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체육정책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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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제 1절 체육정책

제 2절 지도기관과 체육인의 양성 및 대우

제 3절 체육시설

제 4절 대중스포츠

본문내용

은기 쟁취운동」등 특별한 경우 이외에는 하지 않고 있다. 정무원 교육위원회에서 파견된 판정원이 각 종목별 성적을 채점하여 평가하게 된다. 우수 단체는 포상하고, 부진 단체는 재검정을 실시한다.
이외에도 청소년들의 체력향상과 조직생활 강화를 위해 여름철에는 「해양체육월간」(78월)을, 겨울철에는 「동계체육월간」(12월) 행사를 실시해 오고 있다. 해양체육월간은 1964년 7월 제정된 수영보급월간을 1977년에 개칭한 것이다.
「청년동맹」(舊 사로청) 주관으로 인민학교와 고등중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영, 다이빙 등 해양스포츠와 도강 등 국방체육 병행 실시하는 체육행사이다. 또한 1980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동계체육월간에는 학생들과 근로자들에게 스키, 스케이트, 집단 달리기 등을 반복 훈련시키고 있다.
3. 프로 스포츠
북한은 1980년대 말부터 축구를 비롯해 권투, 레슬링, 농구 등 주민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스포츠 종목의 프로화를 추진하고 있다. 북한이 체육부문에 '프로'라는 자본주의적 요소를 처음 도입한 것은 1993년 4월 '93공화국 프로권투선수권대회'. 이전에는 1990년 8월 '평양컵 국제축구대회'를 신설하여 '상금제' 방식을 채택한 바 있었다.
북한이 종래 체육을 사회주의건설과 국방력 강화의 한 부속수단으로 간주해 오다가 정책적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것은 소련·동구사회주의체제 붕괴이후 이들 국가의 유명선수들이 서방세계에서 프로선수로 맹활약하고 있는데 자극을 받은 때문으로 보인다. 특히 러시아가 프로스포츠 육성정책(1992.11)을 발표하는 한편 중국도 프로권투경기를 개최하는 등 사회주의권의 프로스포츠 도입이 활기를 띠고 있는데 적지 않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또한 북한에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997년 초 "주체적인 기술 및 전술체계에 의거해서 일부 종목들을 프로화할 것"을 지시함에 따라 체육의 프로화 움직임이 가속되고 있다. 더욱이 프로스포츠가 외화획득의 한 수단이자 북한의 폐쇄적 이미지를 불식시키는데도 좋은 재료가 된다고 인식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일반적 관측이다.
그러나 북한의 프로체육의 성격은 자본주의에서 행해지고 있는 프로스포츠와는 거리가 있으며 엄밀히 말하면 '세미프로'에 가깝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대표적인 종목으로는 권투와 농구, 축구 등을 꼽을 수 있다.
1) 권투
북한의 프로권투는 상당한 수준에 올라 아시아 정상권에 속한다. 권투는 북한에서 축구 농구 등에 다음 가는 인기종목이다. 북한에 프로권투가 처음 도입된 것은 1992년. 같은 사회주의 국가인 러시아, 카자흐스탄 등에 자극을 받아 외화벌이의 한 방편으로 시작됐다.
1995년 12월5일 세계권투평의회(WBC)에 가입한 뒤 1997년 8월 18일 세계복싱협회(WBA)와 범아시아복싱협회(PABA)에 잇따라 가입해 등록선수만 200여명에 이르고 있다. 또 여성 프로권투도 남자와 비슷한 시기에 도입돼 200여명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프로경기중 권투를 가장 먼저 도입해 대회를 개최한 것은 여러 가지 사항을 고려한 다목적의 포석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구체적으로 ▲권투가 국제적으로 인기가 있고 돈과 명예를 한꺼번에 거머쥘 수 있는 종목이라는 점 ▲바르셀로나올림픽(1992.8)에서 금메달과 동메달을 각각 1개씩 획득하고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5체급에 걸쳐 우승 준우승을 휩쓰는 등 비교적 국제무대에서 효용성이 크다고 판단한 점 ▲국제경기 상위권 입상자를 중심으로 수준있는 선수들을 선발 육성, 국제프로무대에서 진출시키면 외화도 획득하고 국위도 선양하며 폐쇄국가의 이미지도 희석시킬 수 있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
북한에는 남한의 실업팀과 유사한 체육단이 각 기관·기업소 소속으로 있는데 4·25체육선수단, 압록강체육선수단, 월미도체육선수단, 평양시체육선수단을 비롯해 8개가 있다. 프로냐 아마추어냐 하는 진로 선택문제는 정책적 판단과 선수 본인의 희망을 존중해 결정하는데 대부분의 선수들이 프로를 희망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프로 선수들은 아마추어를 거쳐 6라운드의 프로심사를 통과해야 하며 내각 체육지도위원회 산하 체육과학연구원의 정기적인 검사와 영양사들의 영양관리를 통해 과학적으로 육성되고 있다. 하지만 선수들은 사회주의 국가에서 활약하다 보니 대회에 출전할 기회도 적고 프로로서의 대전료도 못 받고 있어 아마추어들과 큰 차이는 없는 실정이다.
북한은 1999년 8월 22일 중국 랴오닝(遼寧)성 선양(瀋陽)의 철도체육관에서 열린 제2회 남북대결 5개국 참가 프로권투대회에서 사상 첫 남북대결을 모두 승리로 장식하며 권투강국의 위상을 과시했다.(부록)
2) 농구
북한 농구는 1997년부터 큰 변화를 겪기 시작했다. 인민보안성 소속 압록강체육선수단의 남자농구팀이 '태풍'으로 개명해 북한 최초의 프로팀으로 탄생했고 같은 소속인 여자농구팀도 '폭풍'으로 이름을 바꿨다.
통일농구대회에 참가한 '우뢰' 팀도 뒤이어 프로가 됐다. 이외에도 1999년 9월 평양 통일농구대회에 참가한 '벼락' 팀을 비롯, 제1, 2차 통일농구대회에 모두 참가한 '회오리' 와 '번개', '대동강' 등 여자농구팀이 속속 창단됐다.
그러나 이들 프로농구단은 새로운 프로리그를 만든 것이 아니라 아마추어 시절 출전한 '백두산상체육경기대회' '만경대상체육경기대회' '공화국선수권대회' 등에 그대로 출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자 농구팀인 `대동강'을 제외하고는 사람들이 두려움을 느끼는 기상현상에서 이름을 따고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이에 대해 평양에서 거주했던 한 탈북자는 이들 명칭이 "군사 중시사상에서 비롯된, 호전성을 드러내 보이기 위한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북한의 노동신문도 지난 1997년 중순께 선군정치를 내세우고 있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처음 결성된 남자 농구팀에 직접 '태풍'이란 이름을 지어줬다고 소개했다.
농구의 경우는 불확실하지만 축구를 상정해 볼 때 지난 1990년 창설된 `평양컵 국제축구대회' 우승상금이 2만 달러가 걸렸다는 점에서 프로농구 역시 그와 비슷한 수준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북한의 경제력과 외화사정에 비춰보면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이다.(부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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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5.03.27
  • 저작시기20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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