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 서원 여행기 - 퇴계 이황과 도산 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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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도산 서원 여행기 - 퇴계 이황과 도산 서원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ꊱ 遊陶山書院記(유도산서원기)
1. 도산서당(陶山書堂)
2. 농운정사(隴雲精舍)
3. 정교당
4. 동. 서재 (東. 西齋)
5. 광명실
6. 장판각(藏板閣)
7. 상덕사(尙德祠)
8. 전사청(典祀廳)
9. 옥진각(玉振閣)
10. 역락서재(亦樂書齋)
11. 시사단(試士壇)
12. 천연대(天淵臺)와 운영대(雲影臺)
13.추로지향비(鄒魯之鄕碑)

ꊲ 퇴계 이황
-도산서원소장님과의 대화를 통해서
1. 사 상
2. 교육
3.도산서원 학규

ꊳ 우리 서원에 대하여

ꊴ 에피소드
1. 은어 잡기 - 준법 교육
2. 밤알 되돌려 주기 - 정직
3. 영의정 권철 - 청빈과 위민

ꊵ 시사점

본문내용

말을 듣지 않았고 선생은 날마다 국법을 어기는 것을 볼 수 없어서 낙동강에서 멀리 떨어진 '죽동'이라는 곳으로 집을 옮겨버렸다.
2. 밤알 되돌려 주기 - 정직
선생이 서울에 있을 때, 지금을 서소문인 '학다리'에 살았는데, 옆집과는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었다. 옆집 담장 안에는 밤나무가 한 그루 있었는데, 여름이면 밤나무 가지가 선생의 마당에 뻗어 좋은 그늘이 되어주었고, 가을이면 밤알이 선생의 마당에 수없이 떨어졌다. 선생은 떨어진 밤을 모두 담장 너머 주인에게 던져주곤 하였다. 옆집 주인은 너무 미안해서 약간의 밤을 선물로 가지고 찾아와서 선생 댁 마당에 떨어진 밤은 돌려주지 말고 그냥 드시라고 하였다. 이웃간의 인정으로는 흔히 있는 일이었으나 선생은 이렇게 말하였다. "그렇지 않아도 그 밤나무의 신세를 많이 지고 있는데, 열매까지 얻어먹는다면 너무 염치없는 일입니다." 그 말에 옆집 사람이 놀라 반문하니, 선생은 이렇게 말하였다. "여름에는 우리 집 마당에 그늘을 만들어 주어 우리 집 식구들을 시원하게 해주고, 아침마다 내가 밤나무를 던지느라고 허리를 굽혔다 펴니 운동이 되어 나를 건강하게 해주었습니다." 물론 옆집 사람에게 미안함을 덜어주기 위하여 임시방편으로 꾸며낸 농담이었다. 선생이 그런 익살스런 농담을 하는 바람에, 옆집 사람은 크게 웃으며 선생의 대쪽같은 성품에 다시 한 번 머리를 수그렸다.
3. 영의정 권철 - 청빈과 위민
권철은 선생과 동시대의 대학자로서, 명종 때에 영의정 벼슬까지 지냈으며, 권율의 아버지이다. 권철은 영의정으로 재직 시에 평소에 추앙해오던 선생을 만나러 몸소 찾아간 일이 있었다. 선생은 예의를 갖추어 영의정 권철을 영접하였고 두 학자는 기쁜 마음으로 학문을 토론하였다. 그러다가 식사 때가 되어 저녁상이 나왔는데, 밥은 보리밥에다가 반찬이라고는 콩나물국과 가지 잎 무친 것과 산채 뿐으로, 고기 부치라고는 북어 무친 것 하나가 있을 뿐이었다. 선생은 평소에도 그런 식사를 해왔는데, 상대방 손님이 영의정인데도 불구하고 같은 식사를 내왔던 것이다. 평소에 진수성찬만 먹던 권철에게 그것이 입에 맞을 리가 업었다. 그래서 몇 숟갈 뜨는 척 하더니 그대로 상을 물려버렸다. 그러나 선생은 모르는 척 하고, 다음날 아침에도 그와 꼭 같은 음식을 내놓았다. 권철은 더 묵어가고 싶어도 식사가 입에 맞지 않아 그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예정을 앞당겨 떠나면서 선생에게 좋은 말씀을 한 마디만 남겨달라고 하였다. 그러자 선생은 이렇게 말하였다. "대감께서 이렇게 찾아오셨는데, 융숭한 식사대접을 못해 송구스럽습니다. 그러나 제가 대감 전에 올린 식사는 일반 백성들이 먹는 식사에 비하면 더할 나위 없는 성찬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감께서는 그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제대로 잡수시지 못하는 것을 보고, 저는 이 나라의 장래가 은근히 걱정스럽습니다. 무릇 정치의 요체는 여민동락(與民同樂)에 있는데, 관과 민의 생활이 그처럼 동떨어져 있으면 어느 백성이 따르겠나이까?" 이 말에 권철은 크게 깨닫고 돌아가 검소한 생활을 하였다고 한다.
