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초기 노동운동의 성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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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序論
Ⅱ. 本論
1. 노동운동 발생배경
1) 임금노동자계급의 성장
2) 노동환경
① 임 금
② 노동시간
③ 노동재해
3) 사회주의의 보급
① 사회주의 보급원인
② 사회주의 보급자들의 활동
③ 노동문제에 대한 인식
2. 전국적 노동조직의 성립과 전개활동
1) 조선노동공제회
2) 노동대회
3) 조선노동연맹회
4) 조선노농총동맹
3. 1920년대 초기 노동운동의 성격(의의)
1) 전국적 노동자조직의 대두
2) 노동자 조직의 성격발전
3) 노동단체 상호간의 유대미약
4) 노동쟁의에 대한 조직적 역량의 미흡
5) 노동자·농민운동의 미분화
Ⅲ. 結論-요약 및 결론
Ⅳ. 參考文獻

본문내용

제회, 조선노동연맹회, 조선노농총동맹 등도 이 시기에 있어서는 노동쟁의가 발생한 뒤에야 이것을 수습하기 위해서 조정에 나서고 또는 후원에 나섰지 사전에 이 쟁의들을 계획하고 지도한 예는 많지 않았다.
그러나 이 시기의 노동쟁의는 그것이 노동조합을 조직케하는 원인이 되었으며 또 중앙단체들이 노동조합을 조직하도록 지도하게 하여 많은 노동조합들을 발생케 한 것만은 부정할 수 없다.
이와 같은 1920년대 전반기에 있어서 노동쟁의에 대한 조직적 역량이 미흡했으며 또 이 시기에 노동자단체 상호간에 유대가 미약했던 것은 당시 조선의 노동운동이 출발 초기에 있었다는 것을 반영하였을 뿐이라 하겠다.
5) 勞動者 農民運動의 未分化
일제가 조선을 식민지로 합병하자 맨 먼저 착수한 사업 중의 하나가 토지조사사업이었다. 이 토지조사사업은 봉건적 토지소유관계를 청산하고 토지에 대한 근대적 소유권을 확립하여 자본주의 침투의 기초를 마련하는데 의의가 있을 뿐만 아니라 많은 토지를 농민들로부터 강력적으로 수탈하여 이것을 자기 지배 하에 넣으려는데 있었다.
그 결과 수많은 농민들이 토지에서 분리되어 도시 노동자로 轉化되고 또는 소작농으로 몰락하였다. 이 소작농이란 자기의 노동력 이외에는 아무런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있지 않은 점에서 임금노동자와 별로 다를 바 없는 무산대중이었다.
따라서 무산대중의 상호부조로부터 시작하여 그들의 계급적 해방을 목적으로 하는 1920년대 전반기의 노동운동에 있어 임금노동자들의 노동운동과 소작농들의 농민운동과는 실질상 분리되어야 할 절실한 필요성을 느끼고 있지 않았으며, 또 그 당시 노농운동의 지도자들로서는 이 두개의 운동을 분리해야 된다는 데 대한 명확한 이론적 기초가 서지 못했다.
그리하여 조선노동공제회와 노동대회, 그리고 조선노동연맹회에는 모두 소작인 및 소작인단체들이 가입되어 있었으며 조선노농총동맹에는 노동단체와 소작인단체가 총망라되어 있었다.
그런데 1914년에 전체 농가호수의 35.1%인 999,261호를 차지하고 있던 소작농가는 1919년에 37.6%인 1,003,003호, 1929년에는 45.6%인 1,283,471호로 증가하였으며 이와 아울러 소작쟁의도 1920년에 15건이었던 것이 1924년에는 164건으로 격증하였으니 무산계급을 위한 노동운동에서 이들 소작농의 운동이 소외될 수는 없었다.
다만 아직도 노동운동이나 농민운동이 그 발전의 초기에 있었기 때문에 미분화의 상태에 있었다는 것뿐이다.
여하튼 1920년대 전반기에 있어서 조선의 노동운동이 농민운동과 분리되지 않은 채 하나의 전국적 조직 속에 통합되어 있었다는 것은 노동운동의 초기성을 나타내는 한 특징이었다고 할 수 있다.
