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성문화에 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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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 론

Ⅱ. 본 론
1. 결 혼
(1)일부다처제
(2)조선시대의 혼인 형태
1)조선왕실의 가례
2)일반인의 혼례
(3)남녀칠세불동석
2. 임신과 기자 습속
(1)기자습속
(2)임신
1)산전속
2)산후속
3. 이혼과 수절
(1)이혼과 과부의 재가
(2)수절
4. 성 범죄
(1)간통
(2)강간
(3)치정 살인
(4)성 범죄에 따른 처벌
5. 매춘과 섹슈얼리티
6. 조선시대의 성 모럴
(1)궁녀의 생애
(2)조선시대의 성병

Ⅲ. 결 론

본문내용

이 '은폐심리'와 '노출심리'가운데 놓여져 있었다.
정성희, 『조선의 성풍속』가람기획 235p∼244p
이러한 복장은 세기말의 현상이며 '가슴노출'과 '하체강조'의 패션은 여성의 多産능력과 관계가 있다. 조선시대의 春畵는 일본. 중국과는 다른 '우리만의 정서'뿐 아니라 예술성과 회화성을 보여준다.
6. 朝鮮時代의 性 모럴
(1)宮女의 生涯
조선시대 궁궐은 국왕을 중심으로 궁중생활이 이루어졌다. 따라서 국왕의 공적· 사적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시종들이 필요했는데, 여자 시종들이 바로 궁녀들이다. 이들은 특히 대전을 비롯하여 내전· 대비전· 세자궁 등과 같은 각종 별궁에서 일하면서 왕을 비롯한 왕실생활의 유지를 위해 평생을 봉사해야 했다.
평생을 '대기상태'에 있었던 궁녀들..계급/혈통/외모/성품을 기준으로 궁녀를 선발하였다. 궁녀들은 왕의 '쇠털같이 허구한 날'인 일상생활의 유지를 위해서, 왕과 왕족들의 쾌적한 삶을 위해서 최적의 환경을 마련할 임무를 지녔다. 이와 같이 궁녀들은 왕실 서비스를 위해 존재했지만, 정확히는 왕만을 위해 살아야 하는 여자들이었다. 왕만을 위해 일평생 정조를 지켜야 했기 때문이다.
궁녀의 최고의 꿈은 '상궁'이 되거나 '후궁'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꿈은 현실적으로 쉬운 일이 결코 아니었다. 궁녀는 왕과 혼인을 한 여자들이므로, 비록 '출궁녀'가 되었다 하더라도 '순결'을 지켜야 하며 결혼은 금지되었다. 궁녀는 '봉건 군주국가의 희생물'이다. 절대 다수의 궁녀들은 평생을 대기상태로 왕의 눈길을 기다리면서, 고독 속에서 청춘을 덧없이 보내야 했다. 궁녀는 봉건 군주국가의 희생물로서, '충이라는 명분'으로 평생 동안 왕을 태양처럼 우러러보며 남자를 모르는 채 일생을 마감해야 했다. '궁녀'들의 외롭고 애잔한 삶을 볼 수 있다.
궁녀의 서열은 다음과 같다.
제조상공 대령상궁(지밀상궁) 보모상궁 시녀상궁-봉명상궁 감찰상궁
외로운 여인들의 불우한 연애, '동성애'
이배용 외, 『우리나라 여성들은 어떻게 살았을까』권1 청년사 85p∼87p
... 궁녀들의 동성애가 가장 표면적으로 드러난 사건은 "세자빈 봉씨의 사건"이었다. 이런 사건들은 폐쇄된 궁중에서 자칫하면 청춘을 덧없이 흘려보낼 수밖에 없는 비빈· 궁녀들 사이에 성적인 탈선이 일어날 수 있는 소지는 얼마든지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간통죄에 대한 실례에 대한 판례를 볼 수 있는데 중국사회 바탕으로 만들어진 '대명률'은 조선의 사회현실과 거리가 많았다.
(2)朝鮮時代의 性病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성병은 쾌락의 죄 값이다. 대체로 성병은 일 대 일의 부부관계가 아닌 유곽과 같은 매춘지역을 중심으로 전염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조선시대에는 매춘지역인 유곽이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성병이 서양에서와 같이 전염병처럼 파급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성병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조선시대 남성들 역시 오로지 본부인만 상대로 성행위를 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 전통시대 성병에 대한 기록을 발견하기란 무척 어렵다. 