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명 조식과 퇴계 이황의 학문과 철학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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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남명 조식과 퇴계 이황의 학문과 철학세계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서 론

2. 본 론
(1) 남명 조식과 퇴계 이황의 학문세계
1) 남명 조식 학문의 특징
① 양명학(陽明學)적 경향
② 성리학적 경향
③ 학기류와 학기도의 철학사상
2) 퇴계 이황 학문의 특징
① 퇴계 이황의 성리학 이해
② 천명신도와 성학십도의 철학사상

3. 결 론

본문내용

천명도설후서』의 한 구절에 잘 나타나 있다.
문: 이것도 그림으로 사람에게 보여 주기 위한 것인데, 어째서 주렴계(의 『태극도』)처럼 다섯 단계로 하지 않고 오히려 다섯 단계를 합쳐서 한 단계로 하였는가?
답: 주로 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이다. 주렴계는 이기의 본원을 밝히고 조화의 기미와 신묘함을 드러내고자 했으므로 다섯단계로 나누지 않으면 사람들을 깨우칠 수가 없고, 이 그림(『천명신도』)은 사람과 사물이 품부받은 것을 단서로 하여 이기가 변화하면서 생겨난은 것으로 거슬러 올라가려 했으므로 합하여 한 단계로 하지 않으면 올바른 위치를 잡을 수 없다.
『退溪集』卷41, <天命圖說後敍附圖>
퇴계의 이 말은 『태극도』가 우주론적 관점에서 작성된데 반해 『천명신도』는 인간론적 관점에서 작성되었다는 의미가 되는데, 이것은 한편으로 퇴계철학의 입각점을 보여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혹자는 이점을 중국 성리학과 f되는 한국 성리학의 성격이라고 하기도 한다. 즉 "주렴계에서 시작되고 주자에 의해서 집대성된 중국의 송대 철학이 우주론에서 출발하였다면, 이 송대 철학을 수용하였던 조선시대 철학에서는 인간학의 문제로 귀결되었다."는 것이다.
확실히 『천명신도』는 방위를 정함에 있어서도 『태극도』나 『河圖』 『洛書』의 방위와 다른 면이 있다. 즉 『천명신도』에서 그림의 상단부분이 子(北)의 방향으로 보고 하단 부분을 午(南)의 방향으로 설정한 점이나 왼쪽을 음(陰)이라 하고 오른쪽을 양(陽)이라 한 것은 전통적인 여러 도(圖)와는 다른 것이다. 퇴계의 의도는 '방위는 보는 사람의 향배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라고 한 부분에 충분히 나타나 있다. 즉 그 이전의 여러 도(圖)는 대체로 천(天)을 중심으로 이 세계를 내려다보는 입장에서 그려진 반면, 『천명신도』는 인간이 이 세상에서 천명을 우러러 본다는 관점에서 그려졌다는 것이다.
* 『성학십도(聖學十圖)』
60대의 강학기를 대표하는 저술인 『성학십도』를 살펴보고자 한다. 『성학십도』는 퇴계가 68세 되던 1568년에 선조에게 올린 것이다. 『성학십도』는 주자를 비롯하여 송원대 중국고선의 대표적인 이론가들이 작성한 도설에다 퇴계 자신이 작성한 도설들을 보충하여 일정한 순서에 의해 배열하고 해석한 것이다. 퇴계는 『성학십도』를 선조에게 올리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신이 가만히 엎드려 생각건대, 당초에 글을 올리고 학문을 논한 말들이 이미 임금님의 뜻을 감동시켜 분발하게 하지 못하였고, 그 뒤로도 임금님을 대하여 여러 번 아뢴 말씀이 또 임금님께 조금도 도움이 되지 못하였으니, 미력한 신의 정성으로는 무엇을 말씀드려야 할지를 모르겠습니다. 다만 옛 현인과 군자들이 성학을 밝히고 심법을 얻어서 도와 설을 작성하여, 사람들에게 도에 들어가는 문(入道之門)과 덕을 쌓는 기초(積德之基)를 가르친 것이, 오늘날 해와 별과 같이 밝습니다. 이에 감히 이것을 가지고 나아가 전하에게 진술하여, 옛 제왕들이 악공으로 하여금 시편을 외우게 하거나 일용 기물에 명문을 새겼던 뜻을 대신하고자 하옵니다.