金潤煥외 3人. 『日帝下의 民族運動史』民衆書館. 1971. pp.329~333.
Ⅲ. 結論 - 要約 및 結論
지금까지 1920년대 초기의 노동운동의 성격을 알아보기 위해 近代的 勞動運動의 발생배경을 살펴보았고, 근대적 노동운동의 성립기준이라고 할 수 있는 전국적 노동조직의 성립과 전개과정, 그 활동을 통해서 그 시기의 노동운동의 성격을 살펴보았다.
이미 언급한대로 조선 봉건사회 말기에서부터 賃金勞動이 발생하기 시작했고 개항과 더불어 근대적 임금노동이 급속히 성장하였다. 이러한 노동자계급을 중심으로 이미 노동자단체의 조직과 노동운동이 19세기 말엽에 발생하였으며 1910년대에는 전국 각지에서 散發的으로 일어났다.
그러나 이 당시의 노동운동이 非組織的이고 自然發生的이며 전국적인 규모의 노동운동으로 전개되지는 못했으나 이미 반일운동의 색채를 띠고 있었다.
1920년대 전반기 제1차 세계대전을 통해 축적된 일본자본이 진출됨에 따라 노동자계급은 성장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제1차 세계대전 후의 불황으로 임금인하 등 노동조건이 열악화되자 각종 노동쟁의와 노동자단체의 조직이 촉진되었다.
그러나 이 당시의 노동운동은 노동자 자신에 의해 일으켜졌다기보다는 知識層에 의한 啓蒙運動 내지는 抗日民族解放運動의 일환으로 촉진되었다.
이 시기 노동운동의 주요 특징으로는 朝鮮勞動共濟會, 勞動大會, 朝鮮勞動聯盟會, 朝鮮勞農總同盟과 같은 전국적인 규모의 노동자조직이 결성되었다는 것을 가장 큰 특징으로 들 수 있다. 그리고 相互扶助的인 것에서 社會制度의 批判이나 資本家階級과의 鬪爭을 위해 團結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노동자 조직의 성격이 바뀌었다. 그러나 중앙과 지부 각 조합 사이에 밀접한 紐帶關係가 미약했고 노동조합이 주체가 되지 않은 자연발생적인 노동쟁의가 지배적일 만큼 조직역량이 극히 약했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노동운동과 농민운동이 未分化狀態에 있을 정도로 노동운동이 초기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다.
애초에 근대적 노동운동의 성격을 밝힘으로써 노동운동의 범위와 한계를 가늠해보고자 하였다. 이는 당시의 전국적 노동조직의 성립과 활동을 통해 노동운동 자체의 본연의 자세에 충실함의 여부와 그 한계점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당시의 노동자 조직들은 역량면에서는 미비했고 초기적 성격을 갖고 있었으나 조직발생, 변화과정에서 노동운동의 발전도를 살펴볼 수 있었다. 즉 이런 발전도는 노동운동의 발전과정이었으며 노동운동의 성격이 더욱 분명해져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런 점에서 노동운동의 범위와 한계도 상당히 분명해진 것이라 생각된다.
Ⅳ. 參考文獻
단행본
1. 金潤煥외 3인. 『日帝下의 民族運動史』 민중서관. 1971.
2. 한홍구, 이재화. 『韓國民族解放運動史』 경원문화사. 1988.
3. 안병직,박성수외. 『韓國近代民族運動史』 돌베개. 1980.
4. 국사편찬위원회. 『韓國史 49』 국사편찬위원회. 2001.
5. 강만길. 『日帝時代 貧民生活史』 창작사. 1987.
6. 강만길. 『고쳐 쓴 韓國現代史』 창작과 비평사. 2001.
논 문
1. 박상석. 「1920年代 勞動運動의 性格에 대한 硏究」 중앙대학교 대학원. 1987.
2. 정현이. 「1920年代 前半期 思想團體와 勞動運動」 숙명여자대학교 대학원.
1992.
3. 윤구열. 「1920년대 朝鮮勞農總同盟硏究」 홍익대학교 대학원. 1989.
4. 柳時賢. 「1920年代 前半期 社會主義 思想의 受容과 發展過程에 대한 硏究」高麗大學校 大學院.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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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4.10.03
  • 저작시기20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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