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환의 전기적 생애와 문학에 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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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제 목 : 유치환의 생애
□ 총 페이지수 :
□ 목 차:

<제목차례>
1. 유치환의 생애 1
2. 유치환의 삶과 문학 2

<표차례>

<그림차례>

본문내용

발표했다. 그 시절이 바로 청마의 경주(慶州) 시절이다.
55년부터 59년까지 그는 경주중고등학교 교장으로 있었고 그 기간동안 그는 '나는 시인이 아니다'면서 자유당 정치와 그 불의를 단죄하는 투사의 칼날을 휘둘렀다. 59년 9월 10일 그는 강요에 의해서 교장직을 물러나게 되고 그후 2년간 심한 신경통을 앓으며 낭인 생활을 하게 된다. 그 기간동안 그는 대구매일신문과 동아일보, 조선일보 등에 정치권을 질타하는 시를 계속 발표했다. 그 시들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이다.
진실로 참되고 옳음이
죽어지고 숨어야 하는 이 계절엔
나의 뜨거운 노래는
여기 먼 땅에 깊이 묻으리
아아 나의 이름은 나의 노래
목숨보다 귀하고 높은 것
마침내 비굴한 목숨은
눈을 에이고 땅바닥 옥에
무쇠연자를 돌릴지라도
나의 노래는 비도(非道)를 치레하기에 앗기지는 않으리
들어보라
저 거짓의 거리에서 물결쳐 오는
뭇 구호와 빈 찬양의 헛된 울림을
모두가 영혼을 팔아 예복을 입고
소리 맞춰 목청 뽑을지라도
여기 진실은 고독히
뜨거운 노래를 땅에 묻는다. ― 1960년 3월 13일 '동아일보'
이 시가 나온지 1개월 6일만에 4.19가 일어났고 그가 그 동안 발표한 시편들을 묶은 시집들이 다투어 나왔다. 61년 5월 청마는 마침내 경주여자중고등학교 교장이 되어서 그리워하던 경주 땅으로 돌아오게 된다.
학생들을 선동한다는 '죄목'으로 직장에서 쫓겨난 청마는 바로 그 '덕목'으로 높은 추앙을 받게 되고 그후 문단에서나 교육계에서 크게 기림을 받았다. 그리고 그는 '투사'의 일을 떠나 곧 '詩人'의 자리로 돌아왔다.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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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5페이지
  • 등록일2002.05.01
  • 저작시기2002.05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936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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