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문화유적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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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이탈리아 문화유적 4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갈라져 사는 우리의 현대 도시보다 훨씬 진보한 것이다.
사랑하고 꿈꾸고 즐기기에 어울리는 도시, 이미 폼페이는‘자유로운 공기’를 가진 도시였다.
2. 소렌토
나폴리만(灣)을 사이에 두고 나폴리와 마주하며, 살레르노에서 35㎞ 떨어진 지점으로, 배후에 오렌지 · 레몬 · 포도 등을 재배하는 과수원이 펼쳐진 산지를 등진 경승지로, 《돌아오라 소렌토로》 등의 나폴리 민요로 알려진 곳이다. 포도주 · 올리브유가 생산된다. 그리스인에 의해 건설된 것으로 추정되며, 고대 로마제국 시대에는 수렌툼이라는 휴양지였다. 7세기에는 자치 공작령의 수도였으며, 1137년에 노르만족(族)에 정복당해 시칠리아 왕국에 편입되었다. 거리의 중심은 타소 광장(廣場)이며, 1544년 이곳에서 태어난 시인 토르쿠아토 타소(Torquato Tasso)의 기념비가 있다. 시내에는 15세기에 재건된 성당이 있고, 14세기에 건축된 아름다운 아시시의 성(聖) 프란체스코 수도원과 캄파니아의 장식미술품, 중세의 조각 · 그림 및 고전양식의 유물 등이 소장되어 있는 코레알레디테라노바 박물관이 있다. 나폴리와의 사이에는 열차 및 연락선이 왕래하고, 나폴리만의 또 하나의 관광지인 카프리섬과도 연락선이 왕래한다. 거리 주변에는 로마제국 시대의 유적이 많다.
* 돌아오라 소렌토로
<오. 솔레미오>를 나폴레타나의 왕이라고 하면 이 곡은 필경 여왕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1902년의 피에디그로타 가요제에서 발표된 명곡이다. 작사는 다비데 쿠르티스(D. Curtis), 작곡은 에르네스토 데 쿠르티스. 이 두 사람은 형제로서 에르네스토는 1875년 10월 4일 나폴리에서 태어나 18세 때 <아 프리마보타>라는 노래를 발표하고 첫 성공을 거두었다. 이 <돌아오라 소렌토로>는 그가 27세 때의 작품이다. 그 밖에도 많은 명곡을 쓰고 37년에 세상을 떠났다. 소렌토는 나폴리어로 수리엔토라고 하며, 만을 사이에 두고 나폴리의 대안에 있는 소렌토 반도의 어항이다. 이 도시도 경치 좋은 피서, 피한지로 알려져 있는데, 이것은 그 아름다움을 찬양하면서, 사라져 가는 연인에게 호소하는 노래이다.
- 돌아오라 소렌토로의 가사
보세요, 바다는 얼마나 아름다운가요. 거기에는 많은 감상이 감돌고 있네.
그것은 마치 당신의 부드러운 억양처럼 내게 꿈을 꾸게 한다.
나는 느끼네, 정원에서 피어오르는 오렌지의 향기를.
사랑에 두근거리는 마음에 그 향기는 비할 데가 없지요.
당신은 말해요. <나는 떠납니다. 안녕히.>라고.
당신은 내 마음을 이 사랑의 땅에 남긴 채 멀어져 가는가.
하지만 나에게서 달아나지 말아줘요. 나를 더 이상 괴롭히지 말아주오.
소렌토로 돌아와요. 내 마음을 아프게
<소렌토의 로마시대 유적>
3. 나폴리
3-1. 개관
나폴리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가운데 하나로서, 오늘날의 도시 구조에는 그 도시의 유구한 역사가 간직되어 있다. 나폴리는 거리의 패턴, 여러 시대로부터 전해지는 수많은 역사적 건물들, 나폴리 만에 자리 잡은 입지 조건 등으로 유례없이 뛰어난 보편적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그것은 유럽뿐 아니라 세계 각지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것이었다. 나폴리의 중요성 가운데 상당 부분은 도시 구조에 기인하며, 무려 2,500년의 도시 성장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스 식민 도시로서의 모습은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발굴을 통해 중요한 고고학적 발견이 이루어졌다. 식민 시대에 만들어진 원래의 성벽 가운데 3개의 구역은 북서쪽에서 볼 수 있다. 로마 시대의 유적은 대규모의 극장, 묘지, 지하 묘지 등 훨씬 더 구체적이다. 나폴리에서 가장 오래 지역의 거리 구획은 이 같은 고전적인 기원에 힘입은 바가 크다. 서로마 제국의 멸망 이후의 시기에는 교회 건물이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했으며, 성벽 바깥쪽의 산 젠나로 교회), 산 조르조 마조레 교회, 성조반니 마조레 교회 등은 4세기 및 5세기 건축의 유물이다. 14세기에 세워진 대성당의 산타 레스티투타 예배당은 나폴리 최초의 기독교 교회로 알려져 있다. 카스텔 델로보 성은 노르만 시대로부터 전해지는 가장 구체적인 유적이다. 로마 공화정의 정치가였던 루키우스 리키니우스 루쿨루스의 저택이 있던 자리에 요새 겸 수도원으로 세워진 그 건물은 여러 차례에 걸쳐 재건축이 이루어졌으며, 17세기 말에 이르러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노르만 · 슈바벤 시대에 지어진 도시는 거의 고전적 성벽 내부에 남아 있었지만, 앙주 왕가가 들어서자 마을 외곽이나 주변 마을로 흡수되거나 팽창하기 시작했다. 이 시대에 서양 예술과 건축이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프랑스 고딕 양식이 국내의 건축과 종교 예술 분야에 만연했다. 앙주 왕가 기간 동안에 새로운 성당, 산 로렌초 마조레 성당, 산 도미니코 마조레, 산타키아라와 그 밖의 교회 건축물, 그리고 누오보 성, 타란토 왕자의 카푸아노 성과 궁전과 같은 일반 건축물들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프랑스 남부의 강한 영향을 받아 나폴리에는 정교한 프로방스식 고딕 양식의 건축물들이 많이 건축되었다. 아라곤 왕조가 즉위하자 많은 건물이 지어졌으며 재건축이 시작되었다. 도시의 성벽을 새로 단장하고 보수 개선하였다. 나폴리의 르네상스 유산은 대부분 이탈리아 건축가들의 작품이고, 일부는 카탈로니아의 건축물이다. 지금은 폐허가 된 산 세베리노 궁전은 이 시대의 화려한 건축물 가운데 하나이다. 산타 카테리나 포르미엘로와 몬테올리베트 복합 단지등 많은 주요 교회 건축물들이 이 시대에 세워졌다. 16세기 초, 이후 두 세기 동안 이어지는 스페인의 통치가 시작되었으며, 이때 방어 시설을 강화하게 된다. 특히 톨레도의 페드로 총독이 다스린 20년간, 사회를 재구성하기 위한 그의 구상 중 일환으로 도시 정책이 수립되었다. 1600년에 왕궁을 짓고, 한쪽에는 플레비시토 광장이 건설되었다(1510~1593). 교회 건물에는 분수대, 자선 기관 단체인 몬테 데이 포베리 베르고그노시, 산타고스티노 데글리 스칼치, 카포디몬테에 있는 예수회 학교 박물관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주변 도시는 외곽으로 계속 뻗어 나갔고, 이곳 역시 대규모의 종교 건축물과 일반
건물들이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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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24.02.29
  • 저작시기2024.0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24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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