5 시사점
학교 제도적으로 다시 서원을 재건할 수는 없다. 그러나 서원교육이 오늘의 교육에 끼친 영향은 크다고 본다.
첫째, 현대교육의 폐단가운데 하나는 스스로 생각하려는 자세가 부족한 것 같다. 옛 선비들은 성리학적 테두리 안에서나마 독립된 자기사유를 지니려고 하였다. 즉, 거경궁리와 존양성찰로서의 철학하는 삶을 살았다. 집단사고와 대리사고 속에서 자아의식이 사라지고 있는 실정에서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둘째, 오늘날의 교육은 깨달음에 대한 감격이 없는 것 같다. 감격 없이는 깨달음도 없다. 그에 반해 과거의 참 선비들은 인간과 자연 그리고 진리 앞에서 감동하였던 철학적 시인이었다. 따라서 현대교육은 느낌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셋째, 유교 교육에서 가장 강조하였던 것은 입지였다. 입지는 확고한 교육가치관의 확립이었다. 그리고 자아실현의 동기유발이었다. 그러나 학교 교육은 '내가 무엇이 되련다' 라는 의지로부터 자유로워질 수는 없다. 그러하므로 학교교육 기간만은 이상주의자가 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넷째, 오늘의 교육은 뿌리 없는 나무처럼 개인만을 키우는 교육인 것 같다. 사상의 교류와 공감이 집결되지 않는 교육인 것 같다. 우리 나라에 뚜렷한 학파가 없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이다. 과거처럼 많은 선의의 학자들이 제각기 학통을 자랑하는 풍토가 조성되어야 현대교육의 병폐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다섯째, 현대 교육은 사람의 자리를 벗어난 기능 교육이다. 반면 유교 교육은 인간 교육이다. 현대 교육은 단순 지식 전달위주이며 학습의 결과가 눈에 보이기를 원한다. 인간을 떠난 지식의 전달은 유교 교육의 입장에서 교육의 부재와 마찬가지이다. 현대와 같은 인간 소외의 시대에는 인간 교육이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퇴계의 사상은 교사의 태도에도 많은 시사를 준다. 요즈음 교사들은 지식 전달자로 전락하였다. 이것은 교육 현실의 탓도 있겠지만 교사 자신들에게서도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스스로가 현실에 맞추어 살고 있는 것이다. 퇴계는 한번도 자신이 남의 교사임을 자처하지 않았다. 그에 의하면 교육자란 학문을 하는 사람이며, 학문이란 원래 남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스스로를 위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퇴계의 교육에서 체벌이란 없다. 그러나 엄(嚴)과 경(敬)이 있다. 엄하되 억누르지 않으며 공경하되 굴욕적이지 않은 그런 것이 스승과 제자의 관계였던 것이다. 교사는 교사임을 의식적으로 그칠 때 참된 교사가 된다. 퇴계는 묵묵히 솔선수범을 하였다. 이것이 오늘날의 도덕교육에도 시사를 주는 것이다.
참고문헌 ------------------------------------------------------
1.『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3.
2. 강주철, 「서원과 그 사회적 기능」『한국사론』8, 국사편찬위원회, 1982.
3. 이범직, 「조선초기 서원의 교육기능」『한국사론』8, 국사편찬위원회, 1982.
4. 송양섭, 「조선시대의 서원교육」『강원문화연구』13,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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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4.03.21
  • 저작시기20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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