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와 유대의 인간관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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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서구의 인간관
2. 유대인의 인간관

본문내용

니다.그래서 아담이 지어준 이름이 그 짐승의 고유한 이름이 되었다는 것입니다.이름짓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 아니고 아담이 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그리고 하나님께서도 아담이 지은 이름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습니다.그대로 수용했습니다.이것은 아담이 짐승과 새들의 이름을 아주 적절하고 알맞게 지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그리고 이것은 아담이 매우 지혜롭게 일을 처리했음을 보여줍니다.뿐만 아니고,그는 짐승과 사람의 차이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자신이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아담은 매우 지혜로웠습니다.
아담은 짐승과 새에 대해서 깊이 관찰을 했을 것입니다.그것들의 전체적인 특징들을 관찰한 다음,각각의 특징들에 따라서 이름을 붙였을 것입니다.이것은 사람이 주변세계에 대해서 지식을 갖게 되었음을 말합니다.사람은 이 세상과 짐승들,어류,조류들을 돌보도록 책임을 부여받았습니다.그것은 사람이 해야할 일입니다.이 땅을 경작하고 가꾸고 돌보는 일은 우리의 책임입니다.우리는 우리가 맡은 일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서 연구해야 합니다.사람들이 해놓은 자연과학적인 지식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그것은 이 땅을 좀더 잘 보존하기 위해서 수고해온 사람들의 땀의 결정체입니다.
그리고나서 여자를 만드시는 하나님의 지혜가 나타나고 있습니다.하나님께서는 사전에 아담과 아무런 이야기도 없이 여자를 만들었습니다.아담이 어떤 타입의 여자를 좋아하는지 물어본 적이 없습니다.자신이 만든 여자를 아담이 좋아할 지 싫어할지도 모릅니다.그런데 아담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여자를 보고,생전 처음으로 여자를 보는데도 여자 보는 눈이 있었던 모양입니다.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합니다.그리고 덩실덩실 춤을 추면서 노래를 부릅니다.
본문은 아담이 좋아서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을 보여준 다음,이런 말을 덧붙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아내와 결합하여 한 몸을 이루는 것이다. 우리는 그들이 동심일체가 되었다는 사실에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그리고 그들은 벌거벗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이것은 온전한 샬롬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사람의 지혜와 하나님의 지혜,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누리는 사람의 샬롬을 볼 수 있습니다.
6.미래를 대망하는 사람
여기서는 창세기 삼장 십사절에서 오장까지의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먼저 삼장 십사절에서 십구절까지는 하나님께서 뱀과 하와와 아담에게 내리시는 판결입니다.그 판결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수고로움'입니다.뱀과 하와와 아담에게 내려진 하나님의 벌은 수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특히 아담에게 내려진 판결에는 그것이 더욱 분명하게 나타나 있습니다.십칠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남자에게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아내의 말을 듣고서,내가 너에게 먹지 말라고 한
그 나무의 열매를 먹었으니,
이제 땅이 너 때문에 저주를 받을 것이다.
너는,죽는 날까지 수고를 하여야만,
땅에서 나는 것을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죽는 날까지 수고해야 한다.' 이것이 아담에게 내려진 판결입니다.
이 수고로움은 사람의 고뇌를 말합니다.사람은 땅과 자신과 다른 사람들과 씨름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먼저 흙과의 씨름입니다.사람과 가장 가까운 관계에 있고,또 그래야만 할 땅과의 대결,사람은 이 땅을 붙들고 몸부림치고,땅으로 인해서 기뻐하고 땅으로 인해서 슬퍼하고 통곡하며,사랑하는 사람을 땅에 묻고,결국에는 자기도 땅에 묻히게 되는 판결을 받은 것입니다.
그런 후에 사람은 두번째 판결을 받습니다.생명나무 때문에 에덴 동산에서 추방령이 내렸습니다.이제 하나님은 사람을 더 이상 신뢰하지 않습니다.생명나무를 사람의 손에서 지키기 위해서,하나님은 그룹을 세우고,불칼을 두어서 길을 지키게 하셨습니다.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완전히 버리지는 않으셨지만,처음처럼 사람을 신뢰하지는 않으십니다.여기서 오는 사람의 고뇌가 얼마나 컸겠습니까? 그 하나님과의 신뢰관계를 회복해야 하는 길고도 먼 몸부림이 시작됩니다.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그 오랜 세월 동안 응어리진 한을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라는 말로 토해낼 때까지 계속되어야 할 몸부림입니다.
그리고 나서 가인과 아벨의 갈등으로 인한 형제살인이 나옵니다.형제들끼리도 마음을 합하지 못하는 상황을 극복해 내기 위해서 사람들은 또 끈질긴 싸움을 벌여야 합니다.이제 인간은 서로를 결코 고운 눈으로 보지 못합니다.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그 끝모를 증오심과 싸워야 합니다.
사람들은 많은 고통을 당했습니다.그래서 사람들은 새로운 날이 오기를 대망했을 것입니다.범죄와 에덴동산에서의 추방,이어지는 형제살인.이것은 가인의 말처럼 사람이 짊어지기에 너무 무거운 짐이었습니다.이 짐을 벗어버릴 날이 오기를 염원했습니다.이러한 염원은 그 다음에 나오는족보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창세기 오장에는 족보가 나옵니다.성경에서 족보는 매우 중요한 기능을 합니다.창세기 일장에서 십일장까지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창세기 오장의 족보는 셋의 계보입니다.족보는 미래지향적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과거의 인물에서 시작해서 후대의 인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그리고 그 족보는 완결되지 않았습니다.먼 미래를 지향하는 족보임을 보여줍니다.그것은 마태복음에 와서 완결된 형태로 나타납니다.그래서 창세기 오장의 족보는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입니다.
이렇듯 구약의 족보들은 미래지향적인 족보입니다.희망적인 족보입니다.이스라엘 사람들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미래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나라가 멸망했을 때에도,오랫동안 유랑생활을 하면서도,그들은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그들은 메시야의 도래를 꿈꾸고 메시야의 나라가 반드시 올 것이라는 확신 속에서 살았습니다.그리고 그 나라가 조만간에 이루어질 것처럼 보이는 그런 시대도 있었습니다.하지만 실제로 그것이 이루어 적은 없었습니다.그들은 메시야 왕국의 도래를 염원하다가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에는 깊은 좌절에 빠지지만,다시 그 좌절을 넘어서 새로운 희망을 갖습니다.역사적으로 불가능해 보일 때는 묵시적인 대망을 가졌습니다.그들은 이렇듯 상황에 따라서 자신들의 신학을 수정하면서,본질적으로 미래에 대한 희망,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키워드

서구,   유대,   인간관
  • 가격2,300
  • 페이지수15페이지
  • 등록일2002.12.20
  • 저작시기2002.1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15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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