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모든 건국신화 상세정리.. (창세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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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고조선
- 단군 신화 -

♣ 부여
- 해모수 신화 -
- 해부루왕과 금와왕 - 동부여

♣ 고구려
- 주몽 신화 -

♣ 가야국
- 혁거세 신화 -
- 김알지 신화 -
- 석탈해 신화 -
- 김수로 신화 -

♣ 백제
- 온조 신화 -

본문내용

있었다. 정신이 번쩍 든 유리가 기둥을 살펴보니 과연 기둥에 구멍이 있었다. 조심조심 손을 넣어 보니 무언가 잡히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부러진 칼 한 조각이었다. 유리는 크게 기뻐하며 곧 행장을 차려 남쪽으로 길을 떠났다. 드디어 고구려에 도착한 유리는 왕에게 나아가 가지고 온 것을 공손히 받들어 올렸다. 주몽왕이 가지고 있던 칼 한 조각을 꺼내 유리가 바친 것과 맞추어 보니, 칼에서 피가 나면서 하나로 이어져 온전한 칼이 되었다. 주몽은 유리가 자신의 자식임을 알고 크게 기뻐하며 태자로 삼았다. 한편, 비류와 온조 형제는 부여에서 나타난 유리가 태자가 되자 자신들이 유리에게 받아들여지지 못할 것을 걱정하여 고구려를 떠나기로 결심하였다. 그러자 신하들 가운데서도 오간, 마려 등 열 명이 이들을 따라가겠다고 나섰다. 이들이 함께 남쪽을 향해 길을 떠나자 많은 백성들도 뒤를 따랐다. 마침내 한산 땅에 이른 이들 일행은 부아악(지금 서울의 북한산)에 올라가 자리잡고 살 만 한 곳을 두루 살펴보았다. 비류는 서쪽으로 보이는 바닷가에 가서 살겠다고 하였다. 그러자 여러 신하들이 그를 말리며, 여기서 살펴보니 이 한수(한강) 남쪽 땅은 북쪽에 강이 있고 동쪽에는 높은 산이 감싸고 있습니다 또 남으로 기름진 들이 있고, 서쪽은 큰 바다로 막혀 있습니다 이처럼 살기 좋은 곳은 얻기 어려울 것이니 여기에 도읍을 정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고 간하였다. 그러나 비류는 신하들의 만류를 듣지 않고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과 함께 서쪽 미추홀(인천)로 갔다. 온조는 그 땅에 도읍을 정하여 하남 위례성이라 하고 열 명의 신하들의 도움으로 나라를 세워서 나라 이름을 십제(十濟)라 하였다. 그런데 미추홀은 땅이 습하고 물이 짜서 사람이 살기에 그리 좋지 못한 곳이었다. 결국 다시 돌아와 위례성을 보니 벌써 도읍이 자리가 잡혔고 백성들도 별 어려움 없이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었다. 비류는 자신의 잘못을 부끄러워하다가 괴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 비류를 따랐던 신하와 백성들은 모두 위례성으로 돌아왔다. 그 뒤 주변의 소국들을 정복하여 백성들이 많아지고 나라의 세력도 커지자 이름을 백제(百 濟)라고 고쳤다. 그리고 그 조상이 고구려와 마찬가지로 부여에서 나왔기 때문에 성을 부여(扶餘)씨라고 하였다.
***참고자료***
「한국문학통사 1」, 조동일, 지식산업사
「한국서사문학연구」, 황패강, 단국대출판부
「단군신화연구」, 이은봉, 온누리
  • 가격500
  • 페이지수6페이지
  • 등록일2003.05.29
  • 저작시기2003.05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23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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