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가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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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향가의 정의 ․ 기원
- 장르
- 향가의 표기
- 향가의 형식 (4,8,10)
- 작자층
- 향가 내용의 특징
- 향가의 수사적 특징
- 사상적 기반과 성격
- 마무리

본문내용

이나 한계, 불만과 고뇌 등을 극복함으로써 숭고미를 드러내는 경우가 흔하다.
이를테면, 〈혜성가〉와 〈도솔가〉는 주술신앙을 바탕으로 ‘주술적 숭고’를 구현하며, 〈원왕생가〉·〈제망매가〉·〈안민가〉·〈도천수관음가〉·〈보현십원가〉등은 불교의 제신앙을 바탕으로 ‘불교적 숭고’를 구현한다.
그러나 이 두 가지는 확연히 구분되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무불습합의 문화구조에 따라 주술·종교의 동질적인 융합을 보일 경우가 많다. 〈풍요〉·〈모죽지랑가〉·〈찬기파랑가〉·〈원가〉의 경우는 현실의 고뇌와 아픔이 주술 혹은 종교적 신앙을 바탕으로 한 숭고성에 의하여 다소 제어, 조정되고 있어 파멸에까지 이르지는 않으나 비극미를 표층에 드러내고 있다.
〈우적가〉와 〈처용가〉는 신라 후기에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풍미하기 시작한 선불교의 양면적 정신원리를 반영함으로써 숭고미와 희극미를 동시에 구현하고 있다. 〈서동요〉와 〈헌화가〉는 민중의 발랄한 감정에 기초한 우아미를 구현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주술 혹은 불교신앙을 바탕으로 한 숭고성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다.
전체적으로 볼 때 향가는 숭고미가 가장 핵심적인 미의식으로 나타나며, 이를 바탕으로 하여 약간의 비극미(비장미)·우아미·희극미(골계미)가 함께 드러나는 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어학적 가치와 해독〕
향가는 문학사적으로 중요한 자료일 뿐만 아니라 고대 국어 연구에 있어서도 가장 중심적인 자료가 된다. 사서들에 보이는 인명이나 지명의 표기에서 시작하여 서기체(誓記體)나 이두문(吏讀文)으로 된 기록들이 없는 바 아니나, 그것들은 단편적인 어휘기록에 그치거나 변칙적인 반한문적 기록들이고 완전한 우리말 문장으로 된 자료로는 오직 향가가 있을 뿐이다.
다만, 향가는 그 표기방법이 한자의 새김(釋, 訓)과 음을 이용하여 우리말을 적는 일종의 차자표기방법(借字表記方法)인 향찰(鄕札)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해독(解讀)을 거치지 않고는 어학적 연구자료로도 이용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문학적 이해를 위한 문면의 확보도 될 수 없다는 데에 어려움이 있는데, 반세기 이상에 걸친 여러 연구자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만족할 만한 단계에까지는 도달하고 있지 못한 것이 현재의 실정이다.
19세기말까지는 향가를 해독하려는 시도가 있었다는 증좌를 발견할 수 없고, 20세기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해독에의 길이 열리게 되는데, 이 단계의 작업이 주로 일본인 학자들에 의하여 영위되었다는 것도 눈에 띄는 일 가운데 하나이다.
초창기의 향가 해독자들이 다투어 〈처용가〉를 해독의 대상으로 선택한 것은 고려가요 가운데 가명과 내용이 비슷한 노래가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겠으며, 그 다음에 〈풍요〉나 〈서동요〉같이 비교적 길이가 짧고 내용이 간단해 보이는 것들에 관심이 퍼져간 것도 이해할 만한 일이었다.
