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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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전기고조선 제국 1세 단군 왕군

2. 삼국시대의 의료기관

3. 고려시대의 의료기관
3.1 각종 병원
3.2 의료혜택, 민중에게는 먼길
3.3 전문의

4. 조선시대의 의료제도
4.1 의료기구
4.1.1 3의사
4.2 지방의 의료기구

참고자료

본문내용

도에 1~3명씩 배치되었던 審藥(심약)도 지방민 구료의 중요한 존재였다. 한편 전염병이 유행할 때는 이들만으로는 감당할 수가 없어 3의사의 의관이 파견되어 치료하였다. 그러나 교유 혼자서 넓은 지역을 담당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의생이 직접 치료하거나 때로는 무격으로 하여금 병자를 구료하게 하고 이들의 巫稅(무세)잡역을 감면해 주기도 하였다. 단종 즉위년(1452)5월에는 任元(임원)의 건의로 諸道左右界首官(제도좌우계수관)이 의국을 설치하여 제약.판매하도록 함으로써 지방의료기구가 확대되었으나 그 효과는 알 수 없다. 이 외에 개성에도 대비원과 혜민국이 있었는데, 그 조직이나 구료활동 등은 잘 알 수 없다.
한편 동북면과 서북면에도 태종과 세종대에 토관이 설치되면서 의료의 혜택이 미치게 되었다. 지방의료의 말단은 채약인으로서, 이들은 목 이상에는 5명, 도호부에 4명, 군에 3명, 현에 2명씩 배정되어 약재를 채취하였다. 채취한 약재 중 상납할 것 이외의 것은 監營(감영)에서 민간의 질병을 구료하는데 사용하였고, 일부는 청심원, 소합원, 보명단 등을 만들어 판매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런 약재의 채취 및 판매와 관계되는 것으로 생각되는 藥店(약점)도 있었던 것 같으나,
藥店은 고려시대에 지방에 설치되어 있던 의료기구로 弱店正(약점정) . 藥店副正(약점부정).藥店史(약점사) 등의 鄕吏(향리)가 있어 이를 관리하였다.
그 실체를 파악 할 수 없다.
이상과 같이 조선 초기에는 고려시대부터 있었던 의료 기구를 거의 그대로 계승하여 이를 더욱 확대.정비함으로써 백성에 대한 의료시혜의 폭을 더욱 넓혔던 것이다. 특히 활인원의 기능은 고려시대보다 더욱 다양해져 도성내의 병자를 치료함으로써 국립 의료기구로서의 소임을 충실히 수행했던 것이다. 조선 초기에 여러 의료기구가 완벽하지는 못했지만 그 소임을 다하자 노력했던 것은, 역대 국왕을 비롯한 위정자의 지대한 관심 때문이었다. 특히 세종은 민간의 질병 구료에 남다른 간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제도를 마련함은 물론, 기존 기구의 운영에 적극성을 보임으로써 조선의 의료제도의 기틀을 확립하였던 것이다.
참고자료
한국사25, 조선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21,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국사편찬위원회
고려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한국역사연구회, 1997, 역사비평사
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한국역사연구회, 1996, 역사비평사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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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6페이지
  • 등록일2004.12.01
  • 저작시기2004.1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76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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