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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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미국 역사의 의의

Ⅱ. 미국 역사의 개관
1) 미국 정치사의 개관
2) 미국 경제의 개관
3) 미국 사회의 개관

Ⅲ. 미국 역사의 흐름
1. 미국의 독립과 헌법제정
2. 남북전쟁 - 연방 vs 반연방, 북부 vs 남부, 반노예 vs 노예
3. 대량생산과 노동문제
4. 제국의 팽창주의와 1차 세계대전
5. 경제공황과 뉴딜 - 정부간섭주의의 시작
6. 2차대전의 발발
7. 냉전의 도래와 미국의 보수화
8. 1950년대(트루먼-아이젠하워) - 냉전과 진보의 혼재
9. 1960년대(케네디-존슨-닉슨) - 위대한 사회, 월남전 확산

10. 1970년대(닉슨-포드-카터) - 월남전 패전, 경제침체, 에너지위기
11. 1980년대(레이건-부시) - 보수로의 대회귀 (레이거노믹스)
12. 1990년대(부시-클린턴) - 진보도 아닌 보수도 아닌
Ⅳ. 결어

본문내용

등의 보수주의자들은 이러한 혼란의 원인이 진보세력에 있다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진보세력에 대한 반동으로 보수주의들은 결집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의회는 민주당의 수중에 있었으므로 진보적 입법은 계속되었다.
경제적으로 공화당은 자유방임 노선을 택했지만, 당시 월남전 전비의 후유증과 세계적인 경제침체 때문에 인플레이션이 증가하였고, 결국 닉슨은 정부간섭주의로 돌아서게 되었다. 또한 전비로 인해 위대한 사회정책은 좌절될 수 밖에 없었다.
2) 에너지와 위기와 경제의 쇠퇴
유명한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결국 닉슨은 사임하게 되었다. 월남전 패망과 워터게이트는 미국민에게 심각한 정신적 타격을 주었다. 그러나 더욱 심각한 것은 경제의 위기였다. 70년대 초부터 시작된 인플레이션과 경쟁력 약화는 미국 경제를 침체시켰으며, 여기에 결정타를 가한 것이 석유파동이었다. 이러한 석유파동은 연쇄적으로 자동차산업등의 침체를 낳고 이는 미국경제침체에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또 2차대전후 베이비 붐 세대들이 한참 사회에 나설 시기였으므로 실업률은 더욱 증가하였다.
이러한 침체의 시기에 카터가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카터는 도덕정치를 외치며 당선에 성공하기는 하였으나, 이 시기는 미국이 가장 혼란스럽고 난관에 봉착했을 때였다. 게다가 카터 스스로의 지도력이 부족하였기 때문에 카터는 정치적으로 외토리가 되었다. 결국 1979년 80년에 미국경제는 최악의 국면을 맞게 되었다. 거기다가 80년 4월의 이란 인질구출작전의 실패는 카터를 결정적으로 수렁에 빠뜨렸다.
3) 70년대의 사회상
혼란과 침체의 상황에서 수많은 소외세력들이 자신들의 인권을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들을 행하였다. 흑인과 히스패닉, 그리고 여성들은 70년대를 통해 자신들의 정치적·사회적 경제적 지위를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을 행하였다.
또한 급진주의가 퇴조하였다. 60년대의 열정에 가득찬 진보적 운동들은 결과적으로 실패하였고, 이를 본 후대들은 그러한 길을 다시는 가려하지 않았다. 사회개혁이라는 거창한 목표대신에 개인의 능력개발에 초점을 두었고 따라서 조깅이나 건강식의 섭취, 요가와 수련 등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 투자하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개인들은 내향적이 되어갔다. 또한 이러한 무기력의 부정적 영향으로 광신적 종교도 성행하게 되었다.
11. 1980년대(레이건-부시) - 보수로의 대회귀 (레이거노믹스)
1) 보수주의자 레이건 행정부의 출범
70년대의 어두운 상황에서 보수주의의 물결을 타고 레이건이 등장하게 되었다. 레이건은 과거의 전통적 가치관과 균형예산으로 되돌아갈 것을 약속하였다. 그는 자유방임체제의 부활을 통해 경제를 재건하고 군비확장을 통해 잃어버린 미국의 자신감을 회복하려고 하였다. 또한 민주당주도의 의회도 공화당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레이건이 취임하던 날은 이란에 444일간 억류된 인질들이 풀려난 날로 레이건은 강한 미국을 바라는 미국인들의 희망속에 극적인 분위기에서 출범하였다.
