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의 식민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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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I. 머리말

II. 본론
1. 식민사관의 형성과정
(1) 일본의 조선 침략과 한국사 연구
(2) 식민지 조선으로 확대된 식민사관
2. 식민사관의 논리
(1) 타율성론
(2) 정체성론
(3) 당파성론
(4) 일선 동조론
3. 식민사관의 영향
4. 식민사관의 극복(비판)

III. 맺음말

본문내용

로 불어넣은 것이었다.
한편 조선에서 전문적인 역사교육을 받은 사학도가 1910년대 말기부터 나오기 시작하여 20년대 후반기부터는 연구와 저술활동에도 종사하였다. 그들은 일본에 유학하여 그곳 대학에서 동양사학을 전공하였고, 그 뒤 경성제대의 사학과에서도 졸업생이 나오기 시작하였다. 그들의 스승은 일본인으로서 '관학 아카데미즘'의 학풍을 이어받았다. 20년대에 들어서 조선사편수회 등 관변 기관에도 조선학자가 많이 들어올 수 있었다.
이들의 태도는 문헌 고증학이라고 할 수 있는데 방법론은 매우 세련되었으나, 일제 식민주의사학을 방조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이들은 민족주의 수단으로서의 역사연구를 거부하였고, '역사를 위한 역사' 곧 역사학의 전문화와 과학화에만 의미를 찾고자 하여 식민사관을 제대로 극복하지는 못하였다.
다음으로 식민사관이 끼친 폐해는 일본인들에게는 조선에 대한 멸시감을 불러일으켰고, 식민지 조선에서는 자라나는 우리 어린이들에게 식민사관을 주입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는 점이다.
1920년대에 간행된『보통학교 국사』의 내용을 보면 조선 학생을 가르치는 책인데도 일본 천황을 중심으로, 일본을 우리 나라로 기술하면서 조선을 부수적인 역사로 취급하였다. 따라서 조선인을 가르치는 조선이니 역사책인데도 역사의 주체는 일본이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일제가 조작한 역사책은 한·일 양국간의 관계를 넘어서 다른 나라의 한국에 대한 인식에 까지 영향을 미쳤다. 예를 들면 조선총독부가 만든『조선의 길잡이』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은 조선총독부가 시정 25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만든 책이다. 그런데도 해방 후 유네스코에서 한국사를 소개하는 자료로서 이 책을 번역하여 배포하였다고 한다. 오늘날에도 세계 각국의 역사책은 대부분 일본이 주장하는 왜곡된 우리 나라의 역사상을 그대로 싣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식민사관의 피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하겠다.
4. 식민사관의 극복(비판)
그렇다면 식민사관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본래 역사는 사실과 해석으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먼저 역사적 사실에 대한 엄정한 규명이 있어야 한다. 이는 사료를 제대로 접할 수 없고 사료에 대한 비판 능력이 없는 일반 대중들이 할 수 없으며 역사연구자들의 몫이라고 하겠다. 사실 일반 대중들이 식민사관의 논리를 비판하기란 어려웠다. 더구나 식민지배는 수십년간 계속 되었으므로 식민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논리가 옳다고 받아들이기 쉬웠다.
따라서 식민사관의 극복은 역사학의 중요한 과제였다. 일제시기에도 민족사학은 주로 고대사 분야를 연구하여 우리 민족의 주체성을 살리고자 하였으며, 사회경제사가들은 우리 역사에 보편적 역사 발전법칙을 적용함으로써 정체성론을 비판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학문적으로 식민사관을 충분히 비판하였던 것은 1960년대 이후였다. 당시 국사학계의 주된 관심이 식민사학의 유산을 청산하는 문제로 모아지면서 식민사관에 입각한 여러 논리들의 허구성이 공박되었다.
먼저 정체성론을 부정하는 연구에서는 일본학자들이 특히 '정체성'을 강조하였던 조선후기 사회의 발전적인 측면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었다. 가령 농업부문에서 모내기의 보급, 견종법의 시행, 이모작의 확대 등 생산력의 발달이 있었으며, 광작 등 새로운 경영방식이 전개되었고 상업적 농업의 발전, 상업에서의 사상·도고의 성장, 전국적인 장시의 발달, 수공업 분야에서의 선대제적 상품생산 등이 이루어졌음이 실증적으로 규명되었다. 따라서 조선후기에 전개되었던 사회변화의 여러 측면을 통하여 근대 지향적인 면이 조선사 내부에 존재하고 있었음이 부각되었다.
식민사관을 지탱해온 타율성론에 대해서도 비판이 이루어졌다. 먼저 반도라는 지정학적 숙명론에 대해서는 인간사회의 내적 발전이라는 법칙을 무시한 논리를 비판하면서, 과거 우리 조상의 활동무대가 반도에만 한정되지 않고, 만주까지 포함되었다는 점, 반도라고 하더라도 이탈리아처럼 유리한 조건이 되기도 한다는 점, 그리고 대륙과 해양으로부터 침략을 많이 받았으나 끊임없이 투쟁해 왔다는 점등을 들어서 공박하였다.
그리고 한국사의 여명기가 한사군 등 중국의 식민지 상태에서 시작되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한사군보다 훨씬 앞선 시기에 청동기 시대가 존재했음을 밝히고, 그를 토대로 한 고조선이라는 국가의 실체를 부각시킴으로써 실증적으로 이를 극복하였다. 또한 임나일본부설도 일본학자들이 만든 허구적 가설임이 논증되었다. 사대주의 문제에 대해서도 사대정책과 사대주의는 구분되어야 함이 강조되었다.
당파성에 대해서는 이 또한 어느 민족이나 정파간의 싸움은 있는 것이고, 다만 그 다툼의 방법과 양상에 차이가 있을 뿐이니 그것을 굳이 한국 민족의 특수한 양상이었다고 강조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비판하였다. 최근에는 조선시기의 붕당을 오히려 공론을 중요시하는 정치운영의 원리로서 평가하고 있다.
III. 맺음말
오늘날 일제의 식민사관이 극복되고 민족사의 독자성과 그 내재적인 발전 과정을 추구하고 있지만 아직도 충분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앞에서 보았듯이 현재 일제 사가들이 주장한 식민 사관은 해방 후 역사학의 성과과 축적되면서 거의 극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같은 식민사관의 뿌리가 된 근대화론과 같은 사상은 여전히 극복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60년대 이후 외국자본에 의존한 경제성장론에 따라 근대화론은 여전히 유효하게 이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제는 일제가 만든 식민사관의 극복이라는 대응 적인 차원에서 벗어나 아직까지도 외세에 의존하는 근대화론과 같은 제국주의적 시각을 적극적으로 비판해 나가야 할 것이다.
■ 참고문헌 ■
강진철,『정체성 이론 비판』, 한국사 시민강좌, 1987.
김용섭,『일제 관학자들의 한국사관』, 사상계, 1963.
김영호,『한국사 정체론의 극복의 방향-시대구분과 자본주의 맹아 문제』
이기백,『반도적 성격론 비판』, 한국사 시민강좌, 1987.
이명화,『일제총독부 간행 역사교과서와 식민사관』, 역사비평, 1991.
이용법,『한국사의 타율성론-소위 만선사관의 극복을 위하여』
이태진,『당파성론 비판』, 한국사 시민강좌, 1987.
홍이섭,『식민지적 사관의 극복-민족의식의확립과 관련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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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4.07.15
  • 저작시기20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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