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의 삶과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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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의 삶과 역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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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유태인들은 보복을 받게 될 것" 이라는 내용의 협박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그는 화가가 되려는 소망을 좌절 시킨 장본인이 유태인이라고 간주해 버렸던 것이다.
또한 히틀러가 반유태주의자가 된 것은 부분적으로는 연애의 실패, 즉 성적 동기에 있다는 견해가 제시되어 왔다. 이 좌절은 그가 사춘기에 이성문제로 심적 외상을 받았다는 확증이 되며 따라서 이것은 오이디푸스 컴플렉스에 이어 그의 반유태주의가 발전하는 제 2단계라고 보는 것이다. 비인에서 생활할 당시 히틀러는 내의 선전 모델을 하는 소녀에게 심취해 있었는데 그녀는 시를 써보내며 구애하는 히틀러의 시와 예술에 대해 비웃기까지 하였다. 이런 태도에 분격한 히틀러는 그녀를 구타하기도 했는데 얼마 후 그녀는 청년 사업가와 약혼했다. 그런데 히틀러는 그녀의 약혼자가 유태인의 혈통임을 알게되자 그의 목을 조여놓겠다고 장담하였다. 그리고 그는 두 연인이 거리를 지나가면 협박하면서 길거리의 행인들에게 '우리들의 게르만 여성'을 유혹하는 유태인을 공격하자고 촉구했다. 히틀러는 마침내 그들의 결혼식장에서도 이런 행동을 되풀이하다가 경찰에 의해 쫑겨났다고 한다.
입학시험의 실패와 그의 연애가 유태인에 의해 패배당했다는 사실은 히틀러의 무의식 속에 잠재된 유태인에 대한 피해의식과 증오를 표면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유태인과 아리안 인종간의 결혼으로 인한 인종의 오염을 방지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이 시기에 그가 경험한 좌절과 실패, 정신적 위기 그리고 비인의 정치적 현실과 사회문제 등은 그의 개인적 반유태 감정을 국가적 차원으로 발전시켰으며, 이러한 과정에서 히틀러는 반유태주의를 정치적 신념으로 확립하게 된다. 이처럼 히틀러의 반유태적 감정은 개인적 실패의 원인을 유태인에게 투사하므로써 조장되었는데 이것은 곧이어 국가적 차원으로 확산된다.
히틀러가 유태인을 박해한 또 다른 동기로서 그의 유태인 선조설이 제시되고 있다. 유태인 선조설의 지위는 아직까지 규명되지 않고 있지만 학자들은 이것이 히틀러의 반유태주의를 강화시켰다는 점에서 주목하고 있다. 유태인 선조설은 히틀러를 정치적, 심리적 특면에서 위협했다. 우선 정치적으로 그는 전생애에 걸쳐 반유태주의 원칙을 일관해 왔다. 그런데 만약 히틀러의 선조가 유태인이라는 사실이 입증된다면 나찌당 지도자로서 그의 정치적 위광은 종말을 고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는 가운데 '데일리 미러 (Daily Mirror)'의 1933년 10월 14일 자에 게재된 히틀러의 유태인 조부에 관한 기사는 히틀러의 위기의식을 첨예화시켰으리라고 본다. 그래서 히틀러는 유태인 선조설을 반증하기 위해 게슈타포(Gestapo: 나찌의 비밀경찰)까지 동원했지만 그에게 유리한 아무런 근거도 찾아낼 수 없었다. 심리적으로도 유태인 선조설은 히틀러를 자극했다. 그는 유태인의 위협을 여러 가지로 제시했는데, 그 중에서도 그가 가장 우려한 것은 성적 위협, 즉 피의 오탁화였다. 그는 '나의 투쟁'에서 자신이 유태인을 증오하기 시작한 것은 유태인의 성적 타락과 백인 여성의 매춘을 중개하는 행위를 발견하고 나서부터였다고 했다.
그가 믿기로는 유태인은 계획적으로 독일 여성과 관계를 맺어 독일인의 혈류에 그들의 피를 혼합시키려고 기도하는 자들이었다. 유태인 선조설에 반응하는 히틀러의 태도와 행동으로 미루어 볼 때, 그 소문은 유태인에 대한 그의 공포와 피해의식을 강박적으로 만들었으며, 따라서 히틀러는 유태인을 몰살시켜 버림으로써 자신이 유태인 혈통일지도 모른다는 불안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반유태주의를 포함한 인종편견 현상은 퍼스낼리티(Personality)와의 관계에서도 설명되어 왔다. 학자들은 일반적 반유태주의자들의 퍼스낼리티와 반유태주의의 심리 메카니즘(psychological mechanism)을 히틀러의 그것과 비교 분석하여 연구하였는데, 분석 결과 히틀러는 무력감으로 인한 내적 갈등과 죽음, 파괴에 대한 충동의 소유자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이 이러한 성향은 유태인에 대한 공격으로 발산되었다. 또한 히틀러는 비정상적이고 비도덕적인 성적 욕구로 자기증오와 죄의식을 느꼈는데, 그는 이러한 요소들을 유태인에게 토사하여 그들을 스케이프 고우트 (scapegoat), 희생양으로 만듦으로써 정신의 평형을 유지하려고 했음을 알 수 있다.
hitel.netian.com/hitler 참고
박입분(朴粒紛)의 논문「히틀러의 반유태주의의 정치심리학적 분석」(1985) 중에서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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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3.12.24
  • 저작시기2003.1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40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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