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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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선시대 종학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조선 사회와 문화

2. 조선시대 교육 제도 중 종학에 대하여

3. 참고자료-조선시대 조지서

본문내용

장케 하였던 것이다. 이와 같이 성균관에는 정규 관원 이외에 문신 당상관 중에서 명망 있는 자가 뽑혀서 유생을 가르치기도 하였으며, 한편으로는 권지(權知)가 배치되어서 유생 교육에 종사하기도 하였다.
권지는 정규 관원이 아닌 정원 외의 임시직 또는 견습직 이라 할 수 있는데, 조선시대에는 초기부터 문과(文科)에 급제한 자들을 삼관(三館)에 분관(分館)하는 법이 있었다. 문과는 3년에 한번씩 실시하여 33인을 뽑아 성적순에 따라 3등으로 구분하였는데, 초기에는 을과(乙科) 3인, 병과(丙科) 7인, 정과(丁科) 23인으로 구분하였다가 세조 14년(1468)부터는 갑과(甲科) 3인, 을과 7인, 병과 23인으로 구분하였다. 『세종실록』에 인용된 조선 초기의 법전인 경제육전(經濟六典)에 의하면, 을과 3인과 병과 7인 즉 1등부터 10등까지는 즉시 서용(**用)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는 을과 3인만 정규 관리로 등용되고 나머지 30인은 일단 성균관(成均館) 승문원(承文院) 교서관(校書館) 즉 삼관에 분송(分送)되어 권지(權知)에 임명되었다. 그리하여 일정기간 복무한 뒤 거관(去官)을 통하여 정규 관리로 승진 전출될 수 있었는데, 성균관에 분속(分屬)된 자는 권지학유(權知學諭) 또는 권지학록(權知學錄)으로 임명되어 유생들의 교육을 담당하기도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대체로 성균관권지의 경우 성균관의 부속학교인 사학에 나아가 사학생도의 교육에 종사하였던 것 같다.
자 이제 종학에 대한 저의 생각을 짧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종학은 신분 사회인 조선사회를 보다 더욱 강조해주는 교육기간이라고 생각됩니다. 대군이하 왕의 8촌까지 교육을 시킬 정도로 왕족의 품위를 중요히 하는 그 사회상을 잘 드러내 주는 예 인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종학을 다시 쉽게 설명한다면..
종학은, 왕족들의 교육을 위한 특별한 제도중 하나입니다.
왕족들은 왕세자를 제외하고는 성인이 되면 대군이나 군이라는 칭호와 함께 궁궐 밖에 나가 따로 살면서 특별한 벼슬이나 직책 없이 한량처럼 사는데, 개중에는 아주 무식해서 왕족의 체면을 깍 는 경우가 많이 생기는 경우 도 있어 세종께서 왕족들이 한달에 몇 번씩 모여서 공부를 하고 또 숙제를 하도록 명 하였습니다. 이것이 종학입니다. 왕족들 중 공부에 관심이 없는 어떤 사람들은 죽을 때 이제 종학에 안나가도 되니 얼마나 좋으냐 하면서 죽은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3.참고자료(조선시대 조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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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4.10.06
  • 저작시기2004.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69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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