조선시대 왕들은 瘡病을 비롯한 여러 가지 피부병으로 고생한 경루가 많은데, 이러한 증상 중에는 성병에 의한 것도 있지 않을까 추측해볼 수도 있다. 한편 조선시대 저작인 「증보 산림경제」에는 성병에 대한 처치방법이 적혀 있는데, 이를 통해 당시 사람들의 성병에 대한 증상과 처방을 짐작할 수 있다. 조선시대의 성병인 천포창(天疱瘡)을 살펴보면 남녀가 성행위로 인하여 전염되는 것으로, 코와 눈에 상처가 생기며, 음경이 썩어 문드러진다. 근육과 뼈가 아프고 사지가 뒤틀려서 나병과 다를게 없다. 혹은 살가죽이 터지고 뼈가 문드러지고, 코와 입이 지탱하기 어려워서 죽음에 이르게 된다. 치료법 중에 대표적인 한 가지를 알아보면 香油 2근을 물 1잔에 넣어 달여 흰 연기가 일어나면 거두어 저장해두고 매번 黃酒 1종, 향유 1잔을 넣어 하루에 세 차례씩 따뜻하게 먹인다. 나 나으면 온전히 낫는다. 그 외에 오리를 이용한 치료법과 木通과 를 이용한 치료법, 들국화나 대추나무 뿌리, 수은· 棗肉을 이용한 치료법도 있다.
Ⅲ. 結 論
성풍속사, 성 모럴(moral)사는 사회구조와 연관되어 있다. 그러기에 성의 역사는 단지 도외시할 개인적인 모럴의 차원이 아니라 사회적인 모럴의 차원이고 그것은 또한 그 당시 사회를, 총체적인 역사를 연구할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될 수 있다.
다른 여러 나라들의 성 풍속들도 많지만 아직까지도 남녀간에 있어서는 불평등한 우리나라의 현재모습의 배경이 될 수 있는 조선시대의 성 풍속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조선왕조의 건국은 고려 왕조가 안고 있던 정치적·사회적 모순과 폐단을 극복하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졌으며 조선왕조의 건국주도세력이 시정해야 하겠다는 사회적 문제 중에는 여성문제도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당시 그들은 고려 말기 시대의 사회적 혼란을 수습하고 새로운 사회질서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여성들의 방종한 행동을 강력하게 規制해야 한다고 생각하여 여러 가지 制裁조치를 강구하였고, 이를 뒤에 經國大典에 명문화함으로서 유교적 가치관으로 정당화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정책은 조선왕조 5백년 동안 지속되었고 그 결과 여성의 지위는 크게 악화될 수밖에 없었다.
현재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전통적인 여성상은 조선왕조가 여성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그려진 것이 대부분이고 그 여성상은 대체로 일그러진 부분이 많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參考文獻
-정성희, 『조선의 성풍속』 가람기획, 1998
-한국역사연구회, 『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권1 청년사,1996
-김두헌, 『한국 가족 제도사연구』 서울대햐교출판부, 1969
-김정자, 『한국 결혼 풍속사』 민속원, 1981
-김용덕, 『한국의 풍속사』 밀알,1994
-이태진, 『조선사회사연구』 지식산업사, 1989
-주강현, 『우리 문화의 수수께끼』 한겨레신문사, 1996
-한국여성연구소 여성사연구실, 『우리 여성의 역사』 청년사, 1999
-이배용 외, 『우리나라 여성들은 어떻게 살았을까?』권1 청년사, 1999
-한국 전통문화 연구회 『가정의례백과』 우래,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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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3.03.26
  • 저작시기20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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