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우제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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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시작말
1. 조사의 목적
2. 조사의 범위 및 방법
Ⅱ. 몸 말
1. 기우제의 어제
1) 기우제의 유래
2) 기우제의 시대적 흐름
3) 기우제의 司祭者
4) 기우제의 유형과 방법

5) 기우제의 분류
6) 각 도의 기우제
2. 기우제의 오늘
1) 현대 생활 속의 기우제
2) '인공 비' 시대
3. 외국의 기우제
4. 태종우(太宗雨)'의 내력
Ⅲ. 맺음말
참고자료

본문내용

감사를 드렸다.
그러나 조선 선조 때, 임진왜란이 있기 전 몇 해 동안에는 이 태종우가 내리지 않았었다. 그러더니 아니나 다를까, 마침내 일본이 우리 나라를 침략하여 전쟁을 일으키고 많은 사람을 죽이는 못된 짓을 7년 동안이나 저지르게 되자 이로 인해 사람들은 태종우를 더욱 신기하고 거룩하게 여겼다.
그 뒤로부터 꼭 해마다 내린다고 할 수는 없었다. 4-5월에 비가 알맞게 와서 가뭄 걱정이 없을 때는 내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비가 오지 않아 가뭄이 극심한 해도 때로 있으니, 그때마다 농부들이 태종의 시신을 모신 헌릉(獻陵)을 가리키며,
"우리 태종 대왕께서 어찌 우리를 돌보지 않겠는가."
하고 스스로를 달래면 반드시 5월 10일에 태종우가 내려 준다 한다. 이것을 아는 백성들은 서로 기뻐하며 마주 보면서, "태종 대왕께서는 과연 영험하시다."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다.
이 태종우를 바랬던 농업 국가 시대의 우리 나라는 참으로 소박하고, 선량했을 것이다,. 태종이 돌아가신 후 4백 년이 넘도록 우리 조상들은 그 뜻을 기렸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나라는 농업보다는 공업에 큰 비중을 두고 있는 상태이므로, 태종우의 고마움을 많이 잊어 가고 있다. 그러나, 농촌의 농부들은 태종우가 내리는 해에는 풍년이 든다고 믿고 있으며, 한창 가뭄이 심한 때, 온 국민의 안타까움 속에서 이 날을 맞아 태종우가 내려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희망을 품기도 한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홍수가 나는 것이며, 비가 너무 오지 않아서 가뭄이 드는 것은 실제로 인간의 힘으로써는 해결해 낼 수 없는 재앙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스스로 농사를 짓지 않고도 먹고, 살 수 있는 높은 지위의 왕으로서, 백성들의 굶주림과 힘없는 농부들의 괴로움을 몸소 보살피고 함께 걱정해 주었으며, 죽을 때까지 백성을 위한 한결 같은 마음을 버리지 않았던 태종과 같은 지도자는 아마도 다시는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 http://www.minchu.or.kr/academy/class/class2-4-12.htm.
3. 맺음말
기 우 제(祈雨祭)
이 동 수 (http://narasmal.co.kr/시자료실/이동주.htm)
비! 비! 비! 비! 비!
우러러 목이 쟁긴 소쩍새.
돌아보아야
무잿불을 올릴 풀 한 포기 없고
청동(靑銅) 불화로가 이글대는 모래밭에
소피를 뿌려 쇠도록 징을 울립니다.
이 실낱같은 사연 구천(九天)에 서리 오면
미릿내[銀河]의 봇물을 트옵소서
이제 말끔히 머리를 빗고 사나운 발톱을 밀어
저마다 제 자리에 들어 허물을 벗사오니 신명(神明)은 어여 노염을 거두시옵소서.
진즉 형제의 메마른 핏줄에는
눈물과 사랑이 도도(滔滔)히 흐르고
초록빛 그늘에 다가앉아
흐린 창문(窓門)을 닦으게 하옵소서.
<현대 詩에 나타난 비를 기다리는 마음>
하늘을 이고 땅을 디디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있어, 이제는 농경시대를 지나 상공업시대로 변하고 있지만, 농업용수에서 공업용수로까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비에 대해서 우리는 아직 초연할 수 없다. 지난해 여름 거북등처럼 갈라진 논에 한줄기 물을 대느라 애간장이 다 타들어 갔던 농민들의 한숨을 우린 아직 잊을 수 없다.
그런데 그 가뭄의 끝은 이제 겨울가뭄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현대의 과학으로 인공 비까지 만들어 가는 단계에 이르렀다고는 하나 가뭄으로 번진 온 대지를 충분히 적시기에는 아직 너무나 역부족인 것만은 사실이다. 기우제가 주술적인 형식을 갖추고 있다 하며, 비합리적이라고 치부해버리기엔 우리 민족과 너무나 가깝게 엮어져 있다.
모든 자연물에 인격을 부여하고 더불어 교감하며 조화로운 생활을 하고자 했던 옛사람들의 오랜 문화가, 언제 극복될 지도 모르는 과학적인 생활에 집착해 있는 우리들에게 새로운 삶의 지표가 될 수도 있다.
기우제를 올리는 공동체 성원들의 집단적 신념은 무엇이든지 이룰 수 있는 힘이 있다. 남녀, 상하, 노소가 모두 한마음으로 어우러져 하늘을 우러러 정성을 다했던 그 마음들에 티끌만큼도 사욕이나 이기심이 뒷받침되지 않았음을 상기할 때 지금의 우리는 다시 한번 되새겨 보아야 하지 않을까 한다.
'네 탓'이라고 우기기 전에 먼저 '내 탓'이라고 생각하고 먼저 자기를 돌아볼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한 지금이다. 그러고 보면 너무나 가물어 버썩거리며 먼지 나는 우리네 마음에도 단비가 내렸으면 하는 기원으로 마음의 기우제라도 지내고 싶다.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기우제의 풍속을 미신으로 소홀히 하기 이전에, 자연을 두려워하고 존중할 줄 아는 겸손함을 지니고 서로를 위해 한마음이 될 수 있었던 조상들의 삶의 지혜를 배워본 좋은 시간이었다.
▶발달과 변화라는 빠른 굽이의 물줄기가 있다면 어쩌면 완만한 물줄기처럼 우리네 삶에 배어 있는 것이 <기우제의 문화>가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한 울타리 문화의 흔적을 많이 배웠습니다.◀
< 참 고 자 료 >
김기수 외 31명, 『한국 민속문화의 탐구』, 국립민속박물관, 1996.
김태곤, 『한국무속연구』, 집문당, 1982.
김택규, 『한국농경세시의 연구』, 영남대 출판부, 1985.
동아출판사백과사전부, 『동아원색 세계대백과사전』, 동아출판사, 1984.
백성현·이한우, 『파란 눈에 비친 하얀 조선』, 도서출판 새날, 1999.
신영훈, 『우리문화 이웃문화』, 문학수첩, 1997.
임장혁, 「祈雨祭考」『중앙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85.
임재해, 『한국민속과 전통의 세계』, 지식산업사, 1991.
조희웅, 『한국구비문학대계』, 1-6(경기 안성군편),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2, 766쪽.
한국민속사전편찬위원회, 『한국민속대사전』, 민족 문화사, 1991.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한국정신 문화 연구원, 1996.
http://khan.co.kr/khnews/society/general/91815738214.htm.
http://kowaco.or.kr/pages/main_st/st_03/st_03_12.htm.
http://www.jeraewon.co.kr/news2.html.
http://www.minchu.or.kr/academy/class/class2-4-12.htm.
그외 신문기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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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4.09.11
  • 저작시기20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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