『退溪集』卷7, <進聖學十圖箚·幷圖>
이 말에서 보면, 『성학십도』를 작성하게 된 계기는, 자신이 주장이 국정에 반영되지 못한데 대한 회한, 이로 인하여 벼슬을 사퇴하고자 하는 의지, 막 등극한 소년왕 선조와 나라의 앞날에 대한 걱정 등이 모여 그간 학자로서 쌓아온 자신의 식견을 총동원하여 임금이 성학을 깨닫고 심법을 얻어 내성외왕이라고 하는 유가적 정치이념을 달성하도록 하기 위한 의도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성학십도』의 일차적 목적은 내성외왕이라고 하는 유가적 군주론의 실천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성학의 과제를 성왕이 되는 것으로 보는 것은 『성학십도』의 성격을 임금에게 올린 정치철학서로 한정할 때만 타당한 것이고, 퇴계 철학의 전체 체계를 보여주는 철학서라는 관점에서 보면 그것은 성인이 되는 것이라고 해야 더 타당성을 갖는다.
『성학십도』는 주지하는 바와 같이 모두 열 개의 도와 설로 이루어져 있는데, 열 개의 도설은 무원칙하게 나열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원칙에 따라 배열되어 있다. 『성학십도』 가운데 6개 도는 주돈이 정복심 권근 주희 왕백이 작성한 것이고 『소학도』 『백록동규도』 『숙홍야매잠도』 3개는 퇴계 자신이 작성한 것이며 제6도인 『심통성정도』만은 정임은이 그린 圖(上)에 퇴계 자신이 두 圖(中 下)를 추가하여 완성한 것이다.
『성학십도』의 구성원리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상반부의 『태극도』 『서명도』는 선천적으로 존재하는 우주적 원리와 그 원리에 의해 질서지워진 세계를 설명한 것이고, 중반부의 『소학도』 『대학도』 『백록동규도』는 현실적 세계에 살고 있는 인간들에게 열려져 있는 삶의 원리를 파악하기 위한 공부 방법을 밝힌 것이며, 하반부의 『심통성정도』 『인설도』 『심학도』 『겨재잠도』 『숙홍야매잠도』는 우주적 원리와 삶의 원리가 마음을 통하여 일치될 수 있는 근거와 그 실천적 조건으로서의 경을 논한 것으로 이것이 바로 『성학십도』를 구성하고 있는 기본 골격인 것이다.
3. 결 론
남명과 퇴계는 성리학이라는 같은 바탕위에 서로 다른 연구방법을 적용하여 전혀 다른 학풍을 이루어 냈다. 퇴계는 정통적인 성리학을 연구하여 '동방의 주자'라는 칭호를 들을 정도의 학문적 성과를 이루어 내었고 경상좌도를 중심으로 퇴계학파를 형성하였다. 남명의 학문도 주자학 중심이 아닌 여러 학문의 융화와 발전이라는 점에서 높이 평가되고 경상우도를 중심으로 남명학파를 형성할 정도로 융성하였다. 또한 남명과 퇴계의 학문적 의의에는 개인의 역량이나 개인의 업적과 더불어 학파를 형성하여 후에 조선의 사림정치가 크게 융성할 수 있게 한 기반을 마련하였다는 점도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참고문헌
· 경북대 퇴계연구소, 경상대 남명학연구소 편, 『퇴계학과 남명학』, 지식산업사, 2001.
· 金鍾錫, 『퇴계학의 이해』, 일송미디어, 2001.
· 손영식·조남호, 『남명 조식의 철학사상연구』, 서울대학교출판부, 2002.
· 유명종, 『남명 조식의 학문과 사상』, 세종출판사, 2001.
· 이상은, 『퇴계의 생애와 학문』, 예문서원,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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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4.05.20
  • 저작시기20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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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2515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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