향가 25수 전체에 대한 최초의 해독은 오구라 신페이(小倉進平)의 ≪향가 및 이두의 연구 鄕歌及び吏讀の硏究≫(1929)를 효시로 한다. 비록, 〈우적가〉 같은 노래에 있어 일부 해독을 유보한 부분이 있기는 하나 25수 전체를 읽어냈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업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오늘날의 안목에서 보면 상당한 허점이나 결함이 발견되고, 그가 해독의 기준으로 제시한 원칙들이 잘 지켜져 있지도 않은 것을 볼 수 있지만, 당시의 사람들, 특히 우리 나라의 식자들을 경탄시키기에 충분한 업적이었다.
오구라의 저작에 자극을 받고 각고 끝에 나온 양주동(梁柱東)의 ≪조선고가연구 朝鮮古歌硏究≫(1942)는 오구라의 경지를 넘어서서 향가해독을 본궤도에 올려놓았다. 이 책이 오랫동안 향가 해독의 정본(定本)으로서의 권위를 유지하여 왔다는 것은 향가에 대한 어학적·문학적 연구의 대부분이 그의 해독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입증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해독이 성공적일 수 있었던 이유는 해박한 지식과 광범위한 문헌 섭렵 및 강인한 천착 등의 종합적 결과이지만, 시작(詩作)의 경력을 지닌 문학적 직관의 공로도 간과될 수 없을 것이다.
양주동 이후의 해독작업은 지헌영(池憲英)의 ≪향가여요신석 鄕歌麗謠新釋≫(1947), 이탁(李鐸)의 ≪국어학논고 國語學論攷≫(1958), 김선기(金善琪)의 〈향가의 새로운 풀이〉(現代文學 145∼250호 사이 16회에 걸쳐 연재), 서재극(徐在克)의 ≪신라향가(新羅鄕歌)의 어휘연구(語彙硏究)≫(1974), 김준영(金俊榮)의 ≪향가문학 鄕歌文學≫(1979), 김완진(金完鎭)의 ≪향가해독법연구 鄕歌解讀法硏究≫(1980), 정창일(鄭昌一)의 ≪향가신연구 鄕歌新硏究≫(1987), 양희철(楊熙喆)의 ≪고려향가연구 高麗鄕歌硏究≫(1988), 김선기의 ≪엣적 노래의 새풀이 鄕歌新釋≫(1993), 유창균(兪昌均)의 ≪향가비해 鄕歌批解≫(1994), 강길운(姜吉云)의 ≪향가신해독연구 鄕歌新解讀硏究≫(1995)로 이어져 오며, 해독의 원칙과 실제 양면에 걸친 발전을 보고 있고, 그 결과에 따라 고대국어의 특징들도 어느 정도 부각되고 있으나, 더 많은 것이 앞으로의 연구에 기대된다 할 것이다.
한편, 북한 문헌의 개방에 따라 홍기문의 ≪향가해석≫(1956)과 정렬모의 ≪향가연구≫(1965)의 존재가 알려져 연구에 참조되고 있다.
- 마무리
이상 개괄해 본 것처럼 향가의 소멸시기, 향가가 행해지던 지역적인 범위, 향가의 총작품수(失傳작품 포함) 등에는 여러 이설과 의문이 많으나, 향찰이 발명되기 이전의 작품은 표기문자가 없어서 구전(口傳)되다가 소멸하였거나, 또는 향찰로 표기되다가도 소멸되어 전승되지 못했던 듯하다. 특히 오늘날 이름만 전해지는 향가집(鄕歌集) 《삼대목(三代目)》이 실전되었음은 유감스러운 일이나 현전하는 25수야말로 국문학사상 의의가 클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신라문학에 접할 수 있고, 당대의 문학적 생활을 엿볼 수 있음은 다행한 일이다. 또 향가는 훈민정음 이전의 고어 연구를 위해서도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물론, 향가가 훈민정음 이전의 표기형태인 향찰이나 이두로 기록된 작품이므로, 그 해독에 어려움이 따르고 각각 해독자에 따라 서로 다른 해석이 나온다는 점도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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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8.01.22
  • 저작시기20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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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448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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