갈래는 10구체 향가, 시조 등으로 지식인들이 향유하던 갈래라고 말할 수 있고 낮은 갈래는 속요민요, 사설시조 등으로 민중들이 향유하던 갈래이다. 높고 낮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이해는 가지만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단어를 이용하여 국문시가를 분류했다는 점이다. 문학에 있어서 높고 낮음이 있을까? 있다면 무엇으로 기준을 삼을 수 있을까? 이 분류 체계는 다분히 위계적인 사상을 품고 있다. 정형화되어 있다고 해서 더 높은 것이 아니듯 동등한 분류 체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참고문헌>
향가의 문학적 해석 - 최철
향가의 율격분석 - 신재홍
향가문학의 이론과 해설 - 황패강
향가해석 - 홍기문
신라향가연구 - 김정주
신라향가론 - 김승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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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9.08.09
  • 저작시기20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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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1108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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