2) 레이건의 보수주의 경제정책 - 레이거노믹스(Reaganomics)
레이건은 침체된 경제를 회복하는 방안으로 첫째 정부지출을 줄이고 둘째 감세정책을 시행하였으며 환경등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였다. 이러한 경제정책으로 레이건은 인플레이션을 잡고 금리를 인하하여 미국의 산업이 굴러갈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들은 기업가에게만 유리한 것으로 레이거노믹스는 미국 전체의 경제는 부흥시켰지만, 경제구조를 심각하게 왜곡함으로써 많은 사회문제를 야기시키게 되었다.
3) 빈곤의 심화
80년대 들어서 미국의 경제구조는 근본적으로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철강, 전기, 자동차등의 공업에서 국가경쟁력 제고와 정보화 사회의 진입이 시작되면서, 또한 노조의 영향력을 벗어나 기업의 임의대로 고용을 조정할 수 있는 산업체제가 등장하게 되었다.
따라서 빈부의 격차는 심해지고, 실업률은 더욱 높아지게 되었다. 80년대 말 미국을 휩쓴 리스트럭처링, 리엔지니어링, 다운사이징의 여파로 미국은 대량감원의 회오리에 빠지게 되었다. 따라서 재취업교육을 실시하게 되었는데, 실제 재취업이 되는 곳은 임시직이나 일용직등이었다.
이러한 문제들은 사회문제를 낳게 된다. 마약이 성행하며 범죄가 증가하고 AIDS등이 횡행하게 되었다. 레이건의 등장으로 미국은 다시 강대국의 명예를 회복했을지는 모르나, 빈부의 골과 사회문제는 더욱 심각해졌다.
12. 1990년대(부시-클린턴) - 진보도 아닌 보수도 아닌
걸프전의 영향으로 부시의 인기는 반짝했지만, 아직 경제회복의 기미가 안 보이면서 클린턴이 부상하게 되었다. 오랜동안의 보수주의에 지친 미국의 국민들은 케네디와 이미지가 비슷한 클린턴에게 표를 주었다.
그러나 1990년대에 들어서 미국과 유럽에는 진보진영의 보수화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클린턴은 진보진영이기는 하고 부분적으로 진보적 정책이 시행되기는 했으나 사실상 그의 경제정책은 보수적 경제정책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신자유주의 정책은 자유방임주의와는 다르지만 근본적으로는 자유주의 경제정책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국제경쟁력이라는 단어의 대두와 함께 전세계의 무역질서를 자유화하고 국내적으로는 기업친화적인 경제정책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Ⅳ. 결어
미국의 역사는 정치적으로는 연방주의, 반연방주의 진보 대 보수의 사조가 경제적으로는 정부간섭주의와 자유방임주의가 교차하고 있고, 사회적으로는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진보의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미국의 역사가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 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아직 미국의 초강대국의 지위는 건재하며 당분간 계속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미국의 좋은 시절은 끝나고 여태까지 잠재되었던 많은 사회적 문제들이 서서히 터지기 시작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미국의 행정은 이러한 역사 위에서 어떠한 작용을 하고 있다. 행정은 사회에 영향을 받기도, 영향을 주기도 한다. 미국의 역사를 우리가 뭐라 평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미국의 역사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지 그것이 행정과는 어떠한 관계에 있는 지 생각해보는 것은 매우 가치 있는 일일 것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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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2.05.03
  • 저작시기20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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